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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복의 수중세상 엿보기-어초의 표정들

참복 수중세상 엿보기
어초의 표정들
국내의 바다 속을 여행할라 치면 얕게는 수심 5m에서부터 깊게는 수심 45 m 정도에 이르기까지 지형적 특성에 맞추어 제작된 다양한 기능의 어초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백화현상이 심한 곳에는 해조류 어초를 만들어서 해조류를 이식해 놓고 자리를 잘 잡아 번식할 수 있도록 조성해 놓은 곳도 있고, 자연암반이 없는 곳에서도 전복 종패를 키울 수 있도록 패류의 생태적 특성을 고려하여 그에 적합한 어초를 투하하고 어민소득 증대를 기대하기도 한다.


강원 낙산과 동해시 근해에서 다이빙할 때는 정육면체 형태에 속은 비어있으며, 한쪽 면에 대형 철재로 된 철문을 달아놓아 주기적으로 다이버 관리자가 직접 수중에 잠수를 해서 전복의 주식인 미역이나 다시마 같은 해조류를 넣어주는 방식의 양식 어초를 본적도 있다. 하지만 어떠한 연유에서인지 현재는 그 용도가 폐기가 되어 그저 오가는 물고기들의 쉼터가 되고 있었으며, 어초의 안팎으로는 수많은 멍게와 비단멍게들이 자리를 잡아 용도와 다르지만 바다에 순응해가고 있기도 했다.


시멘트로 제조되었거나 강제 어초처럼 철강재를 이용해서 만들어진 여러 형태의 어초들을 볼 때마다 그 모양에 따른 주된 기능을 문제풀이 하듯 생각해보기도 한다. 또 현재 눈앞에 펼쳐지는 수중생물들의 적응여부를 관찰해보는 것도 수중생태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필자가 자주 다이빙하는 동해바다에는 지역에 따라 수중에 소위 자연짬이라는 암반줄기가 빈약한 곳에는 집중적으로 어초들이 투하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재료가 무엇으로 이루어졌든 간에 거대한 자연의 힘은 흐르는 시간과 함께 이들을 품어 안아주니 어초들은 차츰 바닷속의 일부로 변모해간다.


수중사진가들이라면 세월이 만들어놓은 부착된 수중생물들의 풍성함과 오묘한 칼라에 시선을 빼앗길 수 밖에 없다. 이토록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해버린 어초들 앞에 서면 참으로 기분 좋아지는 순간이다. 우렁쉥이들이 군락을 이루면 말미잘들이 근접하기 힘들고,반대로 말미잘들이 형형색색으로 자리를 잡았다면 역시 우렁쉥이들을 잘 찾아볼 수가 없다.


시간이 빚어놓은 아름다운 색감의 조화로움!문득 그렇게 아름답도록 인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면 투자비용이 어마어마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여 오래 묵은 어초를 만나기라도 하면 필자는 어린아이가 보물찾기에서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듯 황홀경에 빠져서 연신 뷰파인더에 눈을 갖다 대기에 바빠진다.


다이버들이 가장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어초는 정육면체 모양의 사각형 어초들이다. 그 동안 관찰해 왔던 것에 비추어보면 이 사각형 어초들은 동해안의 수심 20m~25m 권에 주로 투하되어 있다. 바닥에 깔려 흩어져 있는 것은흔치 않고 무더기로 쌓여 있는데 주로 2 단이나 3 단으로 탑을 이루고 있고, 수량으로 보자면 대략 50개~80개 정도의 규모가 많이 보인다.


그 다음 강제어초라 불리는 대형 철재어초들도 지역마다 한두 개씩은 만나게 된다. 내외부의 구조물에는 우렁쉥이들과 말미잘들이 자리를 잡고 있으며, 그 안쪽은 온전히 각종 어류들의 산란장이 되고 있으며, 치어들의 은신처가 되고 있다. 가끔 회유성인 말쥐치 무리라도 어초에서 쉬어갈 때면 한 폭의 그림같은 장관을 연출하기도 한다.


난파선이나 인위적으로 투하한 침선들 또한 선박의 형태 그대로 많은 어류와 부착생물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주고 있는데 역시 낯설지 않게 만나곤 한다. 지역마다 난파선들이 한두 곳은 있으며, 강릉 경포나 울진처럼 어초로 사용할 목적으로 인위적으로 투하한 곳에서는 여러 척의 난파선을 구경할 수도 있다.

멀리 전라남도 지역의 수중에서 만났던 다양한 형태의 어초들과 경북 포항에서 강원도의 북단인 고성지역까지 넓게 분포되어있는 동해안의 어초들을 볼 때마다 지역특성과 환경적 요인을 감안해서 어초들이 투하되었음을 짐작하고 있다. 본래의 용도는 말 그대로 어초이긴 하나 바닷속을 드나드는 다이버들에게는 색다른 느낌의 여행지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특히 투하된 지 10년 가까이 된 어초들에서는 마치 울창한 숲을 만난 듯 화려하고 풍성한 부착생물들이 만들어내는 조화로움이 아름다워 연신 사진촬영에 몰두하게 된다.


3 단으로 올려진 사각어초군에서는 왜 하단부의 부착생물군이 빈약한지? 상대적으로 상단에 위치한 어초들에는 부채뿔산호며 여러 종의 말미잘들과 홍합 같은 패류들이 풍성하게 모여서 조화롭게 살아가는지 궁금증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어초 기둥 하나에 살아 숨쉬는 수중생물들의 개체수를 확인해 보거나, 수중환경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살아가는 수중생물들의 삶의 방식을 비교해 보는 재미가 더해지기도 한다.


자주 다이빙을 하다 보면 그 모양과 환경, 부착되어 있는 생물들이 비슷비슷해서 때론 식상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수중여행의 묘미를 애써 즐기기 위해서는 설령 예전에 만났던 포인트일지라도 바라보는 시각을 조금씩 달리해 준다면 구석구석 숨어있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자태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동해안의 거대한 모랫바닥 위에 모여 있는 어초를 볼 때면 황량한 사막에서 푸르름 머금은 오아시스를 만난 듯 반갑다. 밋밋한 모래 바닥을 다양한 해양생물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만들어준 여러 가지 모양의 어초들을 그냥 스치듯 지나가기 보다 해양생물들의 소중한 서식공간으로 바라보며 그 속에 사는 해양생물들을 관찰해볼 필요가 있다. 이런 시각으로 바라보는 어초들이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계절과 수온에 따라 어초를 찾는 수중생물들이 변하듯 이 거대한 자연의 중단 없는 변화들을 읽어낸다면 보다 풍요로운 수중여행이 되어줄 것이다. 그렇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다면 비록 매번 다이빙을 할 때마다 만나는 어초들이지만 지난번 다이빙 때와 분명 달라진 그 어떤 것들을 틀린 그림 찾기 하듯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런 것들이 모여 내 다이빙을 훨씬 풍요롭게 만들어주고, 작은 성취감마저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그간 다이빙을 하면서 대략 14~15 개의 각기 다른 모양의 어초들을 만났다. 육상에서는 숱한 시행착오와 연구를 통해서 내일도 또 다른 형태의 어초가 만들어질 것이며 또 바닷속을 찾는 다이버들은 필연적으로 그 새로운 어초들을 만날 것이다. 그 수많은 형태의 어초들이 각기 제 기능이 작동하고 그로 인해 바닷속이 지금보다 더 풍요로워질 때 나의 수중여행은 더불어 설렘으로 가득할 것이다.


여러 다이버 님들의 안전하고 즐거운 수중여행을 기원합니다.

박정권/ 수중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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