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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초(海草) Seagrass_권천중(2012.10.11)


Prologue
10수년전 해양 조사 위해 찾은 작은 어촌 마을에서 그물코를 꿰던 노부가 들려 준 이야기가 다시금 떠올랐다. “내가 어렸을 땐 이 마을에 장마가 지거나 비가 내리기 전에 먼 바다에서 예사롭지 않은 소리가 들려오곤 했지…” 이렇게 시작된 노부의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빠져 들었다. “운무가 끼고 습한 기운이 몽환처럼 덮여 오면 마을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했어, ‘바다가 끓는다’고…”
.
“바다는 넓고 깊이를 알 수 없잖아 그래서 장맛비에, 폭우에 자기를 씻으며 세상의 삶과 한(恨)의 고단함을 씻어주며 빗방울들과 함께 무정설법(無情說法)을 읊조리고 있는 거야. 폭풍우가 지나가고 바람과 물결이 잠잠해 지면 바닷가는 내면의 아픔을 모두 다스린 적멸보궁(寂滅寶宮)이 생기지”
.
노부는 해변에 밀려와 쌓인 갈색 해초더미를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 말했고, “오늘도 ‘진죽’이 많이 밀렸네.”하고 뒤돌아 그물이 담긴 리어카를 터덜터덜 끌면서 자리를 떠났다.




해초(海草, Seagrass) 란?

노부가 적멸보궁으로 표현한 ‘진죽’은 익숙하지 않은 용어지만, 실제로 많은 지방에서 해초 또는 잘피로 불리는 수생식물을 칭하는 말이다.

연안에 사는 주민들은 사두질(큰 뜰채를 이용하여 물고기를 잡는 전통 고기 잡이방식)을 할 때면, ‘진죽’이 있는 곳에서 더 많은 물고기를 잡은 일과 진죽 뿌리를 캐어 먹고 달달한 맛을 느낀 추억을 가지고 있다.

해초는 잘피(Zostera marina, 거머리말)를 포함하는 해양 피자식물(Marine Angiosperm) 또는 해양 현화식물(Marine flowering plant)의 총칭으로 해초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은 손암(巽庵) 정약전(丁若銓)선생의 ‘자산어보’ 잡류편에 녹조대(錄條帶) 속명 진질(眞叱; 거머리말, 잘피를 의미), 단록대(短錄帶) 속명 모진질(慕眞叱; 애기거머리말을 의미)이라 기술하고 있으며, 뿌리는 대나무 같다고 묘사하고 있다. 이 같은 해초가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이유는 바닷가에서 흔히 볼 수 있고, 접할 수 있는 것은 미역, 다시마, 김, 우뭇가사리, 모자반 그리고 청각과 같은 해조류(Algae, Seaweed)로 이들은 우리의 식탁에서도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바다에 서식하는 식물은 해조류뿐이라고 생각하며, 현재에도 ‘해조’와 실제 ‘해초’의 구분 없이 “해조류” 또는 “해초류”로 부르고 있으며, 물속에서 꽃을 피우는 식물을 본적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런 식물이 있냐고 되묻곤 한다.

모래 환경에 서식하는 잘피(거머리말) (마치 육지에서 모를 심어 놓은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이렇게 모래에 서식하는 해초류는 지하경과 뿌리를 통해 해수 유동에 의해 저질이 유실되는 것을 방지 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잘피(거머리말)의 생식지: 꽃과 열매를 맺는 가지

열매: 대부분의 해초류는 꽃이 피는 가지인 생식지와 꽃이 피지 않는 가지인 영양지로 구분되며, 열매는 꽃이 핀 후에 쌀알 모양으로 생성된다.

흔들림 속에서 떨어지지 않고 살아가는 고둥류. 아마 이것이 공생인가보다. 해초 숲을 잘 찾아보면 의외로 재미난 생물체를 찾아 피사체로 사용할 수 있다.


해초는 뿌리, 줄기, 잎 그리고 꽃의 구분이 명확하여 해조류와 뚜렷하게 구분된다. 이들은 해수 중에서 수중생활을 하며, 꽃을 피우고 수정이 일어나는 종류들이다. 또한 지하경(根莖, 땅속줄기)이나 뿌리를 바닥에 고착시켜 해수의 유동 또는 파도에 견디며 군집을 형성(해초지, seagrass medows, seagrass beds)하여 서식한다.

이들 해초류는 전 세계적으로 1목(order), 5과(family), 19속(genus), 69종(species)이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육상식물을 조상형(ancestor)으로 갖는 고도로 분화된 무리로서 꽃을 피우는 식물 중 짧은 진화 역사를 가지며 해수생활에 적응한 종들로 열대 및 아열대 해역 서식하는 종들과 온대 및 한대 해역에서 생육하는 종들 간에는 뚜렷하게 구분된다.

이 해초류들은 매끈하고 기름진 줄기들이 한 가닥도 엉키지 않고 물결에 순응하며 생육하는 모습을 수중에서 본다면 진기하며, 얕은 수심의 밤바다에서 해초가 달빛을 받으며 줄기마다 하나씩 달을 매달고 흔들리는 고혹적인 자태는 색다른 바다 전경을 연출한다. 또한 암반에 서식하는 해초는 물속에 귀신이 머리를 풀어헤친 형상을 하여 예전의 아이들에게는 공포스런 식물로 기억되며, 얕은 바닷가에서 놀던 아이들이 해초에 발이 걸리면 바다 속 귀신이 잡아당긴다고 믿곤 했다.



해양 생태계에서 해초의 중요성

해초는 군집을 형성하는 생육 특성으로 인하여 해양의 연안 생태계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해초류가 생육하고 있는 지역에서는 식물체 기원의 쇄설물이 형성되며, 이 쇄설물이 해양생태계의 먹이 연쇄의 시작이며, 많은 생물체의 부양을 돕는다. 또한, 해초류는 바다새, 듀공, 매너티와 거북들에게는 직접적인 먹이원이 되기도 한다. 식물들은 어류, 무척추동물 및 부유생물을 포함하는 다양한 해양 생명체에게 빈 공간 또는 부착기질을 제공하여 이들의 서식처가 되며, 이들을 먹이로 하는 다는 어류들에게는 먹이 공급원이 되어 어장을 형성하기도 한다.

해외의 연구 자료에 의하면 지중해의 해초지 400㎡에서 연간 200톤에 달하는 어류의 먹이를 지원 할 수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주로 나타나는 상업적 가치가 있는 어종은 노래미, 조피볼락, 가시망둑, 뱅어, 문절망둑, 감성돔, 전어, 농어, 망상어, 가자미류 등이다.

해초지에 서식하는 어류는 포식자를 피하는 피난처가 되기도 하고, 산란장으로 역할을 해 ‘바다의 베이비시터’가 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해초 군락지는 뿌리와 잎으로 오염물질에 포함된 질소와 인 등의 영양염류를 흡수하여 끊임없이 수질을 정화하며, 부리와 지하경의 고착을 통해 저질(底質)의 안정화 등 연안환경의 형성에도 도움을 준다.

잘피숲 내부에 은신한 게류


잘피숲 조사에서 확인된 해마


잘피숲 조사에서 확인된 쥐치류(해조류 군락은 다양한 해양 생물이 서식하는 공간으로 연안 생태계에서 중용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해초는 또한 뛰어난 광합성 능력을 가지고 있어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산소를 생산함으로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관심이 높다. 최근 국제 공동 연구진은 해초가 단위 면적당 육상의 식물 숲이 흡수하는 것보다 3배 가까운 탄소를 저장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 보고하였으며, 미국 플로리다 국제대의 제임스 푸르귀린(James Fourqurean) 교수 연구진은 저명한 지구과학 학술지인 ‘네이쳐 지오사이언스(Nature Geoscience)’에 발표한 논문에서 “해초는 1㎢ 당 8만 3000톤의 탄소를 저장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육상의 숲이 목재 형태로 1㎢당 3만톤의 탄소를 저장하는데 이와 비교하면 실로 엄청난 양의 탄소 저장기능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연구진은 또 해초 군락지가 전 세계 바다의 0.2%에 불과하지만, 바다 전체가 흡수하는 탄소의 10%를 훕수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한, 호주 주변에는 수천 헥타의 해초지가 형성되어있는데 하루 동안 1㎡의 면적에서 10리터의 산소를 만든다고 보고되고 있다. 즉, ‘바다의 산소탱크’라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해초류가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바다어장의 개척과 연안 갯벌의 매립으로 인하여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으며, 세계적으로는 이미 해초 군락지 29%가 준설작업과 수질 악화로 파괴되었으며, 해마다 전 세계 군락지의 1.5%가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사라지는 해초 군락은 무분별한 개발과 오염으로 인한 연안 및 갯벌에 닥친 위기와 갯벌을 포함한 연안 생태계의 가치를 동시에 확인할 수 있도록 해준다.



해초의 생장과 우리나라의 해초

해초는 앞서 이야기 한 것과 같이 육상의 풀도 아니며, 해조류(Algae, Seaweed)도 아니다. 이들은 바다에 살며 리본과 같이 긴 잎을 가졌다고 하여 Eelgrass(Dugong grass)라고 불리며 형태에 따라 Ribbon grass, Strap grass와 Pedal grass라고 불리기도 한다. 해초류는 지하경이 땅속 수평으로 성장하며 강한 뿌리는 부드러운 저질이나 딱딱한 기반에서 식물을 지지한다.

잎과 뿌리는 영양염을 흡수하며 뿌리에는 잎에서 생성된 산소를 운반하기 위한 공기관이 발달해 있고 잎은 가스 흡수에 이용하기 위해 얇은 표피를 가졌다. 또한 잎은 성장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한 광합성 작용을 수행하기 위하여 녹색의 세포층을 가지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해초의 광합성은 수심 1 ~ 5m 수심에서 가장 왕성하여 주변 해수의 산소, 이산화탄소 그리고 산성도를 변화 시키는 중요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들 해초류는 일년생과 다년생으로 구분되며 온대지방에 서식하는 종들의 생육단계는 발아, 생장, 성장, 개화, 결실 그리고 쇠퇴기의 단계를 거치면서 새로운 군집을 형성한다.

강원도 삼척시 장호항의 잘피숲(나무가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열대 우림을 연상케 한다. 좀 더 풍요로워질 바다를 만들기 위하여 잘피는 자신의 몸 천체를 이용하여 오염물질을 받아들이고 이산화탄소를 고정하며, 산소를 뿜어낸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해초류는 온대지역에 서식하는 종으로서 잘피류와 말잘피류로 구분된다. 이들은 서식처의 특징에 따라 구분이 되며, 잘피류는 하구, 내만과 항 등의 지역으로 파도와 같은 외부의 영향이 적은 지역의 모래나 점토와 모래가 혼합된 저질환경에 군락(Beds)을 이루어 서식한다. 반면에 말잘피류는 상당히 파도가 심한 조간대의 바위 등 딱딱한 기질에서 군락을 이루며 서식한다. 말잘피류는 파도를 좋아하는 해초(Surf grass)라고도 불리며 얕은 모래층 또는 암반에 짧고 압축된 뿌리줄기를 고정하여 서식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해초류는 우리나라에 기수성 종인 줄말(Ruppia maritime)을 포함하여 모두 10종이 보고되었는데, 잘피류는 5종으로 잘피(Zostera Marina), 애기잘피(Z. japonica)외 3종(Z. asiatica, Z. caespitosa, Z. caulescens)이 보고되었고, 말잘피류는 게바다말(Phyllospadix japonicus)와 새우말(P. iwatensis)이 생육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으며, 최근 아열대성 해초류로 알려져 있는 해호말(Halophila nipponica)이 남해 연안에 출현하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중 잘피는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하며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진도, 완도, 여천, 여수, 충무, 광양, 감포, 삼척 그리고 무창포 등 연안의 전 해역에서 1-5m의 수심에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최근 연구 결과에 나타났다.

이들은 지역과 수온 그리고 다른 주변 해양환경 요인에 따라 생육단계가 다르게 나타나지만, 일반적으로 이른 봄에 자라기 시작하여 봄-초여름에 개화, 결실 했다가 여름-가을 초에 쇠퇴하며 다시 성장하여 군집을 형성하나, 말잘피류인 게바다말과 새우말은 물이 깨끗하고 수심이 깊은 동해안 지역에 많이 분포하며 서해안의 섬 지역과 남해안 섬 지역에서도 분포하고 있다.

이러한 해초류는 지방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는데 진저리, 진지리, 실피, 썰피, 질피, 제피, 진질, 물댕기 등으로 불리고 있다. 현재까지도 우리나라의 많은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해초류는 그 효용의 가치를 잃어버린 채 일부 섬 지방에서 퇴비로만 이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최근 해초류를 이용한 연안 복원 사업과 해초를 이용한 해중림 형성에 관한 연구 등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해초류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내 연안에서 아열대성 해초류의 출현으로 기후변화와 관련된 연구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전망이다.

우리나라 남해안 일대에서 발견된 아열대성 해초류인 해호말(기후변화 때문인가? 아님 외래종의 침입인가? 예전에 보이지 않았던 아열대성 해초류의 출현…. 이는 학술적으로도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Epilogue


지금까지 필자는 해양조사와 레크리에이션 다이빙을 통하여 여러 번 아니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해초류와 접하였다. 이 글을 쓰면서 이들이 얼마나 큰 잠재력을 가지고 우리나라의 연안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다시금 생각 할 수 있었다.

수중의 대단위 해초 군락에서 다이빙을 하노라면 자연이 가지는 다양함을 확인하고 다시금 넋을 잃게 된다. 해초류가 풍부한 곳에서의 다이빙은 해면동물, 말미잘과 같은 자포동물, 극피동물, 갯지렁이, 패류와 같은 연체동물, 어류 그리고 작은 절지동물까지 다양한 자연사 박물관에 와있는 느낌이다. 특히 해초류가 작은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은 모습을 볼 때면 잘 익은 보리밭을 구경하는 것 같다. 이러한 광경은 다이빙을 하지 않으면 볼 수 없으며, 수중 생물에 관심이 있는 다이버라면 해초지에서 해초를 관찰하고, 성장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울 것이며, 또한 좋은 피사체를 찾는 수중 사진작가라면 공기통을 메고 한번쯤은 스쳐 지나쳤을 해초 군락에서 다양한 피사체를 찾는 것 또한 묘미를 가질 것이라 생각해본다.

“바다의 베이비시터, 바다의 산소탱크”로 인해 더 풍요로워질 바다를 꿈꾸며….




권천중
해양생물학 박사
부경대학교 해양연구소
BSAC 강사트레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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