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녹도 재호흡기 다이빙 투어
Rebreather Diving at Green Island, Taiwan
“그래~ 결심했어!“ 라는 TV 프로그램을 혹시 기억하는가? 남희석과 이휘재가 인생을 살면서 나올 법한 두 가지 갈림길에서 각각을 선택했을 때의 상황과 결과를 재미있게 보여주는 코메디 프로그램이었다.
살면서 누구나 인생의 갈림길에서 고민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필자는 2004년 수중사진과 테크니컬 다이빙 중 수중사진을 택하여 적지 않는 투자를 하며 수중사진에 파고들었고, 2006년 트레이너를 목표로 교육을 받느냐, 필리핀에 가서 리조트를 운영하느냐의 갈림길에서 필리핀을 선택했다. 그리고 나는 2012년 5월 또 다른 갈림길에 서있다.
필자는 2011년부터 와이프와 함께 호주로 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필리핀 리조트도 정리했고, PADI 강사도 추가로 취득했으며, 한국에 들어와 영어 전문 학원도 다니고 있었고, 심지어는 재산도 모두 처분하여 호주 달러를 매입한 상태였다. 6월 중순 쯤 호주로 들어가려는 준비가 90% 이상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아버지의 “재호흡기를 배우고 호주에 가는 것이 어떻겠느냐?” 란 권유로 재호흡기를 배우고 자격증을 취득해서 간다면 아무래도 스페셜한 자격을 갖고 가는 게 아닐까 싶어 살짝 한걸음, 아니 한쪽 발을 TDI의 이볼루션 재호흡기로 담가 보기로 했다.
재호흡기 수영장 교육
이건~ 아니 이건~ 도대체 뭐지? 내심 정말 큰 기대를 가지고 첫 호흡을 하였는데 생각보다 편하지 않았다. 오픈서킷 그러니까 공기탱크로 일반 다이빙을 할 때의 살짝만 빨아도 공기가 쭉쭉 들어오는 그런 시원한 맛이 없었다. 마치 비닐봉지로 입을 막고 호흡하는 맛이랄까? 암튼 경험해본 사람들은 내말에 공감 할 것이다. 또한 호흡을 들이 마시거나 뱉어도 오픈서킷을 사용할 때처럼 부력조절이 되지 않는다. 즉, 숨을 들이마셔도 위로 뜨지 않고, 뱉어도 밑으로 내려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10년 전 여성분을 교육하고 동해바다에서 이틀간 해양실습 4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물론 5mm 슈트였고 수온은 아주 많이 찼다. 해맑은 미소를 잃지 않으며 회원에게 물었다. “어때요 다이빙? 정말 좋죠? ㅎㅎㅎ;” 정말 솔직했던 회원 왈 “강사님! 솔직히 돈 주고 왜 이렇게 추운데서 무거운 장비 힘들게 나르며 고생하는지 모르겠어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솔직한 회원 분 수요일 쯤 되면 전화가 온다. “강사님! 이번 주는 어디로 가나요?” ㅋㅋ 수영장에서의 나의 첫 재호흡기 다이빙은 이와 좀 비슷한 느낌이다. ^^;
대만 그린아일랜드 해양실습
TDI 정의욱 본부장님이 대만에 재호흡기 교육을 하러 가신다고 했다. 6월에는 호주에 들어갈 계획을 갖고 있던 나는 서둘러 재호흡기 실습을 모두 마쳐야 했다. 하지만 일반 재호흡기 다이버가 아닌 재호흡기 어드밴스 트라이믹스 과정으로 100m를 가기위한 교육이란다. 대만 TDI 본부장과 일본 TDI 트레이너를 교육하느라 일반 재호흡기 다이버 교육은 힘들다는 것이다.
아~ 그럼 어떡하지? 빨리 해양 실습을 마쳐야 호주 갈 수 있는데……. 내 마음은 점점 조급해져만 갔다. 그러다 반가운 본부장님의 전화 한통. 오전 오후로 나눠서 교육 스케줄을 잡아 주었고, 대만 본부장도 OK 했단다. 바로 항공권을 구매했다.
대만 타이페이에서 타이똥까지
대만 TDI의 야오쉬밍 트레이너가 마중 나왔고, 곧 이어 리키 대만 TDI 북부 본부장도 만났다. 한 시간 후 오끼나와에서 다이브숍을 운영하는 타쿠 트레이너도 도착해 기념 촬영 후 대만 TDI 남부 본부장을 만나러 한국으로 따지면 대전 정도 되는 곳인 “자이“로 이동 했다.
그린아일랜드까지 이동 경로를 적어 보면 새벽 5시 건대에서 승용차로 출발하여 그린 아일랜드에 도착 한 것은 28시간 후인 다음 날 9시였다. 서울에서 인천까지 차타고, 인천에서 타이페이까지 비행기 타고, 타이페이에서 자이로 차로 이동, 자이에서 다시 카오슝, 카오슝에서 타이똥까지 차로 이동하고, 타이똥에선 배로 그린 아일랜드까지. 헉헉~ 기억을 더듬으며 이 글을 쓰면서도 멀게 느껴지는 ^^;;
자이라는 곳에서 대만 남부 TDI 본부장 존 퐝을 만났고, 퐝의 숍에서 모든 장비를 빠짐없이 챙기고 검토한 후 봉고차에 짐을 옮겨 싣고 그린아일랜드를 향해 이동했다. 대만은 한국과 비슷하게 서쪽이나 남쪽은 비교적 완만하고 동쪽으로 넘어가는 곳에 커다란 산맥이 있었다. 그린 아일랜드를 가기 위해선 남동부에 있는 타이똥이라는 곳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도로가 그렇게 좋지 않아 남쪽에 있는 카오슝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며 동쪽으로 넘어가는 방법으로 타이똥을 가야만 했다.
새벽 1시 드디어 타이똥에 도착했다. 배 시간까지는 6~7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서 미리 잡아놓은 민박집에서 달콤한 잠을 청했다. 그리고 다시 오전 7시 30분 그린아일랜드(녹도)로 향하는 배를 타고 출발, 파도가 없으면 1시간 10분 파도가 심하면 1시간 40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 배는 우리나라 녹동에서 거문도를 오가는 오가고호와 비슷했다.
그린 아일랜드에 도착!
바람이 엄청나게 세게 부는데 거의 태풍 수준이었다. 과연 다이빙을 할 수 있을까? 걱정하며 배에서 내리다가 깜짝 놀랐다. 섬 입구서부터 엄청나게 많은 스쿠터들이 보인다. 렌탈용이란다. 한두 군데도 1~2백 대도 아니다. 음~ 엄청 많다. ^^;;; 스쿠터를 타고 스쿠버 다이빙을 즐기러 오는 분도 있으니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을 듯.
그린 아일랜드는 스쿠터를 타고 돌면 여유 있게(?) 한 바퀴 도는데 2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자자~ 스쿠터는 그만 보고 민박집으로 체크인~
느낌은 펜션이나 모텔이라기 보단 민박집에 가깝다. 그렇다고 지저분하거나 시설이 오래 되진 않아서 깔끔한 분위기다. 대충 짐을 풀고 앞으로의 다이빙 계획을 세우기 위한 브리핑과 이론교육 등이 점심 식사 후 빠르게 진행 되었고, 이후 장비 세팅과 체크 다이빙을 했다.
재호흡기 첫 해양 실습과 하강조류
재호흡기 다이빙을 처음 시작 한다는 건 오픈 서킷을 몇 회나 몇 년을 했다는 것과는 큰 관련이 없었다. 본부장님과의 첫 해양 실습은 나름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고 준비를 하였으나 중성부력을 맞추기란 쉽지 않았다. 방법의 차이이고 오픈서킷의 습관을 버리고 재호흡기의 기능에 맞게 부력을 맞추는 방법은 전혀 달랐다.
20여 년 간 수천회의 다이빙한 나에게는 은근 자존심이 상하는 일도 벌어지게 마련. 레베카라는 TDI 소속 여 강사와 버디 다이빙을 하는 동안 내 슈트 무릎과 허벅지에 산호들의 흔적이 생겼을 때는 정말이지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몇 차례 해양실습을 하며 부력 맞추기에 전념했던 나는 나름 스트레스가 조금 있긴 했지만, 어느덧 재호흡기와 한 몸이 되어가는 느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포인트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다. 아니 그쪽으로 신경 쓰지도 못한 나였다. 섬 끝자락에 불룩 솟아 나온 큰 바위 포인트였다. 입수하여 22m 부근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중성 부력이 잡히질 않는다. 잘 조절했다 싶으면 내려가고, 올라가고 처음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왜? 재호흡기에선 공기방울이 나오질 않으니까. 나의 버디 레베카의 공기 방울을 보고 조류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공기 방울들이 올라가지 않고 계속 둥글게 말리고 또 말리고 있었다. 수직으로 올라가야 할 공기 방울들이 수평으로만 계속 말리며 우리 주위를 맴돌았다. 신기하기도 했지만 너무나 아름다웠고 아무 곳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었다.
미친 잭피쉬
이젠 나름 중성부력도 잘 맞고 호흡도 편안하게 안정된 상태라 바닥의 아름다운 산호들과 약 0.5m를 유지하고 유유히 유영하며 주변 풍경들을 보고 수시로 재호흡기 컴퓨터와 계기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약 5~6kg 정도 되어 보이는 트레발리가 자꾸 내 눈앞에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로 나타난다. 꼭 뒤에서 앞으로 나타나며 여러 번 나를 깜짝 깜짝 놀라게 했다, 버블이 나오지 않으니 물고기들이 나를 경계하지 않는 것이다. 재호흡기의 큰 장점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사진을 즐기는 분들에겐…….
다이빙 보험과 여행자 보험의 필요성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저녁 식사 후 다이빙 티셔츠를 파는 상점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일본의 타쿠 트레이너가 아무 생각 없이 자동차 뒷문을 열었을 때 커플이 탄 오토바이가 문짝을 치고 넘어져 버린 것이다. 운전하던 남자는 무릎과 발등이 좀 까지는 정도였지만 뒤에 탔던 여성은 넘어지고 나서 팔과 다리를 떨며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패닉 상황,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고 대만 본부장은 황급히 911을 불렀다.
퐝이 말하길 대만은 누구나 보험에 들어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고, 다이빙 숍 직원들과 지인들까지 발 벗고 나서 주었다. 가까운 병원에서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큰 이상은 없지만 타이똥 시에 있는 큰 병원에서 CT 촬영 등 정밀검사를 권장 했기에 퐝과 타쿠, 그리고 레베카 강사는 피해자들과 함께 타이똥 시의 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큰 이상이 없었기에 피해자들과 적절히 합의한 후 퐝 본부장 일행은 그 다음날 무사히 그린 아일랜드로 돌아왔다. 본부장님과 나는 다이빙을 하지는 못했지만 재호흡기에 대한 그리고 텍 다이빙에 대한 이론 교육으로 나름 알찬 시간들을 보냈다.
수없이 회원들과 함께 투어를 다녔지만 특별한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아서 여행자 보험이나 다이빙 보험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지만 이번 사건으로 생각을 달리했다.
그린 아일랜드 맛집 대결
대만의 음식점이나 일반 숍들은 인테리어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음식점을 들어갔을 때 깔끔하고 맛깔스러운 외관을 느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음식들은 한국 음식과 중국 음식의 중간 정도로 너무 기름지지도 않아 우리 입맛에는 잘 맞았다.
길거리에서 치킨이나 어묵도 팔지만 왠지 낯이 익는 생선도 튀겨서 팔고 있었다. 필리핀에서 많이 보았던 날치! 꼭 한번 맛보려 했지만 결국 보는 것에 만족하고 돌아왔다.
녹도에서는 개 대신 아기 사슴을 키우는 곳이 있었는데 식당에서는 사슴 요리들을 팔았다. 퐝의 말로는 정말 키우다가 잡고, 요리해서 판다고 하는데, 음 이건 믿기 힘들었다.
그리고 놀랐던 것은 고래상어 요리였다. 실제로 어선들이 사냥한다는 말을 들었을 땐 기분이 좀 씁쓸했다. 하지만 이미 나온 고래상어 요리를 마다할 순 없는 우리였다. 본부장님 역시 아이 해잇 디스 하면서 맛을 보시곤 음, 벗 딜리셔스라고 웃으며 농담을 했지만 뭔가 불편한 상황이었다.
후식으로 그린 아일랜드에서 유명한 팥빙수를 파는 숍도 갔는데 특이한 점은 자이언트 클램의 껍데기를 그릇으로 담아준다는 것과 모든 팥빙수에 해조류가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일본에서 온 타쿠 트레이너는 오끼나와에서 식당도 운영하기에 유독 관심을 보이며 좋아했다.
한국, 대만, 일본 동시 101m 재호흡기 다이빙
대만에서는 재호흡기로 101m를 들어가는 일이 처음인 듯 했다. 나는 레베카 강사 등 리조트 스태프들과 함께 30m 수심에 머물러 있었고, 본부장님과 대만 본부장, 그리고 타쿠 트레이너는 101m를 향해 들어갔다. 시야가 얼마나 좋았는지 바닥에 있는 노란색 재호흡기를 볼 수 있었다. 어림잡아 70m의 시야는 나오는 듯 했고, 그들은 무엇을 하는지 100m에서 올라 올 생각을 안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10여분이 지난 후에 그들은 알 수 없는 기쁨으로 가득한 표정으로 올라왔고, 미리 계획한 감압 절차에 맞춰 우리와 함께 상승했다.
테크니컬의 늪
내가 미쳤나 보다. 다음 달이면 와이프와 함께 호주로 넘어가는 계획을 했는데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와이프와 상의도 하지 않고 감압절차, ERD, 트라이믹스 등등 교육받을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재호흡기 나머지 과정과 동굴, 난파선 다이빙까지 모두 배우고 싶었다. 6년간 리조트를 운영하면서 다이빙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던 나였다. 2011년에는 겨우 6회의 다이빙만 한 나였다. 더 이상 다이빙은 내가 좋아하는 길이 아니라고 확신했는데 다시 한 번 내 인생은 역시 다이빙이야 라고 느끼게(?) 아니 확신하게 만든 것이 바로 재호흡기이고 테크니컬 다이빙인 것이다.
와이프에게 어떻게 이야기하고 계획을 잡을 것인지는 대책이 없지만 지금 내 머릿속엔 테크니컬 다이빙에 대한 열정과 욕망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다.
김도형
CMAS/PADI/TDI 강사
재호흡기 다이버
골드피쉬 레포츠 클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