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버라면 국내의 바다 환경이 잘 보전되어 있는 곳이 제주도라는 믿음을 가지고 제주도의 푸른 바다에 한번 씩은 안겨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90년대 초반 TV에서는 제주도에 번지는 「백색공포」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백색공포는 인간의 육체를 황폐하시키는 마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피디가 어떤 의도로 백색공포란 단어를 사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약에 의해 인체가 황폐해지듯 제주의 바다 속이 황폐화 된다는 의미로 사용 한 것 같다. 다큐멘터리의 내용은 수중 자원이 풍부하고 수중 경관이 아름다운 제주의 바다 속이 흰색이나 회색으로 변하고 있다는 내용이였다. 즉, 「백색공포」란 “백화현상”을 의미하는 것이었다.백화현상이 일어난 지역은 수산물의 생산량 및 어획고의 저하가 일어나 수산생물에 기대어 생활하는 어민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으로 시름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백화현상의 피해를 알고 있는 어민들은 막연히 “우리 마을 앞바다에는 바위가 하얗게 변하는 현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하루하루 지내왔을 것이다.
감태를 비롯한 대형 갈조류와 다양한부착생물들이 무성한 제주도 수중의 모습
해조류가 무성하게 있어야 할 수중 암반 그러나 무절석회 조류만이 덮여있는암반은 쓸쓸하다 못해 적막해 보인다.
백화현상(白花現像, 갯녹음, Whitening events)이란?“백화현상”의 정의를 살펴보면 연안 암반지역에서 해조류가 사라지고 흰색의 무절석회조류(無節石灰藻類, 마디를 가지지 않는 석회질 성분을 가지는 홍조류의 일종)가 달라붙어 암반지역이 흰색으로 변하거나, 바닷물 속에 고체 상태로 석출되어 떠다니는
탄산칼슘이 침전해 해저생물이나 해저의 바닥, 해저 바위에 달라붙게 되는데, 이 경우 눈이 내린 것처럼 온통 흰색으로 보이게 되는 현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후자의 현상의 발생하는 원인에 대하서는 아직 정확히 밝혀진 것은 없고, 다만 바닷물 속에 녹아 있는 칼슘의 양 및 수온 변화에 따른 탄산칼슘의
용해도 등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또한 백화현상은 우리말로는 '갯녹음 현상'이라 하는데, 갯녹음이란 바다물이 흐르는 곳을 의미하는 '갯'자와 '녹다'의 명사형인 '녹음'의 합성어로 이루어진 순우리말이다. 일본에서는 기소(磯燒, 이소야케) 현상이라 칭하는데, 아마도 타버리고 재만 남은 듯한 모습을 연상하여 이처럼 표현한 것으로 짐작된다.백화현상의 원인은 발생해역에 따라 각기 다른 원인을 가지는 것으로 확인되었으나, 크게 생태학적 요인과 인위적인 요인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두 가지 요인에 의한 백화현상은 현상자체로는 아주 유사하지만 생태학적 요인에 의해 일어나는 경우는 수십 년 또는 그 이상 장기간 지속하면 언젠가는 회복되어 바다 숲이 형성되는 가역적인 과정으로 보고 있으나, 인위적인 요인에 의한 경우는 해양오염으로 대표되어 해조류 뿐 만 아니라 모든 연안 생물의 생존 조건을 빼앗아 오염원 등이 인위적으로 제거되지 않는 한 연안의 모든 생물을 사멸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불가역적인 과정이 일어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따라서 필자는 이 글에서 생태학적 요인에 기인한 백화현상만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무절석회조류들만 붙어있는 바위 위로 성게들만 무성하다.
국내의 연안에서 “백화현상”이 처음 발견된 것은 1970년대 말이었는데, 이후 발생 빈도가 높아지다가 1990년대 말에는
경상북도영덕군과 포항영일만 일대의 동해안으로까지 확산되었으며, 현재에는 동해와 남해 및 제주도를 포함한 남해안의 부속도서 등에서 백화현상이 관찰되고 있는 실정이다. 백화현상으로 인하여 연안의 갯바위에는 분홍색과 흰색을 띤 다양한 무늬의 흰색 물질이 달라붙어 연안 생태계의 1차생사자인 해조류가 점차 소실되고 해중림(海中林)이 사라져, 생산자로서의 기능이 마비되고 있으며, 해조류를 먹이로 하는 소라, 전복,
성게류 등 각종 어패류가 죽음에 이르게 되어 해양 생태계 내 먹이사슬의 균형은 무너져 해양의 황폐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 현상이 자연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현상이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억제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으나, 정부에서는 “바다 숲 가꾸기 사업”, “해중림 조성 사업” 등 막대한 재원을 투자하여 어획고 및 수산생물 생산량의 감소로 인한 어민들의 어려움과 자원회복 그리고 백화현상의 해결방안을 찾고자 동분서주하고 있다.
백색공포를 바라보며….
필자는 십 수 년 간 해조류를 연구해 왔다. 필연적으로 해조류 채집을 위하여 다양한 국내 연안에서 다이빙을 수행하였다. 수년전 해조류 채집을 위해 들어가 바다 속은 갈조류 감태가 해중림을 이루고 있으며, 풍부한 생물상을 나타내는 곳이었으나, 최근 동일한 지역을 다시 들어갈 기회가 생겨 입수하였으나 할 말을 잃어버렸다. 수중 환경이 180° 변해 있었다. 그 동안 나는 얼마나 무지했던가? 일부 전문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백화현상을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한 가지 자연현상의 일부로 치부하며 스스로 위안을 삼고 살아온 것은 아닌지…
마약보다 더한 백색공포에 대한 두려움이 몰려왔다.그곳은 갈조류 감태가 수중암반에 해중림을 이루며 건강한 생태계를 이루는 해역이였으나, 현재는 감태 뿐 만 아니라 어떤 해조류도 붙지 않은 민둥 바위만이 수중에 놓여 있었다. 그 바위들에는 어김없이 흰색 또는 연분홍색 (물속에서 볼 때)의 엷은 플라스틱 덩어리 같은 것이 표면을 덥고 있었다. 바위를 덥고 있는 이들은 이름 끝에 “쩍”이라는 어미가 붙는 산호조류이다. “쩍”류를 포함하는 산호조류는 홍조류에 속하며 석회질을 주성분으로 가자고 있다. 일반적인 해조류와 같이 엽상체(잎) 또는 부착기는 없으나 딱딱한 덩어리 형태로 바위와 같은 기질 표면에 단단하게 달라붙는다. 쩍류의 표면은 종류에 따라 매끈한 것이 있는가 하면 작은 돌기들이 나있는 것 또는 불규칙한 혹들이 표면에 나있기도 하였다. 쩍류가 붙은 바위에는 감태가 서식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감태가 자라던 바위 위로 쩍이 침입하여 감태를 몰아내고 감태의 서식장소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 것이었다.
백화현상을 일으키는 암반 지역에서 대표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혹돌잎과진분홍딱지
자연이 주는 경고 필자는 대형 갈조류와 다양한 해조류가 숲을 이루는 곳과 해조류가 사라지고 민둥 바위에 쩍이 뒤덮여 몇 마리 성게만이 그 옛날의 영광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수중세계의 모습이 너무나 쉽게 상상되었다. 마약은 인간의 육체를 병들게 하지만 해양에서의 백색공포 “백화현상”은 인간이 살아가는 터전을 황폐화시키고 있다. 최근 인터넷과 신문 등에서 다시 한 번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 등으로 백색공포를 알리고 있었다.『동해연안 ‘사막화’ 심각 – 바위들 석회질로 덮여 해조류 사라져』, 『독도에도 백화현상 심각』90년대 초반에만 하더라도 제주도에 국한된 현상처럼 보이더니 남해와 동해안을 위협하고 있다. 기자들은 가는 곳마다 막대한 어업 손실에 더 나아가 오염이 가중되어 본래 생태계의 모습으로 회복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우려를 적고 있었다. 더욱이 연안과 멀리 떨어진 울릉도에도 백화현상에 관한 보고가 속출하고 있으니 큰일이 아닐 수 없다. 혹자는 독도에도 백화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소리 소문도 없이 슬며시 다가와 생태계를 파괴하고 그에 따른 엄청난 피해를 사람들에게 안겨주는 이 백화현상은 자연이 주는 경고의 시작은 아닐까? 생태계를 잃는 순간에 우리가 향유하는 모든 것을 일시에 잃는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하나의 심각한 사건임에 틀림이 없다. 회백색의 바위 위에 듬성듬성 성게들을 놓아둔 듯한 동해 바다 속 풍경은 실로 예전의 것이 아니다. 열대 바다보다 우리 온대 바다를 더 좋아하는 나는 파도가 일렁이고 키 큰 해조류들이 힘차게 춤을 추는 그런 남성미 넘치는 바다를 좋아하는데 이제 우리의 동해바다에서도 그것을 볼 수 없다는 말인가?
대황이 무성한 울릉도의 건강한 수중암반이런 백화현상의 해결 방책은 없는 것일까?
백화현상에 대하여 이십년 이상 연구해온 일본도 아직 정확한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연구되어 온 결과에 따르면 크게 두 가지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그 중 하나는 동식물간의 먹이망 구조의 붕괴에 직접적인 원인이 있다는 쪽이다.
유익한 해조류인 감태, 미역, 모자반 등을 먹이로 하는 성게와 뿔소라, 전복 등은 자연상태에서는 해조류를 먹고 또 다른 포식자들에게 먹히면서 생산자인 식물, 일차소비자인 초식동물 그리고 이차 소비자인 육식 동물들이 적절히 존재하면서 균형을 유지해 왔었다. 그러나 어민들은 초식 동물인 성게, 뿔소라, 전복 등 특정 종들 (특정식물 만을 섭식함)만을 어획대상으로 하다 보니 수많은 종패를 만들어 계속 바다에 투입 시켰다. 이로 인해 지나치게 많은 초식자들이 대형 갈조류들이 먹어치워 사라지게 하고 서식장소를 가지고 경쟁 상태에 있던 석회질 해조류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자연계의 평형상태가 인간의 간섭에 의해 붕괴되어 일어난 현상이라는 견해이다.필자는 백화현상의 원인이 그 어느 것이든 모두 사람들의 행동(필자 포함)에 의해 기인된 것으로 확신한다. 현재 백화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연구가 끝임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진행형인 연구들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사람들의 생활양식을 바꾸지 않는 한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바다를 자주 접하고 좋아하는 이들이 먼저 생활양식을 바꾸는 일에 앞장서야 하지 않을까?
“갯녹은 연안이 바다 숲으로 바뀌는 그날까지….”
백화현상이 일어난 강원도 양양의 수중 암반. 암반 전체를 진분홍딱지가 덮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조금 남은 구멍갈파래 마저성게들이 벌떼 같이 몰려들어 먹어치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