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합 껍질과 그 속에 자리잡은 베도라치와 알들겨울철 엄청난 도루묵 무리들이 동해의 얕은 해안으로 몰려들어와 장관을 이루던 시기에 우연히 바위 곁에 덩그러니 붙어있는 빈 홍합 껍질이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약 15cm 는 되어 보이는 소위 섶이라고 하는 동해안의 고유 패류이다. 수명을 다했는지 그 단단한 빈 껍질만 남아 바위 위에 견고하게 붙어있어서 제 한 몸 의지할 곳 없는 작은 어류들의 보금자리로 재활용되고 있었으니 그 모습이 아름다운 대물림처럼 보였다.
모래 바닥에서 자주 만나던 가느다란 베도라치들, 어느 순간 한 녀석이 그 홍합 주변에서 자주 목격이 되던 것이 생각이 나서 몇 번의 다이빙 중에 습관적으로 그 빈 홍합 속을 들여다 보게 되었다. ^^
아! 알이다. 작디작은 알들을 보니 약 하루 이틀 전쯤에 산란을 해놓은 것 같았다. 그 비좁고 길쭉한 빈 홍합이 이 베도라치에게는 최적의 산란터가 되어준 것이다. 바위 측면에 붙어 있고, 검고 단단하며, 적당히 벌어진 틈새로 베도라치만이 들락날락 거릴 수 있는 그야말로 안전이 담보된 멋진 보금자리였다.
12월 14일에 이 녀석의 산란을 목격한 후로 필자는 습관적으로 하루 또는 3 일을 넘기지 못하고 마치 그 동안 무슨 변고나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노파심과 어떻게 알들을 보육하며 변화하고 있을 지 궁금증에 자꾸만 그곳을 찾게 되었다.
홍합껍질 속에 자리잡고 알을 보육하고 있는 베도라치. 반투명한 알에 생긴 까만 눈들이 보인다. 이후 1월 15일 그러니까 대략 30일간을 계속적으로 관찰하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하얀 알들은 점차 반투명으로 변했고, 이내 까만 눈이 생겨나면서 서서히 몸체가 만들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알의 크기는 좁쌀 보다 조금 클까 말까 하는 정도이기에 기본렌즈에 배율을 높인 디옵터를 끼우지 않고서는 촬영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 작디작은 알들을 대략 천여 개는 족히 넘을 듯 산란해 놓고 어미 베도라치는 잠시도 쉬지 않는다. 어떨 때는 약 30 여분간 녀석의 행동을 지켜보다가 물 밖으로 나올 때도 있었는데 어미는 그 30 여분 동안 내내 알을 계속적으로 뒤척이고, 이따금 옆지느러미와 꼬리지느러미로 알들을 먼지 털듯이 털어내기도 하고 또 입을 알에 갖다 대고서 무엇인가를 체크하는 행동을 하곤 했다.
그 빈 홍합 주변에는 모자반들이 있었는데 밤이면 작은 좁쌀고둥들이 잎새에 매달려서 먹이활동을 하곤 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홍합 주변에 가까이 접근한다는 지 혹은 홍합 속으로 들어갈라치면 그 바쁜 보육의 혼란스러움 속에서도 용케 그 작은 고둥을 집밖으로 물어내버리는 행동에 나는 입이 떡 벌어지는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
점차 반투명한 색으로 변해가던 알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초롱초롱한 까만 두 눈이 생겨나고 또 조금 시간이 지나니 그 좁쌀만한 알들 속에서 몸을 꿈틀거릴 만큼 성장을 해가는 모습이 역시나 생명의 신비로운 감동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었다.
쉴새 없이 수류를 일으켜 신선한 산소를 공급하는 베도라치약 33 일이 지날 즈음 이제 알들은 까만 색으로 부화가 임박했음을 알리고 있었고, 보육에 지친 어미는 초췌한 모습에 더욱 힘들여 알을 뒤집고 온몸으로 바람을 일으키며 성장해가는 알들에 정성을 쏟아 붓고 있었다. 이제 길어봐야 일주일을 넘기지 않아 부화가 이루어질 것으로 추측되었다.
하지만 필자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 즈음에 한 5 일정도 그곳을 찾지를 못하게 되었다. 약 일주일이 지나서 부리나케 다시 그 베도라치의 산란터를 찾았을 때는 이미 부화가 다 이루어졌는지 소란스럽던 베도라치 가족의 온기는 사라지고 마치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다시금 빈 홍합껍질만이 덩그러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간 지극정성으로 산란과 보육에 시간을 보내는 베도라치의 모습을 사흘이 멀다 찾아와서 가까이 지켜보았던 나로서는 못내 가슴이 허전했다. 그만큼 정이 많이 들었었나보다. ^^
이제 그 부화된 알들이 어린 치어의 시기를 잘 견디어낸다면 또 주변 바다에서 그 앙증맞은 유어의 모습를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주변에서 같이 포란(알을 낳아서 부화시키던)을 하던 뚝지는 부화가 끝나면서 체력이 고갈되어 삶을 마감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이와 다르게 베도라치는 그 떠나는 모습을 보지를 못했으니 내년 겨울에는 또 다시 부화의 과정을 만나보게 될 것을 소망해본다.
베도라치의 알들이 부화하는 순간을 보지 못해 아쉽지만 다음 시즌에 또 만날 것을 기대한다.
박정권(참 복)
신풍해장국 대표
수중사진가 &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