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다이빙하려면 독립적인 다이버로 만들어라!
안전한 아쿠아리움 속에서 스태프의 도움을 받아 수중을 즐기는 딸
필자는 다이빙 강사이고, 테크니컬 다이버이자 수중사진가이며 다이빙
경력 20년에 다이빙 횟수도 2000회가 넘는 프로페셔널
다이버이다. 그간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그래도 나 자신의 다이빙과 역할에 대해서는 별문제 없이 성실하게
해왔다. 하지만 얼마 전 아빠로서 성인이 된 딸과 함께 다이빙을 하다가 매우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 수심 15m에서 딸이 패닉에 빠져서 마스크와 호흡기를 모두 뱉어
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맞을까?
사고의 순간
입수하자 마자 딸의 마스크를 보니 김서림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하강하여
수온약층을 지나는 순간 김서림이 심해져서 아예 딸의 눈이 보이지 않았다. 딸에게 마스크에 물을 조금
넣어 클리어링을 하라는 신호를 몇 번 보냈다. 드디어 딸이 이해를 했는지 마스크를 살짝 들어 물을 집어
넣었다. 이제 코로 숨을 불어서 물을 빼내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아이가 코로 숨을 못 내쉬고 있다. 그럼 코에 바닷물이 들어가서 괴로울텐데 하는 생각이 든 것도 잠시
아이는 마스크를 아예 벗었다가 다시 쓴다.
마스크 전체가 이제 바닷물로 가득했다. 그런데도 코로 숨을 못내 쉰다. 물이 빠질 리가 없다. 호흡기로 숨을 쉬는데 코로 함께 물이 들어갔을 것이다. 아이가 괴로운지
마스크를 벗어버린다. 그리고 호흡기마저 뱉어버린다. 머리
속에 빨간색 경광등이 켜졌다.
옆에 있던 다이빙 숍의 스태프가 아이가 뱉은 마스크를 바로 붙잡아 다시 입 앞에 가져다 댄다. 하지만 이미 패닉에 빠진 아이는 호흡기를 뿌리치고 수면으로 올라가고 싶은 생각뿐인 듯하다.
여기서 급상승을 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 패의 팽창으로 인한 압력손상과
동맥공기색전증, 붙잡고 있으면 물을 마셔서 익사내지는 준익사이다. 이미
패닉에 빠진 아이는 붙잡는다고 정신을 차려서 레귤레이터로 호흡을 다시 하고, 마스크를 다시 착용해서
통제된 상승을 할 수는 없다. 빨리 상승할 수 밖에 없다. 기도
개방을 유지한 상태에서 급상승이다! 생각과 동시에 몸은 아이의 BC를
붙잡고 핀을 차기 시작했다. 수심 15m에서 수면까지 상승하는데
그 시간이 결코 짧지 않았다. 물을 마시면 안 되는데, 숨을
참으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을 하며 상승했다. 드디어 수면에 올라왔다.
아이의 상태를 본다. 숨을 쉰다. 아이가 이마를
찡그린다. 괜찮으냐고 물어보니 머리가 약간 아프다고 한다. 심호흡을
하라고 했다. 기침도 없다. 의식도 있다. 가슴은 괜찮으냐고 물어보니 가슴은 아프지 않다고 한다. 일단 폐에는
문제가 없는 듯하다. 스태프와 함께 아이를 끌고 섬으로 데려가서 출수를 했다.
아이를 그늘로 데려가서 쉬게 하고, 물을 마시게 했다. 일단 외상은 없다. 다이빙 시작 후 5분도 되지 않아서 상승한 것이니 감압병의 우려는 없다. 머리가 아픈
것은 상승하는 동안 호흡을 하지 못해 이산화탄소 누적과 산수부족이 동시에 일어났기 때문일 수도 있다. 휴식을
취하면 나을 것이다.
4년만에 다이빙을 하는 딸
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스쿠버 다이빙을 배웠고, 필리핀에서 오픈워터 해양실습과 펀다이빙을 했으며, 이후 제주도와
필리핀에서 한번씩 다이빙을 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다이빙을 한 것이
4년 전이었다. 하지만 아빠가 프로 다이버이기에 체험 다이빙하듯이 진행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이빙 숍의 스태프도 옆에 붙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마스크 물빼기, 호흡기 찾기 등의
가장 기초적인 기술들만이라도 잠깐 연습했다면 이런 패닉 상황에 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픈워터 다이빙
교육과 체험 다이빙을 진행한 것이 너무나 오래 전인 아빠가 정말로 아무 생각 없이 딸을 데리고 들어가서 위험에 처하게 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아무 부상 없이 잠깐의 휴식으로 진정된 딸이 다시 다이빙을 하겠다고 한 것은 정말로 다행이었다.
다시 시도한 다이빙
딸이 트라우마가 생겨서 스쿠버 다이빙을 못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아빠는 최대한 진정을 시킨 다음에
다시 한번 천천히 시도해보기로 했다. 먼저 수면에서 스노클링을 하며 마스크 물빼기를 연습했다. 그런 다음에 장비를 착용하고 하강라인을 붙잡아 가며 천천히 입수를 했다. 수심 20m까지 천천히 내려갔다가 별 문제가 없는 것을 보고 다시 천천히 상승하였다.
한번 놀란 다음에야 제대로 다시 시작한 것이다.
다음에는 카메라를 들고 딸과 다시 하강했다. 노란씬벵이를 만나 촬영하고, 가시수지맨드라미를 배경으로 사진도 촬영했다. 마침 입수한 선배 다이버와
함께 기념사진도 촬영해 주었다. 슈트가 약간 헐렁해서 딸이 금방 추위를 느끼는 것 같아서 상승하기로
했다. 수온약층을 지나니 시야는 흐렸지만 수온이 따뜻해져서 줄도화돔과 소라 등을 보여주고 사진도 몇
장을 더 촬영했다. 이렇게 패닉에 의한 급상승을 하고도 다시 차분하게 재시도하여 무사히 다이빙을 마친
것이다. 그 다음 날은 시야가 좀 더 좋고 안전한 아쿠아리움 안에서 체험다이빙을 하기로 했다.
노란씬벵이를
만나 함께 사진을 촬영했다.
가시수지맨드라미 옆에서도 포즈를 취하는 딸
아빠에게 일어났었던 몇 가지 문제
그날은 날이 너무 더웠다. 땡볕에서 본인 장비와 딸의 장비를 세팅하고
난 뒤에 딸이 슈트를 입는 것까지 도와주었다. 너무 더워서 슈트를 반쯤 입고는 물로 뛰어 들어가서 나머지를
입어야 했을 정도였다. 그렇게 몸을 적시고 밖으로 나와 다이빙을 위해 장비를 착용하는데 웨이트벨트의
길이가 짧아 허리에 착용할 수가 없었다. 다이빙 숍의 스태프들이 먼저 장비를 챙겨서 나간 다음에 따로
나왔기 때문에 미쳐 웨이트벨트의 길이를 체크하지 못한 것이었다. 더군다나 다이빙 숍에서 사용하는 웨이트는
코팅 납이라 윙BC의 웨이트 포켓에는 들어가지가 않으니 웨이트벨트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2kg 웨이트 2개를 빼니 겨우 버클을 채울 수 있었다. 일단 4kg만 착용하고 입수가 되는지 시도를 해보았다. 하지만 잘 가라앉지 않았다. 스태프에게 웨이트 2개를 다시 받아 손에 들고 있었다. 이렇게 아빠가 먼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다이빙 숍의 스태프가 카메라까지 건네 주었다. 순간
망설이다가 카메라를 받아서 팔에 걸쳤다.
그런 다음 딸이 입수하기를 기다렸다. 잠깐 머뭇거리던 딸은 자리를
조금 옮겨서 자이언트스트라이드로 입수를 했다. 수면에서 괜찮은지 확인을 하고, BC에 바람을 빼고 입수를 해보자고 했다. 곧이어 스태프도 입수하여
함께 하강했다. 딸은 이퀄라이징도 잘해서 금방 수심 15m 정도까지
내려왔다. 시야가 뚫리면서 수온이 낮아져 약간 차다는 느낌이 났다. 아빠는
본인의 마스크에 자꾸 물이 들어와 마스크를 다시 정리했다. 수온이 차가워지면서 딸의 마스크가 완전히
김이 서렸다. 김서림 방지제를 발라주지 않았던 것이다. 아빠의
마스크도 마찬가지였다. 마스크에 물을 좀 넣어서 흔들면 그래도 잠깐은 괜찮아지는데 아빠가 그렇게 하면서
딸에게도 그렇게 해보라고 했다. 처음엔 못 알아듣던 딸이 어느 순간 마스크에 물을 집어 넣었다. 그런데 물을 빼지 못한 것이다. 딸을 돌봐야 하는 아빠가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황이라 미처 딸을 챙기지 못했던 것이 이번 사고의 원인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독립적인 다이버로 만들어라!
아빠는 프로페셔널 다이버였기에 언제든지 딸을 챙겨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딸이 아빠와 함께가 아니라면 다이빙을 할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딸을 독립적인 다이버로
만들기보다는 기본적인 것만 가르치고 나머지는 데리고 다니면서 챙겨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이빙 환경과
상황은 항상 그렇게 여유로운 것이 아니다. 딸이 스스로 독립적인 다이버가 되어야 아빠도 딸도 보다 안전하고
재미있게 다이빙을 즐길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독립적인 다이빙 스킬을 갖지 못한다면 버디는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 하고, 자신의 즐거움을 느낄 겨를이 없다.
그리고
우호적이지 못한 상황들이 겹칠 때 스스로는 물론 사랑하는 사람까지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다이빙을 즐기고 싶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독립적인 다이빙이 가능하도록 충분한
능력을 배양시켜줘야 한다. 그래야 본인도 안심할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본인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오히려 도움이 되는 진정한 버디가
되는 것이다.
다음에 딸과 함께 다이빙을 할 기회가 생긴다면 사전에 충분한 재교육을 시켜서 독립적으로 다이빙이 가능한 상태에서
함께 다이빙을 하기로 딸과 약속을 했다. 빨리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