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 대진에서 혹돔을 보고 와서
풀린듯한 날씨가 주말이 되니 다시 차가워진다. 거의 2주
동안 강원도의 바다는 파도가 거칠어
들어가지를 못했다. 그런데 또 강원도 지역은 다이빙을 못 한다고 한다. 하지만 경북 '대진'은
시야가 좋고 다이빙이 가능하니까 무조건 내려 오라는 '김광복' 강사님을
믿고 찾아 왔는데 대진에서 가까운 포항은 이른 아침부터 지진이 발생했다고 인터넷에 기사가 크게 나온다. 괜찮다는
얘기를 듣고 왔는데 포항의 지진과 상관없이 이곳 대진은 평화롭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바다는 잔잔하고
조용했다. 새벽에 도착 후 잠시 눈을 부친 사이 너무나 피곤 했는지 이른 아침 지진 때문에 이곳 영덕도
땅이 살짝 흔들렸다는 느낌을 나만 느끼지 못했다.
첫 다이빙 준비를 마치고 바다를 한번 바라본다. 옷깃을 여미는 바람이 세차지만 다이빙을
하기에는 햇볕이 너무나 따사롭다. 오늘따라 하늘도 유난히 파랗다. 서울에서
이곳 대진까지는 3시간 30분, 안동에서 영덕 IC까지 고속도로가 개통이 되어서 이제는 조금만 부지런하면
서울에서 당일 다이빙이 가능해졌다.
서울에서부터 함께 간 '박용진'씨와 부산에서
온 다이버 2명과 함께 입수를 했다. 첫 다이빙은 철어초를
들어 갔다. 수심 약 5m 정도가 되었을 무렵 20m 바닥에 있는 인공 구조물인 '철어초'가 한눈에 들어 온다. 역시 김광복 강사님의 말처럼 시야가 좋았다. 이곳은 예전에 사각형의 모양이었지만 어느 날 태풍이 지나 가고 나서 사각 어초가 쓰러져서 지금은 형태만 남아있고
약간 비스듬히 누운 모양을 하고 있다. 그래도 계절에 따라 수많은 고기들이 무리를 이루며 다양하게 서식을
하고 있다. 이날은 어마어마한 수의 볼락 치어들이 떼를 이루며 열병식을 하고 있었다. 그 순간을 놓치기 싫어서 카메라를 들이 대고 사진을 찍어본다. 그런데
스트로브가 터지지 않는다. 왜 이럴까 하면서 수심 20m에서
한참을 만지작거려본다. 정신이 나간 스트로브는 이렇게 아름다움 광경을 닮지 못하고, 완전히 먹통이 되어 버렸다. 할 수 없이 수중랜턴에 의지해서 이리저리
어초의 모습을 나의 TG4 카메라에 담아 본다. 유난히도
시야는 좋았고, 수많은 물고기의 무리는 일렬로 향해서 사진 찍기 좋았고, 오늘따라 하늘도 너무나 새파래서 수면을 바라보니 물색도 덩달아 파랬던 순간 하필이면 스트로브의 이상으로 인해서
아쉬움만 남긴 첫 다이빙이었다.
다이빙을 마치고 스트로브의 이상이 아니라 광케이블의 이상임을 알고 김광복 강사님이 응급조치를 해 주었다. 다시 정상적으로 작동이 되는 스트로브…두 번째 다이빙도 다시 한번 '철어초'에 들어 가고 싶었지만 나 혼자 하는 다이빙이 아니라서 대진에서
유명한 '깜북이' 포인트로 들어갔다. 웻슈트로 다이빙을 한 박용진씨는 첫 다이빙을 마치고 너무나 추워서 두 번째 다이빙은 포기하고, 나와 부산에서 온 다이버 2명 그리고 이번에는 김광복 강사님이 동행을
해 주었다.
깜북이 포인트에 도착 하니 오전보다 바닷바람이 더 매서워 졌다. 그래도 물색은 여적 파란
빛을 띠우고 있었다. 너울이 조금 더 친다. 서둘러 입수를
시도 하고 나니 수심 10m의 암반 사이에 볼락무리들이 떼를 지어 숨어 있다. 김광복 강사님을 따라 가다 보니 군데군데 사진을 찍으라고 알려 주신다. 이날
처음으로 '쥐노래미'의 알을 보았다. 이제 1~2주 후면 부화를 할거라고 하는데 쥐노래미의 알들은 작은
점 같아서 얼핏 보았다면 그것이 알이었나 싶을 정도로 무심히 지나칠 뻔 했었다. 작은 직벽으로 이루어진
자연암반 한쪽에 군락을 이룬 히드라 무리에는 '눈꽃송이갯민숭이'가
여러 마리 모여있었다.
한참을 사진을 찍는데 같이 들어간 다이버가 나에게 다가와 따라 오라고 손짓을 한다. 무언가
있나 해서 암반 사이를 들여다 보니 약 1m가 되어 보이는 '혹돔'이 부리부리한 눈을 뜨고 암반 깊숙이 몸을 숨기고 있었다. 스트로브의
빛이 닿지 않아서 줌으로 당겨서 수중랜턴을 비추고 사진을 찍어 보았다. 맘에 들만한 사진은 아니지만
혹돔의 모습은 선명하게 찍혔다. 예전에도 이곳에서 여러 번 다이빙을 하면서 혹돔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날 실제 내 눈으로 확인한 것은 처음이었다. 오래 전에 제주도에서 혹돔을 본적은 있지만 이곳 경북
쪽에서 서식하고 있는 혹돔을 보고 나니 같이 다이빙 했던 일행들도 신기 했는지 잠깐 보았던 혹돔의 얘기는 끝이 없었다. 이마에 혹을 단 것처럼 뚝 튀어나온 못생긴 모습이 약간은 비호감이다. 하지만
우리 다이버들에게는 요즘 아이돌 연애인 못지 않은 인기를 갖고 있었다. 천천히 암반을 돌다 보니 여기저기에
많은 수의 '우렁쉥이'가 화려하게 꽃이 핀 것처럼 은은히
붉은색을 자아낸다. 일부로 채집을 못하게 하다 보니 수중에서 이런 고착 생물을 구경하는 재미와 함께
멋있다는 느낌이었다.
상승 중에 김광복 강사님이 사진을 몇 장 찍어 준다. 안전정지를 하면서 수중으로 내리
쪼이는 파란 햇살이 물안경 너머로 내 눈을 비춰준다. 수면은 약간의 파도와 매서운 바람으로 인해 거칠었지만
물속은 너무나 고요하다. 단지 추운 날씨만 뺀다면 더 오랫동안 다이빙을 하고 싶은 아쉬운 날이다. 유난히도 맑았던 수중 시야가 몇 일이 지나서도 그리운 건 행복한 바다 때문이 아닌가 한다. 흔히 한국바다를 잘 모르는 다이버들은 외국바다가 무조건 좋다고만 한다. 어쩌면
외국은 따뜻한 수온과 다양한 열대 어종과 화려한 색감 때문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이번 대진 다이빙처럼
한국 바다에서도 보기 힘든 어종을 만나고, 맑은 시야를 경험 해 본다면 한국바다도 외국바다보다 멋진
매력이 있다는 것을 느낄 것이라 생각이 든다. 2회 다이빙을 마치고 서울에 도착한 시간은 일요일 저녁 5시 반이 이었다. 대진이란 곳이 서울에서 가기에는 예전에 멀게만
느껴졌지만 이번에는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다음에 대진 바다를 한번 더 찾아 가기로 같이 간 일행과 약속을 했다.
이날 함께 다이빙 한 김광복 강사는 한국수자원관리공단 동해지사 기획운영팀에서 일하고 있다. 집이
대진스쿠버 옆이라 주말에는 대진스쿠버에서 다이빙도 하면서 스태프처럼 일도 도와 준다. 물빛 사진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수중 사진도 여러 번 입상을 한 경력을 갖고 있다. 이날 함께 다이빙 하면서 나는 모처럼
프로의 사진 찍는 모습을 구경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첫 다이빙을 마치고 김광복 강사님이 광케이블에
대한 응급조치가 없었다면 이날 그나마 몇 장 되지 않는 화려한 사진은 닮지 못했을 것이다.
이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