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의 섬 로타_Rota
Island, North Mariana Islands
다이버의 로망 중에
하나라면 단연 보다 멀리 보이는 쾌청한 시야를 꼽을 수가 있을 것이다. 지구상 가장 깊다는 10,800m의 해구가 위치한 태평양의 한가운데 위치한 작은 섬 로타. 가는
길은 인천에서 사이판을 거쳐서 다시 경비행기로 40 분 정도 들어가면 하루 일정이 금새 지나가고 마는
여정이다.
섬 중턱에 위치한 로타
비행장을 내려서 열대림이 울창한 숲길 사이로 연평균 27℃에 이른다는 그다지 불쾌하지 않은 기후를 느끼며
달려보는 길 위의 풍경은 깨끗하고 조용하며 그저 자연이 자연답게 잘 보존되어 있다는 첫인상을 받았다.
서둘러 그 맑기로 손에
꼽는다는 이곳에서의 다이빙을 시작한다. 섬 서북쪽의 길다란 지형을 축으로 송송빌리지라는 마을이 형성되어있고, 작고 예쁜 항구가 지형을 마주보며 자리하고 있다. 바람이 어느 쪽에서
불든 다이빙은 항상 가능하다는 입지적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반원형으로 그려진 지형을 따라 체크다이빙으로
첫 입수를 하는데 그야말로 이제껏 만나지 못했던 것 같은 청명함에 온몸에 전율이 흐를 지경이다. ^^
수심 20m 이내로 리프를 따라서 한 바퀴 돌아보는 내내 대체 이 정도면 시야가 몇 미터나 될 것인가가 계속 궁금했다. 14 명의 다이버가 유영을 하는데 앞서거니 뒷서거니 그 인원이 모두 한눈에 다 들어오고 아스라이 모래 바닥이
보이는 곳에도 여지없이 강렬한 햇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화산암의 특성 탓인지
암반에는 부착생물군들이 자리를 잡지 못해 물속 환경은 벌거벗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군데군데
경산호가 조금씩 자라고 있었고, 이따금씩 산호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기도 했지만 어류들은 종의 다양성이
부족하고, 그 개체수 또한 눈 씻고 봐야 할 정도로 작은 것이 무척이나 아쉬운 순간들이었다.
가이드에게 출수했던
포인트의 바닥수심을 물어보니 50m 정도라고 하는데 시야가 50m는
족히 나온다는 이야기다.
수중에는 화산으로 섬이
생성될 때 특이하게 만들어진 수중동굴이 있고, 특이하게 생긴 아치도 있었으며 울산바위만한 암반덩어리들도
심심치 않게 보였으나 전반적으로 보면 그저 부착생물군이 빈약하게 말끔한 상태인 제주 한개창 수중이라고 봐도 무방할 모습이었다.
섬이 만들어지고 그
오랜 세월을 지나오면서 열대바다의 호조건을 갖춘 지역에 수중생물군이 이토록 뿌리를 내리지 못했음이 못내 궁금하고 사진을 하는 다이버로서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둥근 만을 따라 완만한
슬로프 형태의 지형으로 암반이 바닥으로 이어져있어 초심자도 쉽게 맑은 시야에서 안전하게 다이빙을 즐길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30m 권에서는 불법조업 선박을 수중어초 목적으로 바닥에 가라앉혀 놓은 곳이 포인트로 이용되기도 했는데 난파선
포인트가 대략 5 곳은 되기에 색다른 다이빙도 겸할 수 있었던 투어였다.
특히 2차대전 당시에 사이판이나 인접한 티니안의 격전지와는 달리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비껴나 있었다는 운 좋은 섬이었다고
전해 듣는다. 하지만 그곳에도 해안선을 따라 돌산을 파내고 커다란 대포를 설치해 놓은 일본군 주둔지가
몇 곳 남아있었다.
수중 32m 모래 바닥에 길이 120m에 무게는 4400 톤이나 되는 전쟁물자를 실어 날랐던 일본 상선 쇼운마루 호가 누워있어 그곳 또한 지금은 다이빙 포인트로
이용되고 있었다. 사이판과 티니안 그리고 팔라우로 일본 본토에서 전쟁물품을 싣고 항해를 거듭하다가 딱
한번 로타 섬으로 항해를 해서 거의 내만에 다다를 즈음에 미군의 어뢰를 맞고 지금 그 자리에 침몰되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었다.
마치 유적을 둘러보듯
역사나 유래를 알고 그 앞에 서본다는 것은 좀 더 깊이 있게 상상의 감정이 동반되어 숙연하기도 하고, 그
숨가빴던 현장을 잠시 들러본다는 것이 벅차기도 한다. 비록 74년
정도 세월이 흐르긴 했지만 커다란 엔진과 선수는 온전히 남아있었으며, 실려있던 적재품 중에 차량으로
보여지는 몇 점들이 을씨년스럽게 난파선 주변에도 남아있었다.
둘러보는 섬 주변 어느
곳이든 40m 수심에서 올려다 보아도 우리가 타고 온 수면의 작은 보트가 선명하게 보일 정도였다. 자칫 하면 수심이 얕다고 착각하고 잔압 관리를 소홀히 하기 십상이라 맑은 물일수록 수심체크나 잔압 확인을 게을리
하면 안될 것이다.
강렬한 스팟라이트로
유명한 로타홀 포인트에서는 하늘로 뚫려있는 홀의 천장에서 강한 빛이 내려오지 않아 조금 아쉬웠다. 커다란
동굴입구와 측면으로 뚫려있는 또 다른 진입로가 한 곳으로 만나며 굴 끝 쪽에는 또 하나의 하늘이 보이는 작은 창이 나있어 한 무리의 홍옥치와 주걱치
무리가 보금자리 삼아 살고 있어 반가웠다. 길쭉한 크랙 속에는 커다란 랍스터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강렬한 태양빛이 홀
내부에 수직으로 내리 비추는 황홀경을 보려면 5월에서 7월
이라야 가능하다는 것도 이번에 촬영 팁으로 전해 듣는다. 다시 이곳을 찾게 된다면 분명 6월 언저리에 일정을 잡아보리라 다짐하며 그 기묘한 로타홀 안에서의 기억을 곱게 접어 놓는다.
로타에서는 다이빙 포인트에는
일체 앵커를 내리지 않았으며 수중에 적당한 곳에다가 사슬로 자리를 만들어놓고 수면에 커다란 부위를 띄워놓아 다이빙 보트들은 그 부표에 배를 묶어놓고
다이빙를 하는 시스템이었다. 특이한 것은 무조건 다이빙이 끝나면 트레일러를 이용해서 보트를 뭍으로 끌어올려
놓는다는 것이다. 그곳 로타 섬의 선박운용 수칙이 그러한 탓인지 아무튼 하루 3 회의 다이빙을 하는 3 번 모두 내리고 끌어올리기는 여지없이 실행되었다.
작은 항구 앞에는 거의
100년은 된 일본의 제당공장터가 남아있었다. 좁은 철로에
덩그렇게 남아있는 그 당시 사탕수수를 운반하던 증기기관차는 그 고단했던 100년 전 섬에서의 생활들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사이판과 티니안에서 제당공장이 큰 성공을 거두어 이곳 로타 섬까지 확장을 했으나
유독 로타섬에서는 사탕수수농장이 실패를 했다고 전해진다.
섬에는 오래 전에 만들어진
낡은 도로가 있는데 한 바퀴 돌아보면 그야말로 때 묻지 않은 수수함을 느끼게 된다. 해안가 곳곳이 천연
수영장이며 잡티 하나 없는 비치가 보존되어 있었으며, 밀림 속의 야자수는 임자 없는 야자열매들이 절로
익어가고 또 가을바람에 소리 없이 떨어지는 그런 인적 드물고 조용하기 그지없는 환경을 지니고 있었다.
서류상 섬주민은 3000명 정도가 된다는데 대낮에는 사람 만나기가 힘들었고, 주인 없이
밀림을 집 삼아 살아가는 야생 닭들이 반갑고, 이름 모를 산새들이 우렁찬 울음소리가 소음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 진정한 휴양지로서의 면모를 지니고 있는 곳이었다.
3
일간 7 회의 다이빙을 했기에 이 물 맑은 로타 섬의 다양한 포인트를 둘러보기에는 부족한 일정이었다. 미루어 생각하건대 수중의 생태계는 다소 빈약함을 느끼는 곳이지만 30℃에
육박하는 수온과 맑은 시야는 가벼운 차림으로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게 해주기에 분명 다이버들이 미소 짓게 만들 것이다.
짧은 일정이고, 처음 방문하는 곳이라 그저 감탄 속에 둘러보는 것으로 시간을 많이 보냈 던 것같다. 그래서 이 다음에 한번 더 재방문의 약속을 하게 하는 깊은 여운이 남게 한다.
그 아름답고 천연의
자연스러움이 부디 오래도록 간직되어서 언제고 이곳이 모든 동식물과 사람들에게도 신선한 힐링의 장소로 남아주기를 바래본다.
항상 안전하고 즐거운
다이빙이 되세요.
참복 박정권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