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닐라오 수중사진 세미나 소식을 처음 접한 건 2월 초였어요. ‘이거 재미있겠다! 근데 날짜가 3월이네. 난 3월 초에 레이테 가니까아쉽지만 패스~’ 라고 생각했죠. 그러던 중 2월 말, 레이테 투어와 할머니 팔순이 겹친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작년 8월에 정신 없이 세부퍼시픽 프로모션 표를 지.르.다. 보니 할머니 생신을 깜빡한 거죠. 80년 전에 정해진 할머니 팔순을 8개월 전에 계획한 다이빙 투어로 빠질 수는 없어 기대하면서 준비했던 투어를 포기하고 대신 아닐라오 수중사진 세미나 투어에 가기로 했어요. 그렇게 결정을 한 후에도 한참 동안 신나지 않았어요. 저를 빼고 레이테에 다녀온 친구들이 고래 상어 사진을 보여주면서 얼마나 멋지고 즐거웠는지 끊임없이 이야기 해줬거든요. 오래 전부터 계획 했던 레이테 vs 엉겁결에 가게 된 아닐라오. 고래상어 vs 마크로. 친한 친구들과의 여행 vs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인 경험해 보지 못한 대규모 여행. 아닐라오에 가기 전부터 혼자 이런저런 비교를 하며 기대 반 걱정 반. 하지만 다녀온 후인 지금은 “아닐라오 어땠어?” 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며이렇게 대답합니다. “완전 최고였어! 진짜 너무너무 재미있었어!!” 뭐가 그렇게 재미있었는지, 이제부터 보실까요? ^^
두근두근, 출발!
핵 안보 정상회의 때문에 서둘러 공항에 도착하니 이제 막 수속을 시작하고 있었어요. 줄을 서서 다이버로 보이는 사람들이 있나 두리번두리번 거리다 같은 비행기로 이동하는 분들을 만났고 게이트 앞에서 상희 언니까지 모두 모여 함께 비행기를 탔어요. 자는 둥 마는 둥 하다 마닐라에 도착해 비행기 출구에서 일행들을 기다리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함께 비행기를 탔던 서동성님이 안 나오시는 거예요. 제일 마지막 줄 사람들까지 다 나왔는데도 안 나오셔서 먼저 가신 건가하고 자리를 뜨려는 순간,잠에 취한 표정으로 타달타달 나오시는 서동성님! 잠자리를 좀가려서 수면제를 먹고 잤는데 승무원들이 도착했는데도 안 깨워주더라네요. 하마터면 그대로 다시 한국 들어가실 뻔 했어요.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공항 밖을 나서니 다른 일행 분들이 버스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어요. 아닐라오로 향하는 사람이 가득한 버스 제일 뒷자리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웅성웅성, 들뜬수학여행 기분이 나면서 설레이기 시작했어요.리조트에 도착해서 간단히 다음 날 일정을 듣고 방 배정을 받아 방에 가니 먼저 도착한 룸메이트인 유진 언니가 자고 있었어요. 자는 사람을 깨운 터라 조금 미안했는데 인사를 하고 맥주도 얻어 마시고 그간의 다이빙에 대해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앞으로 펼쳐질 일정을 기대하며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습니다.
체크 다이빙에서 뭘 찍어야할지 몰라서 수중 벤치에 멍하니 앉아 있는 필자
물색을 살려서 촬영한 바다나리첫 째날전 날의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다들 부지런히 장비를 챙기고 세미나도 듣고 조별로 다이빙 하러 출발~ 총 5개 조 중에 A, B조는DSLR을 사용하는 고급반 그리고 C, D조는 컴팩트 카메라를 사용하는 중급반이었는데 저는 D조였어요. 첫 다이빙은 비스타마 포인트에서 체크다이빙을 했어요. 광각인지 마크로인지 어정쩡한 상황에서 우리 초보 사진가들은 뭘 찍어야 할지 몰라 패닉에 빠진 채로 출수했지요. 첫 다이빙 사진을 보신 조장님께선아직은 광각 사진은 무리니 우리 조는 모델없이 가만히 있는 피사체로 물색부터 맞추자고 하셨지만 리조트로 돌아와서 같은중급반 C조 조장님께서 보여주신, 그 날 수중사진을 처음 찍었다는 분의 광각사진을 보시고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 우리 조도 광각사진으로 다시 변경했지요. 그래서 두 번째, 세 번째 다이빙은 Ligpo island에서 모델 정보윤 강사님과 광각사진을 찍었습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헤매고 있는데 적절한 지점에서아름다운 포즈를 취해주시는 정보윤 강사님이 정말 최고의 모델이시구나 싶었어요. 비록 최고로 담아내지는 못했지만 실력보다 훨씬 나은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처음 사용하는 스트로브 위치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카메라만 있는 채로1년을 썼는데 갑자기 스트로브를 달아놓으니 거추장스럽기도하고, 그래서 스트로브를 빼들고는 엉뚱한데다 조광을 하는 등그렇게 진땀을 빼다 첫 날 다이빙이 끝났어요.리조트로 돌아와서는 조별로 사진을 리뷰하고 그 날의 베스트 사진을 고르는 시
간을 가졌어요. 리뷰 중간 중간 조장님께서 보여주시는 갤럭시S2로 찍은 사진들은 똑딱이지만 카메라로 사진을 찍은 조원들을 좌절시키기 충분했어요. S95, S100을 부끄럽게 하는 스마트폰 사진에 스마트폰 하우징을 하나 장만할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어요. 하지만 장비 탓이 아닌 내 탓이려니... 마음을 다시 잡았지요. 그렇게 첫 째날 밤이 깊어가고 이야기도 깊어갔지만 다음날을 위해 일찍 취침!
정보윤 강사님이 모델해준 사진
쏠종개무리와 정보윤 강사님
둘 째날둘 째날 다이빙은 코랄 가든에서 시작했어요. 우리 조 미션은물색 맞추기랑 스트로브 조광 잘하기 두 가지였고 카메라의 한계를 생각해서 찍기 힘든 피사체는 버리라는 것. 어차피 못 찍을 것, 찍어도 버려질 사진은 과감히 찍지 마라, 대신 찍을 수 있는 피사체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정으로 찍어보라고 하셨어요.귀요미 옐로우 박스피시가 지나가도 어차피 잘 못 찍을 거 살짝따라가 구경만 하고 카메라는 들이대지 않는 도시여자의 시크함! 그러다 보니 이번 투어 사진은 주로 산호, 멍게 같이 안 움직이는 녀석들뿐이네요. 두 번째 포인트는 조류 때문에 자리를옮겨 다릴라웃 포인트에 갔어요. 버디 조상혁 강사님과 빛이 부족한 깊은 수심으로 가지 말자고 얘기했던 터라 버디님을 따라이리 저리 다니다 보니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와중에 카메라는 배터리가 다 되어버렸어요. 내장 플래시를 안 쓸 때는 2회다이빙을 충분히 버텼는데 플래시를 사용하고 중간 중간에 사진 확인도 많이 하다 보니 생각보다 배터리가 빨리 닳았나봐요.한참 후에 일행을 만나서 전기 조개도 보고 같이 출수했는데 우리가 없는 동안 구조물에서 광각 촬영을 재미있게 하셨다고 해서 살짝 아쉬웠어요. 근처 마을에 배를 세우고 점심식사로 라면을 끓여주셨는데 필리핀 바다 위에서 먹는 라면은 특별한 맛이었죠. 둘째 날 저녁에는 아닐라오 피어에서 야간 다이빙을 했어요. 배를 타고 5분 정도 나가 수심 5미터에서 다이빙을 하는데 여기는 물 반 새우 반! 새우가 어찌나 많고 빠르게 날아다니
는지 놀라기도 잠시, 온 몸 여기저기에 부딪히는 새우는 좀 징그럽고 무서웠어요. 물 밖에 나가 몸을 털면 새우가 후두둑 떨어질 것만 같은 기분이었죠. 새우 떼를 좀 피하고 나니 다시 차분히 다이빙을 할 수 있었어요. 눈만 돌리면 여기저기 재미있는피사체들이 많았지만 스트로브를 달고 하는 첫 야간 다이빙이라 사진을 어떻게 찍어야 할지 몰라 스트로브만 썼다, 지속광만썼다 이런저런 시도만 하다가 다이빙이 끝났어요. 야간 다이빙후 조금 늦은 저녁과 더 늦은 사진 디브리핑까지 마치니 자정이훌쩍 넘어버렸지만 그 날 찍은 사진을 보면서 어떤 점이 잘 됐고 안 됐는지, 주로 부족한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디브리핑 시간이 참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더 나아지는 거겠죠?
갯민숭달팽이
바닥의 넙치
바위 벽의 옐로우컵 코랄
브로콜리를 닮은 군체 멍게
셋째 날은 날씨가 화창해서 기분을 더욱 들뜨게 했죠. 신나게 보트를 달려 도착한 곳은 트윈락이었어요. 상당한 조류에 맞서며한참 동안 열심히 니모를 찍다 보니 난 누군가 지금 여긴 어딘가내가 왜 이 흔하고도 힘든 녀석이랑 씨름을 하고 있는가 싶어졌어요. 니모도 찍고 누디브랜치도 찍고 이제는 단골 피사체인 산호도 찍고 재미있게 사진을 찍다 나왔습니다. 트윈락인데 왜 잭피시 떼가 없었을까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출수를 했는데 두 번이나 지나갔다고 하네요. 대체 뭘 찍고 있느라 잭피시 스쿨링을못 본건지 너무 아쉬웠어요.서운한 마음을 뒤로 하고 간 두 번째 포인트는 마크로로 유명한시크릿 베이였어요. 특별히 접사 렌즈까지 빌려주셔서 준비 만발하고 풍덩. 하얀 해마를 봤는데 하얗게 빛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지만 사진으로 담기는 어렵고 해마는 귀찮은지 자꾸 등을 돌려서 한참을 낑낑댔죠. 시크릿 베이에서는 다들 어디 가셨는지 어디선가 딸랑거리는 소리가 들리는데 두리번 거리다 가이드랑 함께 출수해서 보니 다른 분들은 제가 못 본 신기한 피사체들을 많이 보셨더라고요. 셋째 날의 세 번째이자 이번 투어의마지막 다이빙은 코알라 포인트였어요. 피그미 해마를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해서 기대를 잔뜩 하고 들어갔죠. 이전까지 한 번도피그미 해마를 본 적이 없었거든요. 예쁜 꽃분홍색 산호 앞에서드디어 피그미 해마와의 조우! 그 앙증맞고 귀여운 모습에 눈을뗄 수 없었어요. 눈을 떼면 사라지잖아요. 가르쳐준 데를 찾아서 카메라에 조준하고 보면 없어져 있고 다시 찾아서 찍으려 하면 반대편으로 가버리고. 한참을 그 앞에서 떠나지 못하고 사진을 찍었어요. 너무 신기하고 귀엽고 사진으로 예쁘게 담고 싶어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는데... 휴우. 쉽지 않네요. 숨은 해마 찾기가 되 버렸어요. 마지막 다이빙은 마지막이란 것과 다음 다이빙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에 자꾸 아쉬운 마음이 들어 물 밖으로 나오기 싫었어요. 마지막 저녁에는 조별로 모여
콘테스트에 제출할 각자의 베스트 컷을 고른 다음 통 돼지 바비큐로 저녁 식사를 하고 다 같이 세미나실에 모여 사진을 감상했어요. 눈으로 직접 보는 것 보다 더 생생하고 더 아름다운 사진들을 보면서 이분들은 정말 물속에서 작품활동을 하시는구나싶어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DSLR만이 아니라 똑딱이로도 멋진 사진들이 많이 나와서 인기투표를 하는데 어느 사진을골라야 할지 모두 정말 고심하는 모습이었죠. 또 저녁시간마다함께 하신 김은종 강사님께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셨는데 너무너무 멋져서 찍으신 사진 중에 최고 멋진 것만 모아서 보여주신건 줄 알았어요. 그런데 사진 설명을 하시는데, “이건 오늘 아침에 이 앞에서 찍은 건데 물고기가 입에 알을 품고 있네요.” 아무렇지 않게 이런 말씀을 하셔 진정 지역주민의 포스가 풍겨졌어요. 여행할 때 ‘여기는 꼭 가봐야 돼!’ 하고 힘들게 긴 시간을 들여 멋진 풍경을 보러 갔는데 거기서 아무렇지 않게 조깅을 하는지역주민을 만날 때 느끼는 그런 약간의 허탈한 기분을 느끼게하셨죠. 그렇게 인기투표도 끝나고 도란도란 모여 앉아 다이빙얘기, 사진 얘기, 장비 얘기 또 각종 뽐뿌질에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술잔은 비워져 갔어요.
피그미해마
갯민숭달팽이 3마리
베이지색 해마
돌아오며
모인 사람들이 많은 만큼 돌아가는 비행기 일정도 다양했어요.제일 먼저 출발하신 1등 전태호 강사님을 시작으로 9시에 두번째 팀이 떠나고 10시에는 남아서 다이빙을 더 하시는 분들이나가셔서 밤 비행기로 떠나는 사람들은 오전 내내 배웅을 했답니다. 사람들이 다 빠져나가 조용해진 몬테칼로 리조트에서 사장님의 배려로 오후까지 쉬고 장비도 말리고 마사지도 받고 여유롭고 편한 시간을 보냈어요. 아낌없이 넉넉하게 대해주시고좋은 이야기 많이 들려주신 손사장님, 너무 감사했습니다! 마닐라로 향하는 밴 안에서는 아이패드로 같이 지난 스쿠버넷을 보고 서로의 수중 사진도 보고 투어 뒷이야기들로 웃고 떠들며 즐겁게 올라갔어요. 그리고 마까빠갈 수산시장에 들러 각종 해산물로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하고 끝까지 함께 한 일행들과 아쉬운인사를 나누었죠. 돌아온 후 페이스북을 통해 서로의 소식을 접하고 멋진 수중사진들도 보고 또 가까이 사는 사람들끼리 번개도 하고 그렇게 지내고 있어요. 마침 내일은 D조 뒤풀이가 있는날이에요. 다들 며칠 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궁금하고 보고 싶네요. 투어가 끝났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것처럼 새록새록한 이야기와 사진들이 여전히 들뜬 기분을 갖게 해요. 너무 즐거워 너무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즐거운 투어 앞으로도자주 있겠죠?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잘 놀았습니다!
맛있는 씨푸드
밤 늦게 까지 이어진 사진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