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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원 갤러리_POSTCARD FROM THE SEA


시원(始原)의 꿈을 찾아 나선 오디세이아
소설가 김종록

다음 생애에 여기 다시 오면
걸어 들어가요 우리
이 길을 버리고 저 바다로

30여 년간 수중사진 촬영을 해온 장남원의 고래사진들을 보다가 나는 문득 어느 시인의 노래 ‘강릉, 7번 국도’를 되뇌었다. 푸른 파도가 신화처럼 넘실대는 동해 국도변이 눈앞에 펼쳐졌다. 속초에서 강릉을 거쳐 장생포 고래박물관 가는 길이었다. 나는 벌써 바다로 걸어 들어가 일본열도 넘어 태평양 심해를 누비고 있었다. 그래, 맞아. 나는 한 마리 고래였다. 까마득한 날에 생명의 바다에서 잉태한 나는 지상에 올라와서 네 다리 지닌 포유류로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고향 바다가 못내 그리웠다. 바다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간 나는 팔다리의 흔적을 지느러미로 남기고 꼬리를 키웠다. 그리하여 나는 대륙이 아닌 바다에서 허파로 숨을 쉬며 물속을 걷는 고래가 되었다. 그렇다. 나는 이제 대륙이 아닌 대양을 걷는다. 올리고세, 에오세 넘어 팔레오세의 기억을 지니고서 자그마치 수천만 년 전부터. 도심의 빌딩숲에 창해를 옮겨다놓은 걸출한 사진작가 장남원!그는 작아져버린 소시민들의 오래 묵은 시원의 꿈을 대신 찾아 나선 수중나그네다. 그는 인간 유전자에 서린 원시 생명체의 오랜 기억을 불러낸다. 알다시피 모든 생명체는 원시의 바다를 헤엄쳤었다. 그 기억은 대륙을 걷던 고래의 기억과 자연스럽게 환치된다. 시간과 공간의 장벽, 생명의 나무를 뛰어넘는 절묘한 동일시다. 매개체는 물론 카메라다. 이 수중나그네의 모험은 가히 초인적이어서 때로는 죽음 가까이까지 맞닿아있다. 난파선다이빙의 천국이라는 남태평양 축(Chuuk)에서 수심 66m까지 잠수하다가 입이 돌아가고 하마터면 불귀의 객이 될 뻔한 이야기는 프로세계의 진검승부를 보는 것 같아 처절하기까지 하다. 그의 주선으로 사이판 바다 속에 세운 ‘태평양전쟁 위령비’는 제국주의 전쟁의 희생이 된 약소국 조선 징용자들의 정한을 달래는 씻김굿으로 우리를 숙연하게 만든다.


장남원은 고래의 꿈을 간직한 영원한 청년이다. 그는 오늘도 생명의 본향, 평화의 바다로부터 너무 멀리 떠나온 우리들을 대표하여 집채만 한 파도 속을 누빈다. 검은 고래는 언뜻언뜻 황홀한 자태를 비치며 그에게 손짓한다. 그가 다가가면 기다렸다는 듯이 애교를 부리며 악수를 하자고 손을 내민다. 우아한 몸매를 좀 봐달라고 돌아서보기도 한다. 그러다 수줍어서 이내 깊은 곳으로 몸을 숨기곤 한다. 놈을 따라가면 위험하다며 가슴지느러미를 길게 뻗어준다. 어서 잡고 그만 올라가자고. 눈물겹다. 그를 따라 다시 올라오면 놈은 하늘로 솟구친다. 그랬다가 지느러미로 수면을 거세게 내려치며 박수를 보낸다. 어떤 친구는 자기자식을 데리고 나와 등에 업고 다니며 예쁘다고 자랑도 한다. 또 어떤 친구는 ‘나는 가수다’며 노래를 불러댄다. 놈의 18번은 꼭 귀신소리 같기만 하다.장남원은 인생 열락과 슬픔의 순간들을 바다에서 겪었다. 고래들과 천연덕스럽게 노닐 때, 사막에서 바다로 간 어린왕자가 되는 그지만 놈들과 헤어질 때면 가슴앓이를 한다. 놈들의 눈을 보면 까닭모를 깊은 슬픔이 서려 있기 때문이다. 바다에서 시원의 꿈을 간직한 고래와 한가로이 노니는 그의 소요유(逍遙遊)에도 별리(別離)의 아픔은 있다. 그것이 모든 존재가 이면에 지닌 무거움이다. 2만 5천 킬로미터나 되는 고래의 머나먼 여정에는 갖가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엄마 등에 매달려 가는 아기고래는 잘 모르지만 엄마 고래는 안다. 창해의 가장 큰 위험은 포경선을 타고 다가오는 인간들임을! 
“바다는 나에게 달성할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목표만 줍니다. 그 이상의 목표도 이하도 안주죠. 나는 바다에 있으면 항상 바다의 하인처럼 행동합니다. 바다의 뜻을 거스르려고 하지 않았고 바다를 이기려 하지도 않았지요. 나는 그렇게 매순간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래요. 언젠가 바다가 나보고 잘했다고 나의 이름을 불러줄 때 나는 바다를 떠날 겁니다.”장남원은 바다에서 순응과 겸손을 배웠다. 기자로서 작가로서 특종을 하거나 명작을 건지고자 하는 욕심이 왜 없었겠는가. 하지만 개인적인 욕망 너머 무심한 바다는 늘 태고(太古)적 제 모습으로 충일했다. 거기에 무슨 욕망과 결핍의 몸부림이 있을 것인가. 이제 정남원은 고래와 함께 했던 추억들을 하나 둘 내려놓는 연습을 해야 할 때다. 하지만 창해를 유영하는 고래의 꿈을 꾸는 건 인간의 영원한 로망이다. 고래의 꿈은 우리가 끝내 내려놓을 수 없는 정언명령 같은 것이다. 그것은 오래 전 바다를 떠나와 대륙의 빌딩숲을 헤엄치며 사는 포유류, 우리 인간군상이 버릴 수 없는 자유의 의지이자 근원적인 경향성임에.

장남원 두 번째 사진집 “POSTCARD FROM THE SEA"의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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