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중사진에 관심이 생긴 것은 다이빙을 시작한지 1년 남짓 지난 시점이었다. 평소 육상사진에도 관심이 없던 필자로선 어찌 보면 어림없는 생각일 수도 있었다. 지금껏 자동모드로 촬영해 본 기억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수중사진을 촬영하게 되면서 육상사진에도 조금은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콤팩트 디지털카메라와 하우징을 구입하여 10개월 정도 촬영하니 대략 어떻게 촬영하면 되겠다는 노하우가 생기기 시작했다. 수중사진에 조예가 깊은 분들께는 거슬릴 수도 있겠지만 필자는 열심히 매뉴얼을 공부해 가며 단시간 내에 습득하는 유형이 아니라 일단 부딪쳐 보고 모르거나 부족한 점이 발견되면 비로소 문제 해결에 나서는 유형이다. 아무튼 실력은 미천하지만 DSLR 카메라를 사용해 멋진 사진을 촬영해 보고픈 생각이 커졌을 무렵 마침 새로 DSLR 하우징을 세팅하게 되었고, 스쿠바넷이 주관하는 보홀 수중사진 세미나에서 처음 사용하게 되었다. 보홀 팡글라오 섬의 디퍼 다이브 리조트에 도착해서는 수영장에서 하우징 누수여부 체크 및 촬영연습을 해보았다. ISO 수치는 200에 고정시켰고, 조리개 값(f)과 셔터스피드 그리고 스트로브를 매뉴얼모드로 세팅 후 광량을 조절해가며 연습하였다. 10.5mm 어안렌즈라 조리개 값(f)은 최대 개방치 2.8에서 22까지 가능하였다. 카메라의 기능을 완전하게 파악하지 못하였고, 싱크로코드 동조방식의 스트로브의 사용은 처음이라 여러 가지 미숙한 부분이 많았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하우징을 가슴에 안고서 다이빙을 나갔다. 보홀에서의 다이빙은 주로 발리카삭(balicasag)에서 진행되었는데 천혜의 환경을 골고루 갖춘 다이빙 포인트로 전 세계에서 많은 다이버들이 이 섬을 찾는다고 한다. 맑고 깨끗한 물, 울긋불긋한 산호 군락과 어류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물고기를 관찰할 수 있는 곳이었다. 첫 다이빙 포인트인 블랙코랄 포레스트(black coral forest)에 입수했을 때였다. 드디어 DSLR 카메라로 수중 촬영을 하게 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수면에서 하우징을 내려 받았을 때 셔터 레버가 작동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입수 전 배 위에서 동료에게 기념촬영을 부탁했는데 작동미숙으로 셔터 레버가 과도하게 돌아가 안에서 누름장치가 휘어져 버린 것이다. 할 수 없이 첫 다이빙은 잭피쉬 무리를 눈으로만 신나게 감상해야만 했다.
사진_정상근
배위로 올라와서는 하우징을 열고 휘어져버린 누름장치를 물리적으로 교정하니 다행히도 촬영이 가능했다. 두 번째 들어간 마린 생츄어리(marine sanctuary) 포인트에서 절벽을 따라 돌다가 커다란 부채산호를 발견하였다. 조금은 가빠지는 호흡을 느끼며 피사체에 접근하였고 하강할 때 맞춰놓은 노출과 광량으로 반셔터를 누른 후 숨을 죽인 채 나머지를 눌러보았다. “찰칵” 소리가 무섭게 재빠르게 찍은 사진을 확인해 보았으나 너무 어두웠고 생각보다 근접촬영이 안되었다. 콤팩트 카메라의 경우에는 뷰파인더가 따로 없고 스크린을 보면서 촬영하지만 DSLR의 경우에는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며 촬영을 해야 했기에 노출은 기본이고 피사체 원근감 또한 계산해야할 요소였다. 이러한 어려움도 있었지만 근거리에서도 커다란 부채산호를 담을 수 있는 화각이 내심 놀라웠다. 함께 촬영을 하던 다이버에게 모델을 부탁하여 어설프지만 주제인 부채산호와 다이버, 파란 물과 햇빛 등을 한 장의 사진에 모두 담아보게 되었다. 방카보트 위에서 찍은 사진을 돌려보며 노출값과 스트로브 광량에 대해서 재차 생각해보며 다음 다이빙에서의 촬영을 구상해 보았다. 방카보트에서 점심을 먹고 로얄 가든(Royal garden) 포인트로 입수했다. 바닥은 황량한 모래바닥으로 완만한 경사형태의 지형이었다. 모래바닥에서 마치 무인도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피사체를 발견했고, 나름 풍경화처럼 묘사하기위해 노력해 보았다. 이렇게 첫날 촬영은 마무리 되었으며 조금의 성공에 만족해야만 했다.
이튿날 첫 다이빙은 전날 눈으로만 구경했던 잭피쉬 무리를 담기위해 다시 블랙코랄 포레스트를 찾았지만 만날 수 없었다. 먹이활동을 위해서 주로 오전에 놈들이 모여들기 때문에 90% 이상의 확률로 만날 수 있다는 현지 가이드의 이야기는 필자에게 해당되지 않았다. 이후로도 두 번을 더해 총 4차례 입수했지만 단 두 차례만 놈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카메라에 담을 기회는 그중 3번째 다이빙에서였다. 입수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놈들의 군무를 발견했고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접근하였다. 무리 밑으로 파고들어 대열을 깨트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연신 셔터를 누르며 놈들과 하나가 되어 한참을 보냈다.무리에서 조금 벗어나 놈들의 형태를 관찰하던 중 점잖게 무리주변을 지나던 거북을 발견했고, 놈의 옆으로 다가가서 함께 역영을 펼치며 잭피쉬 무리와 다이버를 배경으로 거북을 촬영해 보았다. 거북이 워낙 빨라서 가까스로 세 차례 셔터를 누를 수 있었고 그중 하나는 초보인 나에게는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거북을 보내고는 잭피쉬 무리를 조금 더 촬영하고 얕은 곳으로 이동해서 수면 위의 방카보트를 주제삼아 하늘에서 내려쬐는 햇살을 담는 연습도 해보았다. 10.5mm 렌즈로 조리개 값을 22까지 최대로 조이고, 스트로브를 꺼서 셔터스피드를 1/250까지 올려봤으나 햇살의 방향이 일정간격으로 예쁘게 쪼개지지가 않았다. 어디서 본건 있어서 따라해 보려했지만 좀처럼 쉽지가 않았다.황당했던 사실은 필자의 스트로브는 싱크로 케이블로 카메라와 동조가 이루어지는 방식인데 광케이블을 위한 연결부분을 캡으로 막아놓지 않아 주변에서 다른 스트로브가 발광하면 함께 발광을 했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를 이틀간이나 모르고 있었기에 다른 다이버가 촬영할 때 모델을 서주었던 사진들을 보다보면 필자의 양쪽 스트로브가 발광된 사진을 볼 수 있었다. 세 번째 날은 카테드랄(cathedral) 포인트에 입수했고 이곳에서는 회초리 산호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수중생물을 촬영할 수 있었다. 똑딱이 카메라를 들고 다닐 때는 수중에서 회초리산호를 발견하면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얼마 전 아닐라오에서 수중사진가 한분이 회초리 산호를 촬영하고 있을 때 우연히 주변을 지나다 모델을 해주었는데 나중에 그 사진을 보고 까칠하지만 정렬적인 짙고 어두운 붉은색의 회초리산호에 매료되었던 기억이 있다. 회초리산호를 멋지게 담아보려 애써봤지만 쉽지가 않았고 모델 또한 없었던지라 분위기를 살리지는 못하였다. 이외에도 다양한 산호들과 물고기들을 담아볼 수 있는 포인트였다.
삼일동안 촬영을 하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반복하였지만 카메라 자체의 기능에서부터 하우징과 스트로브의 세세한 기능까지 하나둘씩 알게 되었다. 사진 또한 여러 각도에서 다양하게 찍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촬영이 끝난 저녁에는 다함께 모여서 서로의 사진을 감상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마지막 날 다이빙은 필자의 200번째 다이빙이 계획되어 있었기에 수중사진 세미나 참가자와 리조트 스태프 모두가 수중에서 단체로 기념촬영을 하기로 했다. 첫 다이빙은 다시 마린 생츄어리를 찾았고 커다란 부채산호를 다른 각도에서 촬영해 보기도 했으며 한국인 가이드를 모델로 기념촬영을 해주기도 하였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접사 세팅이 없어 광각사진만 촬영하다보니 작은 피사체들은 전혀 신경 쓰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두 번째 다이빙에서는 두 대의 방카를 붙여서 16명의 다이버 전원이 한꺼번에 입수 후 나란히 정렬하여 필자의 200번째 다이빙 축하 세레머니를 연출해 주어서 기억에 오래 남을 사진 한 장을 얻을 수 있었다. 남은 시간에 잭피쉬 무리와의 재회를 기대했지만 만나지 못하였고, 지난 며칠 동안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항아리해면과 이름은 모르지만 수많은 작은 물고기 떼와 같은 피사체를 독특한 방법으로 표현해보려 시도해 보았다.이렇게 모든 일정을 마치고 비치로 돌아오는 보트 위에서 바라본 하늘은 이별을 슬퍼하는 듯 비가 내리고 구름 가득했다. 다음 기회에 이곳에 다시 오면 무엇을 어떻게 찍어봐야겠다는 생각들이 머릿속에 남았는데 그때를 위해서 촬영기술과 이론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