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공자전(無腸公子專)-게에 대하여
찬바람이 불어 코끝이 찡해지는 겨울이다. 요맘때면 떠오르는 하나의 해양생물이 있다. 김이 모락모락나는 찜통에서…. 따뜻할 때 한입 베어물면 특유의 향과 맛을 가지고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그 이름 “대게(竹蟹)”이다. 물론 대게의 계절이라서가 아니라 최근 재미있게 시청하고 있는 다큐멘터리 때문에 이 글을 쓰는 계기가 되었다. 필자는 대게 뿐만 아니라 다른 종류의 게 및 가재류를 즐기지 않는다. 그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젓가락으로 우아하게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본인의 수준이 우아한 것을 따질 수준은 아니지만 여튼 손으로 발라먹기가 귀찮아서이다. 각설하고 다큐멘터리를 전문으로 방송하는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생명을 건 포획-Deadloest Catch”란 제목으로 알라스카반도 서쪽 알류샨열도의 아마크낙섬(Amaknak Island)에 있는 항구도시 “더치하버(Dutch Harbor)”에서 출발한 배들이 영하 30도의 추위와 10m가 넘는 파도가 치는 극한의 베링해에서 “킹크렙”과 “대게”를 잡는 현장을 방송하고 있다.
[사진 출처 다큐멘터리 “생명을 건 포획” 이미지 캡쳐]
게는 옛 문헌에 따르면 한자로 보통 “해(蟹)”로 쓰였고, 궤(跪)방해(螃蟹)횡행개사(橫行介士)로 불리었으며, 창자를 가지지 않는다고 하여 무장공자(無腸公子)라고도 불리기되었다.
게는 거미, 곤충, 따게비, 거북손, 새우, 가재 등이 포함되며, 동물계 종의 3/4이상을 차지하고 지구상의 어떤 서식처에서도 발견될 수 있을 정도로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높은 절지동물문(Phylum Arthropoda)에 속하며, 연갑강(Class Malamalacostara), 십각목(Order Decapoda), 범배아목(Suborder Pleocyemata)로 분류된다. 십각목에 포함되는 대부분의 종들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10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다. 이들 10개의 다리는 기능적으로 한쌍의 집게발과 네쌍의 걷는 다리로 나누어진다
십각목(Decapoda)에 속하는 종류들(그림출처 1904년 Ernst Haeckel의 “자연의 예술적 형상들”에서)
게는 십각목에 포함된 종류 중 가장 진화한 동물이다. 원래 십각목에 속하는 종류의 몸은 머리, 가슴, 배의 3부분으로 나누어 게는 머리와 가슴 부분이 융합하여 두흉부를 이루고 7개의 마디를 가지는 배로 구성되어있다. 두흉부는 1장의 등딱지가 덮고 있으며, 7개의 마디를 가지는 배는 근육이 퇴화되어 새우와 같이 운동기관으로서의 역할은 하지 못한다.
게는 전세계에 4,500여 종이 알려져 있으며 한국에는 20과 183종이 분포한다. 대부분 바다산인데, 동남참게나 붉은발말똥게처럼 바다에서 유생 시기를 보낸 뒤 어느 정도 자라면 강 어귀나 육지의 습지로 올라와 사는 종도 있다.
수심 4,000m의 깊은바다에 살거나, 남북극해 부근에서 사는 종도 있지만 대개는 대륙붕 근처에서 많이 산다. 보통 단독생활을 하지만 멍게해삼 따위에 기생하는 것도 있다.
바다에서는 수심수온저질의 성질 등 환경조건에 따라 서로 다른 종들이 살고 있으며, 생활방식도 가지각색이다. 대부분의 게는 바닥을 기어다니지만, 꽃게와 같이 헤엄치는 것도 있다. 갯벌에는 칠게와 같이 구멍을 파고 사는 종류도 찾아 볼 수 있다. 우리 나라의 연해에는 전체적으로 온대성 게종이 많고 동해에는 한류성 게류가, 제주도와 남해에는 난류성 게류가 비교적 많다
야자 껍데기를 뒤집어 쓰고 있는 게(좌, 필리핀 사방), 소라 껍데기를 집으로 삼고 있는 집게(우, 필리핀 아닐라오)
조선 성종 때 노사신, 강희맹, 서거정 등이 엮은 『동국여지승람』의 ‘토산난’에 해(蟹)가 들어 있는 고을은 모두 7도(강원도 제외) 71개인데, 여기서의 해는 대부분 참게를 말하는 것으로 추측되며, 자해(紫蟹)는 경상강원함경 3도 11개 고을의 토산물로 기술하였다. 이것은 대게를 칭하는 것으로 학자들은 해석하고 있다. 또한 손암 정약전 선생의 『자산어보(玆山魚譜)』에는 흑산도의 동물을 인류(鱗類)무인류(無鱗類)개류(介類)잡류(雜類)로 나누고 해(蟹, 게류)를 개류에 넣었다. 이 책에는 해의 특징을 쓰고 그 종류 17가지의 특징과 맛을 기재하였는데, 현재 고증 결과 그 중 두 가지는 게류가 아닌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니다. 순조 3년 때인 1803년 진해 등지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김려(金鑢)가 저술한 우리나라 최초의 어보(魚譜)인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에서는 진해의 게류 8가지를 기재하였고, 다.
서유구(徐有榘)의 『전어지(佃漁志) 』에서는 게류를 개류에 넣고 20여 가지를 소개하였으며, 게(참게)를 잡는 법으로서 구해법(鉤蟹法)과 현촉서포해법(懸蜀黍捕蟹法)을 소개하였다. 구해법은 낚시로 잡는 법이고, 현촉서포해법은 굵은 노끈에 수수 이삭을 매달아 잡는 법이다. 이처럼 많은 고문헌에서 게의 종류 등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한편, 『규합총서(閨閤叢書)』에는 게 오래 두는 법, 술초로 게젓 담그는 법, 소금으로 게젓 담그는 법, 장으로 게젓 담그는 법, 게 굽는 법, 게찜 등을 소개하였으며, 게와 감배꿀을 같이 먹지 말 것과 감꼭지 대여섯과 같이 찌면 빛이 푸르러진다는 것, 서리 전 게는 독이 있으니 중독자는 생연근즙동과즙마늘즙 등을 먹으면 좋고, 대황을 달여 먹어도 좋다는 것 등의 기록을 확인 할 수 있으며, 의학서적인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는 게(참게)는 가슴속 결열(結熱)을 주로 다스리고, 위기(胃氣)를 다스려 먹은 것을 소화하고, 칠창(漆瘡:칠독으로 생기는 급성 피부병)을 치료하며, 산후의 두통(肚痛:배가 아픈 것)과 피가 내리지 않는 증세를 다스린다고 소개하고 있어 옛 부터 게는 식생활 뿐만 아니라 의료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방면에서 친숙하게 이용되어 왔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게는 다양한 종류와 서식처를 가지고 있어 외양적 특성이 다양하다. 게들은 바닥을 기어 다니면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해양생물의 사체를 처리하는 식생을 가지고 있어 “바다의 청소부(scavenger)”라고도 불린다. 물론 게가 바다생물의 사체만을 먹고 사는 것은 아니다. 게들은 자기보다 작은 게나, 오징어, 문어, 갯지렁이 등 다양한 먹잇감을 사냥하기도 한다.
말미잘과 공생하는 껍질이 도자기처럼 매끈한 자기게(Porcelain crab, 좌; 필리핀 사방, 우; 필리핀 까빌라오)
항아리 해면 내부에 자리잡은 게(좌, 인도네시아 코모도),
부서진 해면을 뒤집어 쓰고 모래에 위장해 있는 게(우, 인도네시아 발리)
게는 거의 모두 먹을 수 있지만 우리 나라에서 현재 경제적 가치가 있는 것은 동해의 대게와 털게, 남해와 서해의 꽃게민꽃게두점박이민꽃게칠게방게 등과 제주도의 홍색민꽃게이다. 음식점에서 흔히 나오는 게장의 재료는 꽃게민꽃게홍색민꽃게이다. 참게는 예전에는 게젓의 중요한 재료였으나 농약으로 인한 수의 격감과 폐디스토마의 중간숙주라는 이유 때문에 한때 먹지 않았으나, 최근 양식 참게의 출하 및 유기농 재배 등에 의해 자원수가 증가하여 미식가들이나 참게가 많이 포획되는 지역의 사람들에게는 음식재료로 사랑 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연안에 서식하고 있는 게의 종류를 모두 기술하자면 끝도 없을 것이다. 또한 필자는 해양 무척추 동물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라 그 종류 또한 모두 알지 못한다. 따라서 온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대게와 꽃게에 대해서 이야기 하도록 하겠다.
횟집의 수족관에 있는 대게
대게는 ‘영덕대게’로 알려져 있지만, 울진, 포항, 울산 등에서도 잡혀서 대게 산지의 사람들은 너도나도 자기 고장이 대게의 고향이며, 맛 또한 으뜸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영덕대게로 불리게 된 것은 예전 교통편이 좋지 않을 때 동해안 여러 포구에서 잡은 대게를 전국으로 보내기 위해서 영덕의 집하장으로 모였게 되어서 이 이름으로 남게되었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드려지고 있다. 이처럼 대게는 한자의 ‘大’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몸통에서 뻗어나간 다리의 형태가 대나무 마디처럼 곧아서 붙여졌다. 최근 사람들은 원양산 대게의 수입과 알래스카산 “킹크렙” 등의 수입으로 예전보다 많은 사람이 게의 맛을 볼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맛에서 으뜸으로 치는 것은 원양산 대게가 아닌 근해에서 건져 올린 대게인 일명 ’갓바리’가 최고라고 이야기 한다. 대게의 어획고는 남획, 알을 품은 암컷인 ‘빵게’, 어린 개체의 포획 등 여러가지로 인하여 그 수가 격감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사실 대게의 생산량은 영덕군보단 울진군이 더 많다고 한다. 현재 울진군에서는 울진대게 홍보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영덕 대진리 앞바다에는 커다란 대게 조형물이 바닷속에 있어 수중 수중 촬영가들에게 흥미로운 피사체를 제공하고 있어 많은 다이버들이 찾고 있다. 대게 중 살이 꽉 찬 것은 살이 박달나무처럼 단단하다 하여 박달게라는 애칭을 가지며 최고의 상품으로 대접 받고 있으나, 길거리의 포장마차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붉은게는 대게와는 다른 홍게이다. 대게는 수심 200~400m의 동해 대륙 경사면 바닥에 서식하는 반면, 홍게는 수심 600~1000m 의 동해 심해에서 많이 잡힌다. 대게의 껍데기가 얇고 황색을 띤다면 홍게는 껍데기가 두껍고 붉은 색을 띠는데다 살이 적은 편이다.
꽃게 는 우리나라 서해안의 중요 수산 자원 중 하나로 수심 20~30m 깊이의 바닥에 서식하며, 긴 다리를 뻗치고 배가 물을 가르듯이 옆 방향으로 빠르게 헤엄치는 능력을 가지고 계절에 따라 적합한 수온을 찾아 서해안을 따라 남북을 오간다. 9~10월 가을에 접어들면서 남쪽으로 내려오기 시작하는 꽃게는 겨울 동안 우리나라 서해안 끝인 소흑산도 이남까지 남하하여 겨울잠을 자고 이듬해 3월이 되면 겨울잠에서 깨어난 꽃게가 산란을 위해 연안으로 이동을 하며, 4~5월이 되면 살이 올라서 최고의 상품가치를 가지는 꽃게가 된다. 서해안에는 산란을 위해 꽃게가 연안으로 이동하는 4~5월과 겨울을 나기 위해 남하하는 9~10월 두 차례 성수기가 형성 되어 봄에는 잡히는 양은 적지만 맛이 뛰어나 인기가 있으며 가을에는 수적으로 많이 잡히게 되어 어민들에게 풍성함을 가져다 준다. 그래서 인지 봄에는 암게를 먹고, 가을에는 수게를 먹는 다고한다.
해면에 기생하는 게(Pink Hairy Crab)과 모래에 서식하는 게(Helmet Carb)
연산호의 폴립과 같이 위장하고 있는 캔디 크렙(Candy Carb, 좌)와 야간에 죽은 산호 틈에 자리잡고 있는 게(우)
속담(俗談) 속의 게게는 옆으로 걷고 집게 다리를 이용하여 집기를 잘하며, 맛 또한 뛰어나 옛부터 여러 가지 속담에 자주 사용되었다.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한다.’는 말은 음식을 빨리 먹는 사람들을 빗대어 이야기 하는데 게의 눈은 몸 밖으로 돌출되어 있는데 위험을 감지하면 재빠르게 몸 속으로 숨기는데서 비롯되었다. 또한 유전적 본능을 속일 수 없다는 의미로 ‘게는 새끼를 집고 고양이는 새끼를 할퀸다.’고 이야기 하며, 무슨일을 하려다가 아무런 소득도 없이 손해만 보았을 때 ‘게도 구럭도 다 잃었다.’는 속담을 사용하기도 한다.
또한 사람이나 동물이 괴로울 때 흘리는 침을 ‘게거품’이라고 하는데, 게는 호흡을 위해 빨아들인 물을 아가미와 연결된 한 쌍의 구멍을 통해 배출시킨다. 아가미 호흡을 하는 게가 무리 없는 곳에 장시간 노출되어 숨이 가빠지면 아가미 주위에 거품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약 100년 전인 1908년 안국선에 의해 출간된 개화기 신소설 “금수회의록”에서는 게를 “무장공자(無腸公子)”칭하여 줏대 없고 절개 없는 인간들을 비판하고 지배 계급의 부패상을 풍자하는 것으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지금까지 게에 대한이야기를 해보았다. 실제로 다이빙을 하다 보면, 해초숲 이나 모자반 군락 사이에 위장을 하고 있는 “뿔불맞이게” 처럼 특이하게 생긴 게를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필자의 미천함으로 인해 다양한 종류의 게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못하였음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있고 음식이나 술안주로 애용하는 ‘게맛살’은 명태로 만든 것이다. 소고기나 돼지고기 또는 닭고기를 이용한 맛살이 존재하지 않는데 ‘게맛살’만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 게의 맛이 좋긴 한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