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생물 이야기
가오리
남도의 대표적인 음식 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언인가? 정답은 없다. “김치”, “떡갈비”, “곰삭은 젓갈” 등 각자의 개성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필자의 경우에는 한입 먹으면 코끝이 찡해지고 머리가 띵해지는 홍어회가 떠오른다. 처음 회라고 해서 마주 대하였을 때 접시에 하얀 김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서 “냉장고에 오래 두어서 그런가? 시원해서 김이 다 나네”하고 먹은 순간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 찐~~한 냄새와 맛….
그 처음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각설하고 이번에는 바닷속을 우아하게 유영하는 가오리류에 대하여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가오리류는 연골어강(Class Chondrichthyes) 가오리상목(Superorder Batoides)에 속하는 어류의 총칭이다.
이들은 상어와 마찬가지로 딱딱한 뼈 대신에 질긴 피부와 가벼운 물렁뼈로 구성되어있으며, 부레를 가지고 있지 않아 지방을 축척하여 약간의 부력을 얻고, 계속 물에 떠있기 위하여 쉬지 않고 뭄을 움직이는 것이 특징이다.
가오리류의 체형은 넓고 납작하며, 꼬리 지느러미가 가늘고 작거나 없는 것이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가오리류는 꼬리부분에 있는 독가시로 상대를 공격한다. 해외에서는 얕은 수심의 해안에서 사람이 가오리류의 가시에 찔리는 사고가 보고되기도 한다. 이들 가오리류는 모래에 위장을 하고 있어 해안에서 놀던 사람들이 실수로 밟게 되면 꼬리의 가시로 공격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먹는 홍어의 경우에는 독을 가지고 있지 않다.
홍어는 분류학적으로 홍어목
가오리과 홍어속에 속하는 물고기인데, 홍어목을 가오리목이라고도 하고, 가오리과를 홍어과라고도 하니 홍어가 가오리의 일종인지, 가오리가 홍어의 일종인지는 어떤 것이 정답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독을 가진 노랑가오리독을 가진 가오리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색가오리과에 속하는 노랑가오리이다. 노랑가오리는 몸이 노란색이나 붉은색을 띠기에 붙은 이름이다. 영어명도 색깔을 뜻하는 단어를 붙여 ‘Red stingray'라 부른다. 노랑가오리는 위협을 느끼면 퇴화한 등지느러미가 변한 꼬리 가시를 들어올려 상대를 찌른다. 날카로운 가시에 찔리면 참을 수 없을 정도의 통증을 겪으며 심할 경우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2006년 호주 퀸즐랜드주 연해에서 환경 운동가 스티브 어윈이 노랑가오리 가시에 찔려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노랑가오리의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다.
노랑가오리(태국 시밀란)
전기를 내는 전기가오리전기가오리는 발전 기관을 가진 대표적인 해양 어류이다. 이들은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먹이를 잡고, 탁한 물 속에서 길을 찾기 위해 전기를 이용한다. 전기가오리는 순간적으로 200볼트의 전기를 일으킬 수 있다. 전기가오리는 보통 가오리 보다 체형이 둥글고, 윗면은 검고 아랫면은 흰 편이다. 가슴지느러미 안쪽에 벌집 모양의 발전기를 가지는데, 이곳에 있는 수천 개의 세포가 각각 발전소 역할을 하여 순간적으로 강한 전기를 만들어낸다. 발전 기관을 가진 해양 생물들이 강한 전류를 내보내면서도 스스로 감전되지 않는 것은 이들의 발전 세포가 체내에서는 구역별로 병렬 연결되어 있어, 고압의 전류를 내보내더라도 자신의 몸에 흐르는 전류량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다.
전기가오리(필리핀 팔라완)
악마 같은 모습을 가졌으나 온순한 쥐가오리쥐가오리는 성체의 지느러미 너비가 7~8m이고 무게는 0.5~1.5톤에 이르는 대형 어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머리지느러미로 돌출된 커다란 가슴지느러미의 연장부가 쥐의 귀를 닮았다 하여 쥐가오리라 부르고, 서양에서는 이 부분이 악마의 뿔을 닮았다 하여 악마가오리(Devil ray) 또는 만타가오리(Manta ray)라 부른다. 여기서 “만타(Manta)”는 스페인어로 모포 혹은 양탄자란 뜻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쥐가오리가 양탄자 같이 넓은 가슴지느러미가 달려 있어서 붙여진 것 같다. 덩치에 비해 온순한 쥐가오리는 플랑크톤이 주식이며, 새우보다 큰 먹이는 먹지 못한다. 주로 열대 해역에 서식하며, 넓은 가슴지느러미를 이용해 유영하는데 헤엄을 친다기보다는 바다 속을 활공하며 다닌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보다 깊은 수심에서 만타를 올려 보면 마치 연을 날리고 있는 광경을 보고 있는 듯 하다.
필자의 사견이지만, 많은 다이버들은 수중에 투영되는 햇빛을 등지고 실루엣을 보이는 만타 가오리와의 조우를 기대하고 있다.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다이버들의 주변을 휘돌아가는 모습은 정말 황홀할 지경이다. 가슴지느러미를 펄럭이며 유영하는 만타는 마치 동화 속 주인공 “신밧드”가 타고 다니던 양탄자가 아닌가 하는 상상까지 들게 한다.
사냥을 즐기는 매가오리매가오리는 서양에서는 이글레이(Eagle ray, 독수리가오리)라 불리는 종이다. 영어로 된 일반 명칭을 우리말로 옮길 때 ‘매’라는 이름을 붙여 매가오리가 되었다. 쥐가오리는 성격이 온순한데다 사는 곳이 일정해 스쿠버 다이버들이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지만, 매가오리류는 사냥을 즐기는 육식종으로 겉모습부터가 날렵하게 생겼고 넓은 지역을 이동하며 다니는 종류이다. 국내에서는 흑산도에서 종종 관찰되기도 한다.
매가오리(인도네시아 코모도)
주둥이가 뾰족한 홍어홍어아목 가오리과에 속하는 홍어(洪魚)는 다른 가오리들과 비슷하게 생겨 구별할 필요가 있다. 두 마리를 나란히 놓고 보면 그 차이점을 쉽게 알 수 있다. 우선 홍어는 마름모꼴로 주둥이 쪽이 뾰족한 반면, 다른 가오리들은 대체로 원형 또는 오각형으로 전체적으로 몸이 둥그스름한 편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가오리류에 속하는 노랑가오리와 상어가오리의 주둥이 부분이 다소 모가 나 있어 홍어로 잘못 알아보는 경우가 있다.
또한, 홍어는 배 부위 색깔이 등 부분과 비슷하거나 약간 암적색을 띠는 데 비해, 다른 가오리는 배 부분이 흰색이기 때문에 배의 색깔을 보면 홍어와 가오리류를 구분할 수 있다. 홍어라는 이름은 몸의 폭이 넓기에 넓을 홍(洪)자가 붙여졌다. 이 홍어를 두고 [본초강목]에서는 해음어(海淫魚)라 적고 있는데, 수컷의 음란함 때문이다. 흑산도에서 홍어를 잡는 나이가 지긋한 어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옛날 어부들이 홍어를 잡을 때 암컷을 줄로 묶어서 바다에 던져두면, 수컷이 달려와 짝짓기를 하는데 수컷의 생식기에는 가시가 나 있어 짝짖기가 이루어지면 몸을 빼내기가 어려워 이때 어부가 줄을 당기면 암컷에 딸려 나오는 수컷까지 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야간 먹이 활동을 하고 있는 마블레이(몰디브)
블루스팟 스팅레이(태국 시밀란)
홍어의 잊을 수 없는 냄새대부분의 바닷물고기는 삼투압 작용으로 인하여 체내에 수분이 바닷물 속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체내에 여러 가지 화합물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연골어류들은 체내에 요소성분을 많이 합유하고 있다. 이 요소 성분은 이들이 죽게 되면 암모니아로 분해되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때에 독특한 냄새를 풍기게 된다. 특히, 연골어류 중 홍어는 요소 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홍어가 죽게 되면 특유한 냄새를 심하게 풍기게 된다. 다른 가오리류도 죽게 되면 암모니아가 생성되어 냄새가 나긴 하지만 홍어만큼은 아니다. 이같이 가오리류가 가지는 특유의 냄새를 “썩은 냄새”라고 표현하는데, 사실 “썩힌 것”라기 보다는 “삭힌 것”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음식물이 썩게 되면 단백질이 아미노산으로 분해 되는 과정에서 유해한 식중독균 등의 독성물질이 생성되어 부패한 냄새를 풍기지만, 홍어를 포함한 가오리류들은 암모니아가 발생하여 유해한 세균의 침입을 막아주는 기능을 한다. 이처럼 인체에 무해하게 분해되는 과정을 “삭힌다”라고 한다. 가오리류에 포함되는 홍어를 즐겨먹는 전라도 지방에서는 홍어를 귀하게 여겨 예부터 관혼상제 빠뜨리지 않고 홍어 요리를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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