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생물이야기 느림보의 대명사 용궁의 사신, 바다거북
우리는 어린 시절에 ‘토끼와 거북이’란 전래 동화를 통해서 느림보 거북이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노력하여 예상을 뒤엎고 달리기 경주에서 토끼에게 승리하는 것을 보며 교훈을 얻기도 했다. 동화의 내용처럼 거북이는 항상 “느림보”란 수식어가 앞에 붙어 다닌다.
2001년 개봉하여 한국 영화사에 신기원을 수립한 영화 “친구”에서 어릴 쩍 중호와 청년이 된 동수가 한 유명한 대사가 있다. “니, 조오련하고 바다거북이 하고 수영시합 하모 누가 이기는지 아나?” 이 대사에도 바다거북이 등장한다. 실제로 바다에서 전성기 시절의 故 조오련 선수와 바다거북이 시합을 한다면 누가 이길 것인가?
바다거북의 승리이다. 사실 바다에서는 바다거북을 따라 잡을 사람은 없다.
인간과도 친근한 거북이(시파단)
바다거북의 고향은 육지의 늪지대
사람들은 땅 위에서 느림보란 취급을 받는 바다거북의 고향이 당연히 바다라고 생각하겠지만 틀린 것이다. 진화학자와 고생물학자들의 연구를 통하여 바다거북이 약 2억년 전에 육지의 늪지대에서 활동하였다는 화석 증거가 발견되었음을 확인했다. 그 뒤로 약 5천만년에서 1억년 전 사이에 일부 종들이 삶의 영역을 바다로 넓히면서 바다가 거북들의 삶의 터전이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종이 바다로 삶의 영역을 넓힌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도 바다거북인 “터틀(Turtle)”의 상대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토올터스(Tortoise)”라고 불리는 육지거북, 자라, 남생이 등이 육지에서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바다로 영역을 넓혀 진화한 거북은 7종으로 바다 환경에 적응하기 위하여 다리가 물갈퀴로 변하였고, 한번 마신 호흡으로 오랜 기간 바다에 머물 수 있도록 신체 기능이 단련되고 적응되었으나 육지의 생활 습성을 완전히 버리지 못해서 일정시간 수중에 머무르면 수면 위로 올라와 호흡(허파호흡)을 해야 하고, 육지에 알을 낳고 부화한 뒤 바다로 돌아간다.
우아한 자태를 보이며 유영하는 거북이(시파단)
바다거북의 특징과 분류
바다거북은 등딱지의 길이가 1.3m에 이르는 개체들도 있지만 보통은 1~1.2m 정도이며, 대략 180~300kg의 몸무게를 가진다. 푸른색 이나 갈색 무늬를 가지는 방패모양 등딱지와 네 다리와 머리 부위에 존재하는 큰 비늘판을 가지는 것이 특징이다. 복부 쪽은 보통 노란색을 띠는 흰색이며 네 다리 밑으로 흑갈색 무늬를 가지고 있는 것들도 있다. 머리는 유선형으로 주둥이는 짧은 편이고 끝이 무디다. 등딱지의 앞 가장자리는 둥글게 패여 있고, 뒷 가장자리는 톱니모양을 하고 있다. 늑갑판은 보통 4쌍을 가지고 있으나 종에 따라서 변이를 가지도 하며, 앞 이마판은 1쌍이다. 바다거북류 중에서는 체온을 높이기 위하여 뭍에 올라와 일광욕을 하는 것도 있다.
주로 해조류를 뜯어먹거나 산호와 해파리와 같은 무척추동물을 먹이로 하는 경우도 있다. 산란은 물 온도가 25℃가 넘는 모래해변에서 이루어지며, 한배에 100~200개의 알을 낳는데, 네 다리가 지느러미 모양을 하고 있으며, 힘이 세서 사는 곳과 알을 낳는 장소가 1,000km 이상 떨어진 경우도 보고되고 있다. 알에서 깨어나는데 걸리는 기간은 온도와 습도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48일~70일이 걸린다. 최근에는 고기와 알의 맛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식용으로 남획되고 있는 실정이다. 태평양과 인도양의 열대 및 아열대온대 해역에 널리 분포하며 한국에는 주로 만류(灣流)를 따라 동해안과 남해안 주변에서 종종 확인된다.
바다거북은 거북목(Order Testudines) 바다거북상과(Superclass Chelonioidea)에 포함되며, 푸른바다거북, 붉은바다거북, 대모, 올리브각시바다거북, 켐프각시바다거북, 납작등바다거북은 바다거북과(Class Cheloniidea)에 장수거북은 장수거북과(Class Demochelyidea)로 분류하고 있다.
장수거북을 제외한 바다거북은 우리가 ‘느림보’라 부르며 온순한 바다동물로 생각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두려워할 대상을 가지지 않는다. 상어의 아가미를 깨물 정도로 대담하여 다자란 바다거북은 인간의 간섭을 제외하면 천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6종의 바다거북이 속한 바다거북과와 장수거북과의 가장 큰 차이는 거북의 등딱지의 형태로 이야기 할 수 있다. 바다거북과에 속하는 종류는 인갑(鱗甲, 비늘껍데기) 형태의 딱딱한 등딱지를 가지고 있으나, 장수거북은 딱딱한 등딱지 대신 가죽과 같은 피부가 덮여있다. 또한 바다거북과에 속하는 종들이 허파 호흡에 의존하면 반면 장수거북은 허파호흡 외에도 입 뒤쪽 목구멍에 실핏줄이 많이 모여 있어 물고기의 아가미와 같이 물이 들어오고 나갈 때 마다 물에 녹아있는 산소를 흡수하는 보조 호흡수단을 가지고 있어 1,200m에 이르는 깊은 수심까지 잠수 할 수 있고, 먼 거리를 이동한다고 밝혀져 있다.
거북목(Chelonia)에 속하는 종류들(그림출처 1904년 Ernst Haeckel의 “자연의 예술적 형상들”에서)
인간보다 빠른 바다거북의 수영능력
바다거북의 수영 능력을 이해하려면 우선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느림보’ 라는 고정관념을 잊어야 한다. 바다거북은 장거리 수영에 잘 적응되어 있을 뿐 아니라 순간적으로 빠르게 헤엄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짧은 거리에서는 32km/h 이상으로 헤엄치며, 평균 유영속도는 20km/h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故 조오련 선수가 1970년 제6회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자유형 400m에서 금메달을 차지할 때의 기록인 4분20초02를 시속으로 환산하면 5.53km/h이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400m에서 3분 41초 86으로 금메달을 목에건 박태환 선수도 6.49km/h 인 것을 감안하면 바다거북은 엄청난 속도로 헤엄을 치는 것이다. 바다거북은 단거리보다는 장거리와 뛰어난 잠수 실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간당 10km도 되지 않는 속도로 수영을 하는 인간과 바다거북을 사이에 두고 400m 정도의 거리에서 빠르기를 논하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러운 것이다.
일부 바다거북은 알을 낳기 위해 4,800km나 이동하는 종도 있고, 수심 1,200m까지 잠수하기도 한다.
수중의 바다거북
용궁의 사신으로 대접받았으나 현재는 멸종 위기
국내 연안에도 이따금 바다거북이 출현한다. 어민들은 바다거북을 발견하면 용궁의 사신으로 길하게 여겨 술과 음식을 한 상 가득 대접하여 바다로 돌려보낸다. 바다거북과는 다소 차이가 있으나 전래동화인 ‘별주부전(鼈主簿傳)’에는 수궁에 있는 용왕의 신하로 “자라”가 등장한다.
2009년 여름 경남 거제도 앞바다에서 바다거북 한 마리가 심하게 다친 상태에서 그물에 잡힌 적이 있었는데, 어민들의 신고를 받은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는 부산 아쿠아리움 수조에서 치료와 회복기를 거치게 한 다음 2009년 10월 9일 해운대 앞바다에 방류한 기록이 있다.
우리 민족에게 신성시되는 바다거북이지만 멕시코 해안가 주민들은 귀한 손님이 찾아오거나 생일, 부활절과 같은 특별한 날에 바다거북 고기로 만든 카구아마(Caguama)라는 별식을 즐긴다. 이로 인해 이동하는 바다거북의 80퍼센트 이상이 중미지역에서 최후를 맞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1978년부터 미국의 멸종동물보호법과 1990년 이후 멕시코 법률에 의해 바다거북을 죽이는 것이 금지되고 있지만, 바다거북 고기는 여전히 암거래되고 있다. 현재 모든 바다거북은 사이테스(CITES, Convention on International Trade in Endangered Species of Wild Fauna and Flora) 에 의해 멸종 위기 종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실정이니 안타까울 뿐이다.
필리핀 팔라완의 바다거북 사육장에서 부화한 새끼거북
필자는 바다에서는 누구도 이길 수 없는 수영선수이지만, 육지에서는 ‘느림보’라고 불리어지는 바다거북의 오명이 언제쯤 씻어질지 자못 궁금해진다.
바다거북 7종의 특징
푸른바다거북(Chelonia mydas)
전 세계 바다에 광범위하게 발견되어 바다거북의 대명사가 되었다. 갑의 길이 0.7~1.2m, 몸무게 90~140kg 정도이다. 주로 해조류를 먹는다. 영어명으로 그린터틀(Green turtle)이라 불리는데 이는 이들로부터 짜낸 기름이 녹색인 데서 유래한다.
붉은바다거북(Caretta caretta)
푸른바다거북과 비슷하지만, 머리가 더 크고 불그스름한 갈색을 띠고 있다. 성질이 다소 난폭한 편이며 육식성이다.
대모(매부리바다거북, Eretmochelys imbricata)
길쭉한 머리끝에 뾰족하게 구부러진 단단한 부리와 톱날같이 갈라진 등딱지가 특징이다. 최대 몸길이는 1m이며, 평균 몸무게는 80kg이다. 다른 바다거북과 달리 해면동물을 즐겨 먹는다.
올리브각시바다거북(Lepidochelys olivacea)
몸무게 50kg 정도로 바다거북 중 크기가 작은 종이다. 몸의 색이 올리브 빛을 띠는 것이 특징이다.
켐프각시바다거북(Lepidochelys kempii)
몸길이 1m 미만이며 평균 몸무게 45kg 정도의 작은 바다거북으로 대서양과 멕시코 만에만 분포한다. 부리모양의 입으로 게를 즐겨 잡아먹는다.
납작등바다거북(Natator depressus)
오스트레일리아 연안에만 서식하는 고유종으로 납작한 등딱지가 특징이다.
장수거북 (Dermochelys coriacea)
2m 이상의 크기에 몸무게가 350~700kg 정도로 현존하는 거북 중에서 가장 큰 종이다. 열대지방에서 주로 발견되지만, 바다거북 중에서 분포 범위가 가장 넓다. 다른 바다거북에 비해 큰 앞발을 가져 장거리 수영에 적합하며 1,200m 이상 수심까지 잠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