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홀 프리다이빙 트레이닝 후기 - 50m를 넘어서며
천천히 숨을 들이 마시고 다시 천천히 뱉는다. 몸에 힘을 빼고 윙윙 울리는 바람소리 같은 내 숨소리에 집중한다. 입수 자세를 잡고 크게 숨을 들이 마신 후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으로 머리를 물속, 바닥으로 향한다. 10m 정도의 수심까지 힘차게 핀 킥을 하다가 부력이 줄어드는 걸 느끼며 킥을 부드럽게 늦춘다.
몰입의 순간은 길지 않다. 이런 저런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편안한가? 그래, 이퀄라이징은 잘되고 있다. 아! 별로 느낌이 좋지 않다. 올라가야 할까? 역시 턴을 하는 게 좋겠다. 두 번만 더 킥하자. 10초인지 1초인지 알 수 없는, 다만 짧다는 것이 확실한 찰나의 순간에 온갖 잡생각을 하다가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수면을 향하고 있는 걸 깨닫고 속으로 욕을 한다. 그렇게 턴을 하고 나면 상승하는 길은 언제나 힘겹고 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다이빙은 잘못된 다이빙의 전형이었다.
프리다이빙을 시작한지 벌써 5년이 지났다. 춥고 어두운 동해에서 시작한 다이빙은 힘들었지만 충분히 아름답고 행복했다. 설령 노무라입깃해파리와 딱딱 이빨이 부딪치도록 떨리는 턱, 몇 번을 만나도 깜짝 놀라게 되는 수온약층과 파도가 다이빙을 어렵게 할지라도 하강라인을 따라 열심히 핀을 차고, 부이에 매달려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넘칠 만큼 즐거웠다.
열정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같이 다이빙 하는 것, 새로운 바다에 가는 것. 다이빙을 하며 느끼는 새로운 감각들은 이전에 가져보지 못했던 충족감을 주었다. 하지만 그런 기쁨과는 별개로 해소되지 않는 갈증 같은 것이 커져갔다.
프리다이빙 투어는 매년 여름, 주로 제주도에서 한 달에 한번씩 6-7번 정도 있는데 모든 투어에 참가하면 1년에 15일 정도 다이빙할 수 있다. 좀 더 분발해, 제주도에 머물며 버디를 찾아 함께 다이빙 하면 20번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항상 날씨, 바다상태와 같은 변수가 있기 때문에 한 해 동안 바다 다이빙 일수는 보통 15일 정도를 넘지 못한다. 따라서 갈증은 가실 줄 모른다. 이틀을 바다에서 보내고 비행기에 오르면, '아 또 한 달 뒤구나' 하고 울상이 되어 돌아와 문자 그대로 손꼽아 가며 다음 투어를 기다린다.
게다가 나는 다이빙을 잘하는 편이 아니다. 꽤 오랫동안 다이빙을 했지만 아주 조금씩 더디게 늘었고, 한동안 같은 수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30m 주변의 수심에 대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바다에 갈 땐 항상 이번에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지만, 막상 첫 번째 다이빙을 하고 나면 또 다시 내 실력에 실망하곤 했다. 그렇게 만족스럽지 못한, 미숙한 다이빙을 마치고 나면 바다에서의 하루가 간절했다.
그래서 한 번쯤은 질리게 다이빙하고 싶었던 것 같다. 바다가 꼴 보기도 싫어질 만큼 매일 다이빙 하고 나면 기분이 어떨지, 정말 다이빙이 질리게 될 지, 나는 얼마나 깊이 들어 갈 수 있을지 알고 싶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잘 늘지 않는 다이빙이 슬슬 힘겨워 지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나는 상승하는 길이 너무 멀고 힘겨웠다. 다이빙이 점점 무서워 졌다. 다이빙을 처음 시작 했을 때 느꼈던 좋은 느낌이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서 두려웠다. 그래서 이 갈증을 끝내려 원 없이 다이빙하러 떠나자고 마음먹었다.
트레이닝 할 곳을 찾다가 동하강사님이 계시는 보홀을 떠올렸다. 나는 30세션의 다이빙 트레이닝을 하기로 하고 보홀로 떠났다.
그렇게 시작된 보홀에서의 생활은 아주 단순했다. 아침 6시에 일어나면 스트레칭을 하고 아침으로 바나나 한 개를 먹는다. 8시-9시 사이에 알로나 비치의 숍으로 가서 다이빙 준비를 하고 다이빙을 한 세션 한다. 그리고 방으로 돌아와 다이빙 로그와 트레이닝 내용을 정리한 후 휴식이다. 동그란 생활계획표로 그려보면, 네 등분으로 충분할 것 같은 생활이었다.
내가 지내던 곳은 마치 다이버들이 모여 사는 마을 같았다. 같은 숙소에는 많은 교육생들이 머물다 갔고, 나보다 한 달 먼저 와 있던 장기교육생 경화가 있었다. 숙소와 가까운 곳에는 프리다이브 팡글라오의 또 다른 강사 스테판이 살고 있었고, 동하 강사님의 집도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종종 모여 다이빙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두 각자 다른 이유를 가지고 프리다이빙을 시작한 사람들이었다. 그 서로 다른, 수많은 이야기들을 듣는 것이 참 좋았다. 보홀을 떠올리면 좋은 사람들과 별이 많던 밤하늘이 떠오른다.
트레이닝에 대해 얘기 보자면, 약 6주 간 3일마다 이틀 정도의 휴식을 가지고 계속 다이빙 했다. 총 트레이닝 일 수는 29일, 나쁜 컨디션으로 바다에 나갔다가 그냥 돌아온 날을 빼면 27일이다. 내 목표수심은 40m였다.
다이빙은 보트다이빙과 비치다이빙 둘 다 가능한데 수심과 훈련 시간, 보트 스케줄 등에 따라 유동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다이빙 전 간단한 브리핑으로 순서와 트레이닝 할 부분, 종목을 상의 한 후 바다로 향한다.
초반의 트레이닝은 수심보다는 편안하게 다이빙하는 것과 기본적인 테크닉을 점검해 잘못된 습관을 고치고 부족한 부분을 연습하는데 집중했다. 두 세션 정도의 다이빙 후 동하 강사님은 자신만의 다이빙 스타일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다이빙을 여러 차례 하는 동안 웜업(warm-up)의 횟수, 준비호흡 자세 등 다이빙의 여러 요소들에서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보는 과정을 가졌다. 강사님이 여러 가지 스타일을 제시해 주어서 전에는 시도해 보지 못한 다양한 방식을 경험해 보았다. 몇 세션을 거치자, 웜업 방식부터 컴퓨터를 차는 손의 방향 같이 사소한 부분까지 모든 것에서 잘 길들인 듯 편한 방식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트레이닝을 시작한 수심은 20m 부근이었다. 내 최고 기록에서 10m 정도 못 미치는 수심이었지만 얕은 수심에서부터 시작하니 심리적으로도 안정되고 하강부터 상승까지 다이빙의 모든 과정을 강사님이 지켜보며 체크해 줄 수 있었기 때문에 많이 도움이 되었다. 상승하고 나면 동하강사님은 자세나 몸의 기울기 같은 다이빙 도중 스스로 확인하기 어려운 부분에 대해 지적해 주었다.
하루는 프리폴(free fall; 음성 부력상태에서의 자유하강)을 하는데 자꾸 몸이 옆으로 기울어져 비스듬하게 떨어지는 것이었다. 나는 몸을 똑바로 세웠다고 생각했는데 똑바로 하강 하지 않았다. 어리둥절한 다이빙이었다. 상승하자 강사님은 내 어깨가 삐뚤어져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스스로 깨닫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같은 버릇 때문에 몇 번 비슷한 상황이 있었는데 그 때 마다 강사님이 알려줘서 잊지 않고 바로 자세를 고칠 수 있었다.
자유하강이 아직 익숙하지 않을 때는 자신이 어떻게 하강하고 있는지 알기 힘들 때가 있다. 버디와 하는 다이빙에서는 매번 비디오 촬영이나 자세 체크를 부탁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점이 강사님과 하는 트레이닝의 큰 장점인 것 같다.
내가 다이빙하며 가장 어려워하던 부분인 불안감의 극복도 초반의 트레이닝 세션들에서 거의 해결되었다. 상승 후엔 기술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다이빙할 때의 기분이나 힘들었는지 혹은 편안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는데, 불편한 느낌이 있었다면 원인이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보고 이야기했다. 그 때 동하강사님이 트레이닝 하며 겪었던 어려움이나, 문제를 해결했던 경험을 얘기해 주었던 것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
내가 겁내던 30m는 점점 편안해져 갔다. 내가 아직 30m를 겁내던 때 동하강사님은 30m까지 따라와 나를 지켜봐 주었다. 눈을 감고 다이빙하다가 실눈을 뜨면 언제나 강사님이 하강라인 건너편에 있었다. 설령 눈을 뜨지 않은 채 상승하더라도 내 앞에 강사님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기 때문에 항상 안심이 되었다.
그렇게 내가 가진 문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하며 다이빙을 하다 보니, 어느새 목표 수심 40m에 도달했다. 기뻤다. 같이 다이빙하던 다이버들도 함께 기뻐해 주었고, 옆 부이에서 교육하던 스테판은 와서 포옹까지 해주었다. 상급 다이버들에게는 어렵지 않은 보잘것없는 기록이지만 그런 것과 상관없이 목표를 달성했다는 것만으로도 다들 축하해 주었다. 전에 없던 자신감이 샘솟는 듯 했다.
아직 트레이닝은 16세션이나 남아 있었다. 그 때부턴 수심을 늘리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트레이닝 하기 시작했다. 목표 수심을 10m 늘려 50m로 잡았다. 30m도 벌벌 떨던 나에게는 까마득한 깊이였지만 하루하루 다이빙을 할 때 마다 조금씩 할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새로운 수심에 도전하는 날은 항상 안절부절 했는데 그럴 때 마다 동하 강사님은 오늘 못하면 내일 하면 된다며 태평스레 말해주었다. 그런데 그 말이 정말 맞았다. 잘 안 되는 날도 있고 잘되는 날도 있었다. 그렇게 묵묵히 다이빙을 하던 트레이닝 28일째에 난 두 번째 목표수심에 도달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프리다이빙을 시작하게 되었냐고 묻거나, 왜 프리다이빙을 하냐고 물을 때 사실 별로 할 말이 없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항상 뜸을 들이다가 중학교 때 영화 ‘그랑블루’를 봤다는 둥 원래 물을 좋아한다는 둥 얘기를 하곤 하지만, 단 한 번도 그것이 내가 다이빙을 시작하게 된, 혹은 질릴 줄 모르고 계속 하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숱하게 들었던 그 질문들에 아직도 잘 답하지 못 하는 것이 웃기지만, 한 달 남짓한 시간을 온전히 프리다이빙만을 위해 보내고 나니 어쩌면 답하지 못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것만은 이번 트레이닝을 통해 말 할 수 있게 되었다. 프리다이빙이 마냥 좋고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가끔은 바다고 뭐고 내 몸의 나쁜 감각만이 전부가 되어 힘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다음 다이빙에서 그 나쁜 느낌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고 다시 내가 몰입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을 때. 나는 다시 질릴 줄 모르고 바다로 향하게 된다. 그 뿐이다.
보홀에서 만난 바다, 사람들, 새로운 다이빙 모든 것이 참 감사하다.
고경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