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가 있는 수중사진 – 김갑수
다합의 캐이브캐논 S95, Aperture priority. F5.6, 1/160, ISO2000. 칼라를 흑백으로 전환
‘에디라고 합니다.’ 머리가 긴 사내. 장비를 들고 지나가다가 우연히 얼굴을 마주치고는, 우정 내 손을 잡아 흔들던 그의 손아귀엔 무슨 일이 있어도 흔들릴 것 같지 않는 생활의 단단함이 배어 있었다. 십여 일을 함께 다이빙을 한 후, 에디는 사진 속 포인트로 나를 안내했다. - 동굴이라고 얘기하긴 어렵지만 포인트 이름이 the cave예요.
좋아하실 풍경일 것 같네요. 교육중인 다이브마스터들과 함께 도착한 곳은, 그의 설명대로 그저 슬로프 위에 움푹 파인, 텅 빈 공간일 뿐이었다. 그 안에 무언가 볼 거리가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왜 그가 나를 그런 심심한 포인트로 이끌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머뭇거리는 내게, 에디는 먼저 들어가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역시나 그 멋대가리 없는 굴 속에는 오다가다 자주 만나던 라이언 피시 몇 마리가 심드렁하게 늘어져 있을 뿐이었다. 마치 무료하고 또 무료하던, 내 속마음 같았다. 라이트를 켜고 잠시 동굴을 둘러보고 있는 사이, 그러니까 눈 앞에 펼쳐진 살풍경에 완전히 실망할 때 즈음, 등 뒤에서 에디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그제서야 에디가 나를 그곳으로 이끈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바깥에서 바라본 것과는 전혀 다른 풍광이 거기 가만히 놓여 있었다.아니, 춤을 추고 있었다. 무엇이라 이름 붙여야 할까? 동굴 입구로 들어오는 빛과 바깥의 흰 모래가 몸을 섞으며 묘한 빛의 울림을 이루고 있었다.
그 광경은 노래 같기도 했고, 춤사위 같기도 했다. 아니 그건 되게 서늘해 진 내 마음 속 풍경일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숨을 내 쉬느라 몸이 가라앉는 것을 느끼지도 못한 채, 나는 버디가 입구로 들어오길 기다렸다. 핀이 바닥에 닿고서야 나는 몸을 띄우고 한 두 번 쯤 셔터를 눌렀다. 좋은 사진을 찍겠다는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그저 그 모습을 어딘가에 깊이 새겨 넣고 싶었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내가 왜 그 먼 길을 떠날 수 밖에 없었는지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때로는 어디론가 떠나서야, 바라보는 위치가 바뀌어야, 아름다워 보이는 것들이 있는 법인가 보았다.
"애초부터 아름다웠으나, 한 발 비껴 딛기 전에는 보이지 않던, 그리하여 내가 그 먼 길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그런 이야기들이 동굴 밖을 나서 천천히 상승하던 마음 속에 켜켜이 쌓여 올라갔다."
글/ 김 갑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