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귀의 사랑
세 번째 사랑구경의 대상은 아귀입니다. 아귀는 약 200종이 알려져 있으며, 뼈가 연골처럼 보이나 경골어류에 속합니다. 영어이름은 보통 angler fish, devil fish 등인데, angler fish는 등지느러미 가시가 변형되어 생긴 실모양의 미끼로 다른 물고기를 꼬여서 잡아먹는 것에서 유래하였고, devil fish는 커다란 입, 날카로운 이빨 등 생긴 모습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등지느러미 가시가 변하여 생긴 실의 끝에 달린 미끼모양의 살덩어리는 움직이는 모습이 작은 먹이생물과 유사하여 물고기를 유인할 뿐 아니라, 발광기 (photo pore)가 있는 것도 있어 머리위에서 먹이처럼 움직이면서 효과적으로 다른 물고기를 유혹합니다.
우뭇가사리 위에서 쉬고 있는 아귀
대부분의 아귀는 심해나 대륙붕 등 깊은 바다에 살고 있습니다. 아귀의 머리는 납작하고 몸통과 더불어 매우 넓으며 꼬리부분은 뒤로 갈수록 좁아지면서 짧습니다. 몸길이는 1 m에 달하며, 한국의 제주도 연해 및 부산 근해, 동중국해, 타이완, 일본 홋카이도 이남의 남부 연해, 필리핀, 아프리카, 멕시코의 태평양 연해에 분포합니다. 아귀는 생긴 모습처럼 먹이에 대한 탐식성이 커서, 아귀의 위에는 다양한 크기의 물고기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수면 가까이에 떠올라 쉬고 있는 갈매기 등의 바닷새까지 잡아먹는 예가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아귀를 즐겨 먹지 않았습니다. 비늘이 없고 생긴 모습이 반듯하지 못하고 흉측한데다 살이 축축 늘어져 거름이나 사료로만 썼습니다. 특이한 모양과 형태로 인해 여러 이름을 갖고 있는데, 인천에서는 아귀를‘물텀벙’이라 합니다. 이는 아귀가 잡히면 별 쓸모가 없어 바로 배 밖으로 버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때 다시 바다로 떨어지면서‘텀벙’하고 나는 소리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귀는 뼈가 거의 다 물렁뼈고 살이 탄력이 있어 맛있을 뿐만 아니라 비리지가 않아 아귀찜 등으로 인기가 많은 물고기입니다. 특히 아귀의 간은 프랑스 요리의 푸아그라에 못지않은 맛을 가졌다고 합니다.
아귀는 서식처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고 하나 대개 3월부터 6월까지의 기간에 알을 낳습니다. 아귀의 알은 약 1 m 정도의 얇은 리본모양으로 된 한천질 안에 있으며, 수면 가까이 떠다니며 부화합니다. 어린 아귀는 플랑크톤을 먹으며 성장한 후 심해로 내려가서 삽니다. 심해아귀 종류 중 하나는 아주 특이한 사랑을 합니다. 이 심해아귀는 수컷이 암컷보다 아주 작고 생긴 모습도 아주 다릅니다. 대개 검은 색으로 손가락 정도의 크기입니다. 이 수컷 아귀는 성장하게 되면 소화기관이 퇴화하여 혼자서는 살 수가 없게 됩니다
이 수컷이 살기 위해서는 암컷을 찾아 짝을 이루어야 합니다. 수컷은 후각이 매우 발달하였는데, 암컷이 방출하는 페로몬의 냄새를 따라 수컷은 목숨을 걸고 암컷 아귀를 찾습니다. 암컷 아귀를 찾은 수컷 아귀는 암컷의 피부를 꽉 물어 따개비처럼 붙습니다. 그리고는 수컷이 효소를 분비하여 자신의 입 주위 암컷 아귀의 피부를 녹이고 점점 암컷의 몸 안으로 파고 들어갑니다.
그다음에 이 암컷과 수컷 아귀는 서로의 혈관계가 융합되어 한 몸이 됩니다. 시간이 지나면 수컷 아귀는 정소만 남고 눈, 코, 심지어 심장까지 나머지 모든 기관이 퇴화되어 기생생활을 하게 됩니다. 암컷 아귀는 6마리까지의 수컷 아귀를 동시에 자신의 몸에 붙여서 부양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아귀는‘일처다부’의 모델이 되는 셈입니다. 암컷 아귀가 산란할 때가 되면 수컷이 정자를 방출하여 수정된 알이 수면 가까이 떠올라 부화되면서 새로운 아귀의 일생이 시작됩니다.
기둥서방 노릇을 하는 수컷 아귀가 여성의 시각에서 보면 곱게 보이지 않겠지만, 이런 아귀의 사랑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환경에 잘 적응한 것입니다. 심해는 굉장히 넓어 암컷과 수컷이 사랑하기 위해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서로를 찾는데 에너지를 쓰는 것보다 암컷의 몸에서 부착생활을 하다 산란과 수정을 하는 것이 효율적인 것이죠. 또 심해는 먹이 자원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수컷 아귀가 암컷에 기생한 후, 정자를 생산하는 정소 외의 다른 기관을 퇴화시키는 적응을 한 것이 생존에 유리할 것입니다. 수컷의 존재가치는 정자를 생산하여 수정란을 만드는 것입니다. 경제사정이 어려울 때는 절약이 최대의 미덕이 되는 것입니다.
글/임주백
해양생물학 박사
어류행동생태학 전공
(주)제주 오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