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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카멜레온-“해양 은폐 동물"

 
바다의 카멜레온
“해양 은폐 동물"

아시아, 지중해, 사하라 사막을 포함하고 있는 아프리카와 마다가스카르에 분포하며, 몸의 빛깔을자유롭게 바꾸고, 긴 혀로 먹이를 잡아먹는 카멜레온. 최근 애완용으로 키우고 있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방송을 접한 적이 있다. 애완 동물을 키우는 것이야 개인의 취향으로 결정되는 것이지만, 카멜레온을 키운다는 것은 필자의 사견이지만, 아마도 채색을 변화시키는 것에 매료되어 호기심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 판단된다.


지구상의 많은 동물들은 생존을 위해서 또는 먹이 획득을 위한 방편으로 체색을 변화하는 재미있는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물론 해양 생물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번에는 바다에 서식하고 있는 위장과 은폐의 귀재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해양에 서식하는 생물 중에 체색을 변화시키는 종류로는 아귀, 넙치, 가자미 등의 저서성 어류, 쏨뱅이 목에 포함되는 어류들과 연체 동물에 속하는 오징어, 문어 등을 대표적으로 이야기 할 수 있다. 이들은 피부에 내장된 색 세포와 빛을 반사하는 세포를 통해 몸 색깔을 표현하는데 이러한 과정이 상당히 순간적으로 이루어진다. 이 중 아귀목에 속하는 씬벵이(Frogfish)는 체색뿐 아니라 피부와 몸의 형태까지 주변 환경에 맞게 변화시킬 수 있으니 위장의 귀재라고 할만하다.

위장술의 대가 씬뱅이
주로 열대와 아열대 해역에 쉽게 관찰되는 씬벵이는 몸의 색을 카멜레온처럼 수시로 바꿀 뿐 아니라 피부와 몸의 형태까지 주변 환경에 맞게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해면 주위에 머무는 노랑씬벵이는 피부의 질감까지 해면의 형태를 흉내내고 있어서 어지간한 주의력이 아니면 찾아내기 힘들다. 씬벵이는 지느러미를 이용하여 유영 운동을 하는 다른 어류와는 다르게 가슴지느러미를 이용하여 걷는 듯한 운동을 하기 때문에 움직임이 느리다. 따라서 포식자에게 발견되면 도망가지 못하고 잡히게 되어 자신을 포식자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방편으로 뛰어난 위장능력을 발달시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씬벵이와 사촌 간인 아귀도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으면 바닥 면과 구분 되지 않는다.

빨간 신뱅이

씬벵이와 아귀의 위장능력은 먹이사냥에서도 효율성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움직임이 느리다 보니 먹이를 좇아가서 포식활동을 하는 것 보다는 주변 환경에 몸을 숨어든 채 먹이를 기다린다. 그런데 마냥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등지느러미 끝에 붙은 미끼처럼 생긴 살갗을 입 바로 위에서 흔들어서 마치 다른 물고기로 하여금 먹이가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여 다가오게 만든다.
이순간을 놓치지 않고 씬벵이와 아귀는 엄청난 순발력으로 입을 ‘쩍’ 벌려 물고기를 삼켜버린다. 먹이를 삼키는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로 옆에 있는 물고기조차 눈치 채지 못할 정도이다. 씬벵이와 아귀의 입은 뱀과 같이 크게 벌어지며, 소화기관은 신축력이 있어 입을 통해 삼켜지는 먹이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에서는 이들이 미끼를 가지고 낚시를 한다하여 ‘앵글러피시(Angler-fish)'라 부른다.

주변의 암반과 유사한 색을 나타내는 씬뱅이 (필리핀 모알보알)
모래 속에서 몸을 숨기고 있는 통구멩이 (인도네시아 발리)

넙치와 가자미
해양의 바다에서 생활하는 저서성 어류인 넙치나 가자미는 물속의 다양한 환경과 색깔에 따라 자신의 체색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들 어류의 등쪽 색깔이 해저 바닥과 비슷한 회색 또는 모래 색을 띠는 것은 등에 있는 감각세포가 주변 바닥에서 반사되어 오는 빛을 감지하여 주변 색깔 정보를 받아들여 변화 시키기 때문이다. 시각으로 포착한 빛 정보는 신경 조직을 거쳐 색소 세포에 전달되고, 색소 세포는 연한 모래 색에서 짙은 갈색 그리고 바위에 이르는 바닥의 온갖 색깔뿐 아니라 그 짜임새까지도 교묘하게 표현하고 있다. 넙치나 가자미는 장소를 옮겨 살더라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진흙, 굵은 모래, 자갈 같은 새로운 환경에 몸의 색을 맞출 수 있다. 때에 따라서 이들은 단순히 해저에 안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모래나 뻘 속에 몸을 숨기기도 하는데, 위장술과 엄폐에 대한 자신감 때문인지 포식자가 가까이 다가가도 눈만 껌벅거릴 뿐 미동도 하지 않는다. 가끔 동해안의 모래 바닥에서 넙치, 가자미와 포식자 사이의 팽팽한 대립광경을 목격할 수 있는데,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고 넙치나 가자미가 더 이상 몸을 숨길 수 없다고 판단하면 순간적인 추진력으로 모래 속에서 뛰어나와 자리를 뜬다. 이 때에는 보는 다이버 조차 움찔할 정도로 빠르게 움직인다.
이들의 공통점은 순간적인 움직임은 빠르지만 평균 유영속도가 느리고 바닥에 머물러 지내기를 좋아한다는데 있다. 그래서 포식자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망치는 것보다는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몸의 색을 바꾸는 생활방식을 본능적으로 익혀온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위장은 씬벵이나 아귀와 마찬가지로 포식을 위한 사냥꾼의 치밀한 몸 숨김이라는 측면으로 해석하는 경우 도 있다..

모래와 유사한 색으로 체색을 변화 하고 바닥 위에 업드려 있는 넙치류(필리핀 아닐라오)
모래 속을 파고 들어가 눈만 외부로 노출시킨 가자미류 (필리핀 사방)

감정에 따라 옷을 바꿔 입는 연체 동물
실제로 오징어의 체색은 어떤 색인가? 실제로 다이빙을 하다가 만난 갑오징어의 색조차 수면 위로 올라 왔을 때 가물가물한 경우가 가끔 있다. 위기에 처한 오징어와 문어가 몸의 색을 바꾸는데 걸리 데는 3~5초의 시간이면 충분하다. 이들 오징어와 문어의 표피 밑에는 대개 적색, 황색, 갈색의 세 층으로 이루어진 색소 세포가 근섬유에 연결되어 있어 근섬유를 수축하고 이완시키면서 주변 환경에 맞게 몸의 색을 변화시킨다. 필자는 겨울철 해조류를 조사하면서 수중에서 상당한 크기의 문어와 조우한 적이 종종 있다. 자신의 영역에 무단 침입한 불청객에 화가 난 문어가 몸의 색을 점점 붉은 색으로 변화시키는데, 마치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서는 여차하면 불나방처럼 돌진할 태세였다. 그러나 이 같은 대형 문어는 이내 바위틈으로 몸을 숨기거나 빠른 속도로 이동하곤 하였다. 이처럼 연체동물인 오징어와 문어의 체색 변화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의사표현이자 경고 메시지이다. 체색변화로도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마지막 수단으로 먹물을 뿜어내는 행동 양식을 취한다. 오징어와 문어가 뿜어내는 짙은 먹물은 물에 쉽사리 풀어지지 않고 덩어리 형태로 뭉치는데 먹물을 내뿜으면서 체색의 변화를 일으킨다.

주변의 모래와 유사한 색을 띠고 있는 갑오징어(필리핀 사방)

지금까지 짧게나마 체색을 변화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나름 데로 해양 생태계에서 생태적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동물들에 관하여 이야기 해보았다. 위에서 언급한 동물뿐 만 아니라 성게, 해삼 그리고 채찍산호 등에 공생하는 황제새우, 또는 작은 갑각류 등도 자신과 공생하고 있는 생물체의 체색과 비슷한 색으로 몸의 색깔을 변화하여 살아가는 광경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이 글을 읽은 다이버들도 다음 번 다이빙 여행에서 얼마나 많은 해양생물이 주변의 환경에 조화롭게 몸을 숨기고 있는지 한번 찾아보는 것도 즐거운 다이빙 테마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고르고니언 산호 사이에 위장하고 있는 레이져피쉬
주변의 녹조 바다선인장류
그물코 쥐치
흰해면위에 은폐하고 있는 프로그피쉬



글,사진/권천중 ,해양생물학박사, 부경대학교 해양과학 공동연구, BASAC강사 트레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