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수한몸 절지 동물
따개비
해양의 환경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게 구분된다. 해양 환경을 구분하는 기준으로는 거리, 빛의 도달 깊이, 기질의 종류, 물리적인 요인 등이 있다. 지금까지의 해양 생물이야기는 주로 수중에 서식하는 해양 생물을 중심으로 이야기 하였으나, 이번에는 조간대(intertidal zone)에 서식하는 해양 생물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채석강 조무래기 따개비
우선 조간대란? 간조시의 해안선과 만조시의 해안선 사이의 부분을 칭하는 연안의 일부 지역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육지와 해양에 있어서는 인간의 피부에 해당하는 민감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지구상에서 생물이 살기에 열악한 환경 중 한 곳이 조간대이다. 이곳은 쉽게 접근할 수 있어 사람에게는 친숙한 공간과 같이 여겨지고 있으나, 해양 생물들에게는 혹독한 시련을 겪으며 적응해야 하는 공간이다. 일정시간은 물에 잠겨 있다가 공기 중에 노출되는 상반된 환경에 맞춰서 살아가야 하며, 갯바위에 부서지는 파도와 같은 물리적인 힘에도 견뎌내야 한다. 또한 비라도 내리면 민물이라는 환경에도 적응해야 하며, 강한 빛으로 인하여 바닷물이 증발하고 난 다음에는 염분으로 범벅된 몸을 추슬러야 한다. 이러한 극단적이고 변화무쌍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생물만이 조간대에서 살 수 있다.
이처럼 변화 무쌍한 조간대에 서식하는 해양 생물은 몇 가지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광범위한 수온과 염분도(salinity) 내성을 가지며, 강한 부착력을 지니고 있다.
조간대에서 가장 흥미로운 관찰 대상 – 따개비다이버들이 조간대에서 가장 흔하게 만날 수 있고 흥미로운 관찰 대상은 바로 따개비들이다. 물론 조간대의 암반에 따개비만이 서식하는 것은 아니다. 조간대에는 지역에 따라 차이를 나타내고 있지만 거북손, 담치, 해변말미잘, 해면류 그리고 고둥류가 서로 이웃하고 있다. 따개비류 중 조간대의 최상부에 서식하는 종류는 바로 조무래기따개비이다. 글을 읽는 여러분이 만일 조무래기따개비를 발견했다면 그 곳이 조간대에서 물이 가장 높이까지 올라오는 지점으로 생각하면 된다.
조간대 상부에 서식하는 조무래기따개비(백사도)
총알고둥과 혼생하는 조무래기따개비(채석강)
고랑따개비( 곰소)
검은큰따개비(제주도 문섬)
또한 제주도 문섬 다이빙 시에 많이 관찰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검은큰따개비들이다. 아마도 일부 다이버들은 이 검은큰따개비에 손을 다쳐본 경험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따개비류는 일생을 한자리에 붙어서 서식한다고 해서 정적이고 단조로운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큰 오해다. 한번이라도 따개비류가 먹이 활동을 하는 모습을 관찰하면, 따개비들처럼 부지런하고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동물도 없다는 생각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들의 서식 행동은 기중에 노출될 때에는 체내의 수분 증발을 막기 위해서 껍데기의 입구를 굳게 닫은 채로 버티기에 돌입한다. 이후 물이 체내에 닿으면 닫고 있던 입구를 열어 채찍처럼 생긴 6쌍의 만각을 휘저으며 수중의 플랑크톤을 잡아서 섭식한다. 따개비들이 입구를 열고 닫는 행동과 만각을 내어서 휘젓는 행동은 상당히 민첩하다. 또한 만각을 휘젓는 패턴도 일정하다. 파도에 의해 물이 밀려오는 방향으로 한번 휘저은 다음 만각을 180도 돌려 물이 빠져나가는 방향을 향해 다시 휘젓는다. 그냥 대충 휘젓는 게 아니라 만각을 오므렸다 폈다 하는데 이 모양새가 마치 사람의 손으로 플랑크톤을 잡아채는 것과 같이 보인다.
먹이 섭식을 위해 만각을 펼친 검은큰따개비(제주도 문섬)
고랑따개비(우, 완도)
따개비는 조개 같은 연체동물이 아니다일반인들은 따개비류의 겉모습만 보고 같은 조간대에 서식하는 삿갓조개류와 같은 연체동물로 오해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따개비류가 섭식활동에 사용하는 만각에는 마디가 있어 새우나 게와 같은 절지동물로 분류된다. 또한 따개비는 부착성이 강하여 해안가 바위뿐 아니라 선박이나 고래, 바다거북의 몸에도 석회질을 분비하여 단단히 들러붙어 일생을 지낸다. 그런데 따개비들은 동물이기는 하지만 한번 부착하면 이동할 수 없는데 어떻게 배우자를 찾아 교미를 하고 번식을 할까? 답변은 “찾아 다닐 필요가 없다.”이다. 이들은 자웅동체, 즉 암수한몸이므로 교미침이라는 길고 유연한 생식기관을 가지고 있다. 이 교미침이 이동할 수 없는 따개비들의 번식문제를 해결해 준다. 따개비류는 주로 여러 개체가 가까이 붙어 사는 군체 생활을 한다. 따라서 옆에 있는 개체를 향해 교미침을 뻗어 정액을 주입하면 된다. 정액을 받아들인 개체 또한 암수 한몸이기 때문에 암컷을 구별해서 교미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일상 생활에서 따개비들은 다소 성가신 존재로 인식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앞서 이야기 했지만 다이버가 암반으로 출수를 할 때나 물놀이를 마치고 밖으로 나올 때 날카로운 따개비의 껍데기로 인하여 상처를 입는 경우를 볼 수 있으며, 선박의 밑바닥에 달라붙어서 선체의 저항을 높여 선박의 속도를 떨어뜨릴 수도 있어 주기적으로 따개비를 제거하는 번거로움이 발생하고 있다. 또한 외국을 왕래하는 선박에 의해 외래종 따개비류가 국내로 유입되어 외래종에 의한 해양 생태게 교란이 일어날 수 있어 현재 외국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외래종 유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때문에 선박에 따개비류가 붙지 못하도록 유독 성분이 함유된 선박용 페인트가 사용되기도 하였는데, 이들이 해양을 오염시키는 또 다른 원인으로 현재는 사용이 규제되고 있다.
따개비들은 이처럼 선박운항 또는 외래종 유입 등의 문제를 야기하고 있지만, 먹을 거리가 부족하던 시절에는 아주 고마운 존재였다. 어느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검은큰따개비와 따개비류의 사촌쯤 되는 거북손을 삶아서 별미로 먹는 모습이 방송된 적이 있다. 그러나 예전에는 따개비를 별식으로 먹었던 거이 아니라 가을걷이 후 봄보리가 날 때까지 굶주리던 ‘보릿고개’ 때에 갯마을 사람들에게는 허기를 달래주었던 먹거리였다. 굶주리던 시절 삶을 이어갈 수 있게 먹던 음식이 지금에는 향토 음식이 되어 향수를 불러오는 것이다.
조간대의 암반 틈에 군체를 이루고 있는 거북손( 소매물도)
만각을 내놓고 있는 거북손(우, 소매물도)
내년 봄이 되면 남해안의 섬에 들어가 갯내음 물씬 풍기는 삶은 따개비와 따개비 밥을 먹을 기대를 해본다.
글 사진/권 천중
해양생물학박사
부경대학교 해양과학 공동연구소
BSAC강사 트레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