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피쉬의 사랑
다섯 번째 사랑구경의 대상은 햄릿피쉬(hamlet fish)입니다. 햄릿피쉬는 Hypoplectrus목에 속하며 11종이 알려져 있습니다. 주로 카리브해와 멕시코만의 산호초에서 서식하는데, 특히 플로리다와 바하마의 산호초에 많이 살고 있습니다. 성장하면 몸길이가 약 15 cm 정도 되는데 체색이 다양하여 해수관상어로 매우 인기가 많습니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의 바다에서는 볼 수 없는 물고기입니다.
햄릿피쉬는 산호초에서 자신의 세력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낮에는 자신의 세력권 안에서 먹이를 먹으며 영역을 지키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다 해지기 약 2시간 전에 사랑을 하기 위해 이동합니다. 자신의 세력권을 나와서 산호초의 끝에서 경사가 져 깊어지는 부분으로 모여듭니다. 이렇게 산란하기 위해 모이는 곳을 렉(lek)이라고 합니다. 햄릿피쉬는 렉에서 크기가 비슷한 두 마리가 짝을 짓습니다. 짝이 된 햄릿피쉬 중 한 마리가 구애의 춤을 추고, 다른 한 마리가 그 뒤를 따라 헤엄칩니다. 앞에서 헤엄치던 햄릿피쉬가 알을 낳으면 뒤를 따라오던 햄릿피쉬가 정자를 방출하여 수정시킵니다. 한번 산란, 방정을 하고나면 두 마리가 역할을 바꿔 정자를 방출한 햄릿피쉬가 앞에 가면서 알을 낳습니다. 그러면 앞서 알을 낳았던 햄릿피쉬가 이번에는 정자를 방출하여 수정시킵니다. 이렇게 서로 암, 수의 역할을 바꿔가며 5 ~ 6회의 산란, 방정을 합니다.
햄릿피쉬는 특이하게 한 마리의 몸에 알을 만드는 난소와 정자를 만드는 정소가 같이 있습니다. 즉 난소의 위쪽에 밴드가 붙어 있는 것처럼 작은 정소가 있습니다. 그래서 한 마리가 동시에 알과 정자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알과 정자는 몸속에서는 연결관 등이 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하여 수정될 수 없고, 또 동시에 몸 밖으로 배출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다른 햄릿피쉬와 짝을 이루어 서로 알과 정자를 방출하여 수정시킵니다. 그러면 왜 한번에 산란, 방정을 하지 않고 이렇게 여러 번에 걸쳐 산란, 방정을 할까요?
알과 정자는 자손을 만드는데 필수적이지만 정자보다 알이 훨씬 가치가 있습니다. 알에는 유전자와 성장에 필요한 영양분이 있지만 정자에는 유전자만 있습니다. 햄릿피쉬의 경우 번식을 위한 에너지의 94%는 알을 만드는데 쓰고 나머지 6%만 정자를 만드는데 사용합니다. 만약 한 번에 모든 알을 낳으면, 짝이 된 햄릿피쉬가 정자를 방출하여 수정시킨 후 알을 낳지 않고 다른 상대를 찾아 가버리면 알을 낳은 쪽은 큰 손해를 보게 됩니다. 즉 한 번의 기회에 한 쪽은 94%의 에너지를 소모하였는데, 다른 쪽은 6% 만 사용한 것입니다. 생물은 가능한 한 자신의 자식을 많이 낳으려 합니다. 신사적인 햄릿퓌시보다 비신사적인 행동을 한 햄릿피쉬가 자신의 유전자를 더 많이 남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 번에 알을 다 낳지 않고 조금만 낳아 수정시킨 후 상대방이 알을 낳으면 자신이 정자를 방출하고, 이런 행동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즉 상대방이 비신사적인 행위를 하여도 손해를 조금만 보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동물의 사랑은 이렇게 계산적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렇게 해서 살아남은 것이 진화의 결과입니다. 아마도 생물 중에서 맹목적인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이 유일하리라 생각합니다. 추워지기 시작하는 요즘, 뜨거운 사랑으로 추위를 녹여보는 건 어떨까요?
글 사진/ 임 주백
해양생물학박사
어류생태학 전공
(주)제주오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