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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주백 박사의 물고기 이야기-흰동가리의 사랑


임주백 박사의 물고기 이야기

흰동가리의 사랑

일곱 번째 사랑구경의 대상은 흰동가리입니다. 흰동가리는 농어목의 자리돔과에 속하는 물고기로 서쪽으로는 인도양 아라비아 해의 오만에서부터 중서부태평양의 멜라네시아까지, 남쪽으로는 오스트레일리아 동서해안, 북으로는 일본 남부의 넓은 해역에 살고 있습니다.

흰동가리는 강력한 숫컷이 무리를 이끈다

최근에 온난화의 영향으로 제주도 문섬 주위에서 흰동가리를 볼 수 있고, 산란, 부화도 관찰할 수 있습니다. 흰동가리는 부화 직후에는 플랑크톤처럼 부유생활을 하다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해저로 내려와 말미잘에 공생합니다. 부유생활을 할 때 쿠로시오 난류를 타고 제주 바다로 올라온 흰동가리 치어들 중에서 말미잘에 공생하여 겨울의 낮은 수온을 견뎌낸 것이 지금 우리에게 보이는 흰동가리일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흰동가리는 수온이 낮아지면 말미잘을 떠나 굴속이나, 바위 틈에서 가만히 있다가 대부분은 저수온 때문에 죽습니다. 흰동가리는 수온이 13℃ 이하로 떨어지면 견디지 못하고 죽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아마 문섬에서 발견되는 흰동가리가 가장 북쪽에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말미잘의 촉수가 닿지 않는 곳에 알을 낳아 키우는 흰동가리

흰동가리는 말미잘의 촉수 속에서 사는데 어떻게 말미잘 촉수의 독에 피해를 입지 않는 것일까요? 여기에는 두 가지 가설이 있습니다. 하나는 흰동가리가 말미잘의 점액을 몸에 발라 말미잘의 일부분으로 위장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흰동가리가 말미잘의 독을 방어하기 위한 점액을 만들어 자신의 몸에 바른다는 것이다. 어류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후자가 맞다고 합니다. 흰동가리는 말미잘의 촉수가 뻗치는 범위 안에 산란장을 만들고 알을 붙입니다. 부화할 때까지 주로 수컷이 알을 보호하는데, 부화가 시작되면 어미 흰동가리가 말미잘의 촉수를 입으로 물어서 촉수가 수축되게 하여 부화한 새끼를 말미잘의 촉수로부터 보호한다고 합니다. 갓 부화된 새끼는 보호점액이 없어 말미잘의 촉수에 쏘이게 되면 죽기 때문이지요.

제주 문섬에서 발견된 흰동가리

흰동가리는 수컷이 암컷으로 성전환합니다. 성전환하는 물고기의 대부분이 암컷에서 수컷으로 전환되는데 흰동가리는 반대입니다. 흰동가리는 말미잘의 촉수가 미치는 범위 안에서 강력한 무리를 만듭니다. 말미잘의 크기가 크면 암컷 1마리와 수컷 1마리 그리고 여러 마리의 새끼 흰동가리(함께 사는 큰 흰동가리들의 자손은 아닙니다)로 무리가 구성되고, 말미잘의 크기가 작으면 새끼 흰동가리의 수가 적거나 제주의 문섬 주변처럼 아예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흰동가리의 무리에서는 암컷이 가장 크고 주도권을 가집니다. 새끼 흰동가리는 생식소에 정소와 난소의 부분이 같이 존재하지만 암컷 흰동가리의 존재가 성호르몬 분비를 억제하여 생식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수컷은 생식소의 정소, 난소 부분 중 정소 부분이 활성화 되어 암컷과 짝짓기를 합니다. 가장 큰 흰동가리인 암컷이 죽거나 사라지면 수컷은 암컷으로 바뀌고, 여러 마리의 새끼 흰동가리 중 가장 큰 것이 수컷이 되어 산란을 계속하고 무리를 유지하게 됩니다.

흰동가리의 사촌인 새틀백클라운피쉬도 흰동가리와 비슷한 습성을 보인다
두 말미잘 사이에 코코넛 껍질이 있고 그곳에 빨간알이 빽빽하게 붙어있다.

성전환한 흰동가리 암컷은 다시 다른 흰동가리의 성호르몬 분비를 억제하여 이 시스템이 유지됩니다. 흰동가리는 꼬리지느러미를 보면 암컷인지 수컷인지 알 수 있습니다. 수컷의 꼬리지느러미는 노랑색인데, 암컷으로 성전환하면 흰색이 비치는 엷은 노랑으로 됩니다. 암컷 흰동가리 꼬리지느러미의 색은 나이가 들수록 흰색의 비율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흰동가리 암컷이 산란한 알들에게 물을 불어주어 산소가 원활하게 공급되도록 보살핀다

성전환하는 물고기는 대부분이 산란할 때 수컷이 암컷을 유혹하는 구애행동이 특정 패턴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흰동가리는 이런 특징적인 구애행동이 없습니다. 특정 패턴의 구애행동은 알을 낳는 시간과 정자를 방출하는 시간을 맞추기 위한 것인데, 흰동가리의 경우는 강력한 일부일처제로 긴 시간(10년 이상)동안 같이 살아 특정 구애행동이 없어도 알과 정자의 방출 타이밍을 맞출 수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즉 부부가 오래 살아 척하면 삼척인 셈이지요.


흰동가리의 산란은 수컷이 말미잘의 촉수 아래에 있는 바위나 산호 표면의 해조나 소형 연체동물을 입으로 물어 제거하여 산란장을 만드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수컷이 청소를 시작하면 암컷이 가세하여 같이 표면을 청소한 후 알을 낳아 산란장에 붙입니다.

그러면 수컷이 정액을 방출하여 수정시키지요. 한 번에 대략 1000개 정도의 알을 낳으며, 부화할 때까지 알을 보호합니다. 알을 보호하는 데에는 수컷이 훨씬 적극적입니다. 손으로 흰동가리를 잡으려 하면 암컷은 말미잘을 벗어나 도망가지만 수컷은 도망가지 않고 계속 손을 공격하며 알을 지키려 합니다. 물고기의 자식사랑은 모성애보다 부성애가 강한 것이 일반적입니다.

글,사진/ 임 주백  
해양생물학 박사
어류행동 생태학전공
(주)제주오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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