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천굴 탐사의 기억
CAVE DIVING
수정용천동굴의 미기록종 어류와 다이빙 탐사의 기억
2012년 8월 한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제주도 구좌읍 월정리를 찾았다. 용천동굴 학술조사팀의 일원으로 수중동굴 구간에서 진행되는 조사활동에서 수중촬영을 담당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학술조사팀의 주목적은 미기록종으로 추정되는 동굴어류를 포획하는 것이었고, 부수적으로는 여타 생물 채집과 수질 및 토양 자료를 채집하는 것이었다. 탐사 팀에는 PSAI 코리아 성낙훈 대표를 비롯하여, 최종문, 한정민, 이문우, 정희철, 김강태 등의 동굴 다이버들이 참가했는데 지금은 고인이 된 에코21의 한성수 대표가 용역을 받은 것이었다. 2년 전 이야기를 지금하는 것은 문화재청에서 공식적인 발표가 있을 때까지 엠바고가 걸려있었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은 지난 3월 13일 보도자료를 통해 제주 용천동굴 호수에서 세계적으로 희귀한 어류의 서식을 확인했다고 공식 발표하였다.
용천동굴의 수중구간은 완벽한 용암동굴로 검은색을 띠고 있다.
용천동굴 속에서 발견된 미기록종 물고기문화재청은 2012년 7월부터 2014년 2월까지 용천동굴의 호수생물 및 서식환경 조사를 수행하여 세계적으로 희귀한 미끈망둑 속(Luciogobius)의 미기록종을 확인했다. 이 물고기의 크기는 3.44cm로 일반적인 미끈망둑속 어류와 달리 머리가 유난히 크고, 피부는 멜라닌 색소가 적어 옅은 분홍색으로 투명하며, 눈은 퇴화되어 매우 작은 특징을 보이고 있다.
유전자 염기서열 분석 결과 현재 제주도 연안에 서식하고 있는 유사종인 주홍미끈망둑과 8.9%의 사이토크롬 b 유전자 염기서열 차이를 보여 국내 미기록종 어류라는 것을 확인했다(통상 4~5% 차이가 나면 다른 종 또는 신종으로 분류).
이 어류는 빙하기 이후 해수면이 높아진 약 6,000년 전에 동굴 내부로 유입되어 급격한 유전적인 변화를 거치면서 고립된 동굴 환경에 적응해온 것으로 추정되며, 척추동물의 진화과정을 밝히는데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으로 보고 있다.
문화재청은 제주특별자치도와 협력하여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이 어류의 보호를 위해 동굴의 출입을 계속 제한하고, 동굴 상부 지표로부터 농약 등 오염물질의 유입을 차단하는 방안을 수립하여 추진할 계획이라고 한다.
미끈망둑속(Luciogobius)에 속하는 동굴어류의 외부형태고정하기 전 동굴어류 체측의 멜라닌 색소포(위); 두부의 멜라닌 색소포, 눈, 그리고 두부 감각기관(아래 왼쪽); 체측 옆줄 위의 감각기관(cupulae)의 발달(아래 오른쪽)
사진제공: 문화재청
용천동굴용천동굴은 길이 3.4km의 웅장한 동굴로 용암동굴에 석회동굴의 특징이 함께 나타나는 위석회동굴(pseudo limestone cave)로 독특하고 다양한 종류의 동굴 생성물이 발달하여 있으며, 동굴 끝부분에는 800m 길이의 호수 및 수중동굴 구간이 있다. 이 동굴호수는 담수와 염수가 섞여 있는데 바다 쪽으로 갈수록 염분의 양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호수 속은 완전한 어둠의 상태로 부유성 플랑크톤을 제외하고 이번에 확인한 어류 이외에 다른 생물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용천 동굴의 수중구간 벽에서 발견된 용암곡석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에 있는 이 동굴은 2005년 5월 11일 전신주 교체 작업을 하다 우연히 발견되었다. 위석회동굴로서는 세계 최대 규모로 너비는 3m~10m, 높이는 최고 25m까지나 된다.
수중구간 바닥에서 발견된 식물의 섬유질 잔해
위석회동굴이란 용암동굴이면서도 석회동굴의 특성이 함께 나타나는 희귀동굴로 유사 석회동굴이라고도 한다. 용천동굴은 동굴 내에서 발견된 깊이 12m 이상 되는 호수에서 딴 것이다. 호수가 마치 용솟음치며 솟아오르는 용의 모습과 같다하여 이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동굴 안에서는 용암선반, 용암조흔, 용암단구, 용암폭포, 용암수로 등 용암동굴의 특성과 종유관, 선주, 석순, 산호, 유석, 석화 등 석회동굴의 특성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확인된 석회동굴 구간만도 1Km가 넘어, 제주도에서 이전에 발견된 황금굴, 당처물동굴, 협재굴, 표선굴 등 다른 위석회동굴의 최대 길이인 180m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길다.
동굴 바닥을 뒤덮은 가는 모래 퇴적물 사이로 선명하게 보이는 용암류의 표면에 나타나는 연속된 호
또 처음 발견되어 조사하는 동안 대형 전복 껍데기와 패각류, 남북국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류, 철기류, 돌무더기가 발견되는 등 제주도 내 183개 천연동굴 가운데 규묘, 학술, 경관, 문화재 측면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동굴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위석회 동굴 가운데서는 세계에서 최대 규모로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등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철분이 산화되어 황갈색을 띠는 용암 천정에서 흘러내린 용암 종유관
라이팅을 받아 기묘한 금속성 색상을 내는 용암동굴의 벽면
동굴어류를 포획하기 위해 통발을 설치하는 최종문 트레이너.
동굴 다이빙의 준비용천동굴의 수중구간은 동굴의 입구에서부터 약 2km 정도 하류 쪽으로 내려간 곳에서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수중구간 탐사를 위해서는 탐사 장비를 2km나 옮겨야 한다. 그런데 용암동굴이 곳곳에서 바닥이 꺼지고, 천정이 무너져 내린 곳이 있고, 또 용압 폭포를 형성하여 층이 바뀌는 구간도 있으며, 천정이 1m 이하로 낮아지는 곳도 있기 때문에 동굴 다이빙을 위한 더블탱크와 스테이지 그리고 스쿠터까지 운반하는 것이 만만하지가 않았다. 그나마 체력이 좋은 젊은 다이버들이 더블탱크와 스쿠터 등의 무거운 장비를 옮겨 주었기에 촬영장비와 개인장비만 가지고 이동하였다. 전체 인원 수 대로 탱크와 하드 장비를 준비하지 않고, 2인 1조로 장비를 최소한 줄였기에 조금은 수월하였다.
1.용천동굴의 입구로 내려가는 탐사팀
2.용천동굴 속의 용암폭포를 내려가고 있는 탐사팀
첫 날은 오전에는 장비를 세팅하고, 문화재청에서 개방해준 동굴입구에서부터 호수가 시작되는 동굴 다이빙의 베이스까지 장비를 옮기는 것만으로 거의 시간을 다 보냈고, 오후 늦어서야 잠깐 첫 다이빙을 진행하게 되었다.
첫 번째 다이빙첫 다이빙에서는 5명의 다이버가 함께 입수하여 역할을 분담하여 동굴어류 채집을 위해 통발을 설치했고, 해수와 지질 샘플을 채취하였으며, 수중촬영을 진행하였다. 어떻게 보면 동굴 다이빙의 적응 과정으로 진행한 것이었다. 그간 석회동굴 다이빙만 해봤던 필자에게 용암동굴을 촬영이 쉽지 않은 곳이었다. 검은색의 용암은 거의 빛을 반사하지 않았기에 동굴의 형태를 그려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함께 다이빙한 다이버들의 모습을 촬영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둥굴 바닥에는 고운 황토 모래가 깔려 있었는데 지하수를 통해서 들어온 것들이 오랫동안 가라앉아서 생긴 것들로 보인다. 그 위에 특이한 흔적들이 보였는데 뭔지 알 수 없는 자국들도 있었고, 집게류 같은 갑각류가 지나다닌 듯한 흔적도 보였지만 생물을 보지는 못했다. 잠깐 급하게 움직이는 물고기 같은 것을 본 듯했지만 은신을 잘하고 있어서 그런지 흔적을 찾지는 못했다.
더블 탱크로 1시간 정도 다이빙을 마치고 돌아와서 그날의 다이빙을 정리하고, 점검과 충전 등이 필요한 장비들만 휴대하고, 나머지 장비는 동굴에 남겨 놓고 돌아왔다.
1.호수구간 입구에서 입수를 준비하는 탐사팀2.호수구간 마지막에서 수중구간 탐사를 위해 입수직전의 탐사팀지질탐사 과정에 생긴 천공을 통해 전원과 고압호스를 연결하고, 식음료도 공급해주었다
천공을 이용한 전원과 물의 공급용천동굴는 문화재청에서 인근 동굴의 연장 구간을 찾는 지질탐사 과정에서 우연하게 생긴 천공이 있다. 같은 검은오름 동굴계에 속한 당지질탐사 과정에 생긴 천공을 통해 전원과 고압호스를 연결하고, 식음료도 공급해주었다처물동굴과 관련된 조사에서 우연히 지표면에서 용천동굴의 호수구간에 가까운 지점에 이르기까지 지름 5cm 정도되는 구멍이 뚫린 것이다. 다행히도 이 구멍을 통해서 지상에서 전원과 고압호스를 용천동굴까지 내려줄 수 있어서 동굴에서 전원을 사용하여 불을 켤 수 있었고, 수중 탐사에 필요한 스쿠버 탱크를 충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물과 음료수, 김밥까지 구멍을 통과할 수 있는 크기의 것들은 바로 공급할 수 있었다. 이는 동굴 다이빙 탐사에서 엄청난 장점으로 2km에 가까운 육상구간을 거치지 않고 바로 필요한 것들을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탐사가 진행되는 동안 지상에서는 1명이 콤프레서와 발전기를 관리하였고, 간간이 구멍을 통해서 음료수와 김밥을 공급하는 역할을 해주었다. 지상과 동굴 사이에는 무전기로 통신이 가능했는데 이 또한 구멍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두 번째 다이빙다음 날은 수중에서 2조로 나뉘어서 동굴을 탐사했다. 채집조는 스쿠터까지 휴대하여 800m에 달하는 동굴 막장까지 들어가기로 했고, 스쿠터가 없는 조는 동굴의 중간부분까지 세세하게 관찰하고, 촬영하기로 했다.
더블탱크를 이용하는 동굴 다이빙에서 스쿠터는 매우 유용한 장비로 다이버의 체력과 공기 소모를 최소화시켜 주면서 먼 거리까지 탐사할 수 있게 해주었다. 반면에 스쿠터가 없는 다이버들은 체력과 공기소모 때문에 막장까지 가지 못하고, 600m 정도의 지점에서 돌아와야 했다.
동굴 다이빙
이 다이빙에서는 용암동굴에서 발견되는 여러 가지 동굴 조형물들을 촬영할 수 있었는데 동굴이 형성된 이후에 절리를 통해서 흘러 들어온 용암방울들이 동굴천정에 고드름처럼 매달려 있는 모습과 방울방울 떨어진 용암들이 바닥에서 죽순처럼 자라난 모습들도 보였다. 동굴 바닥은 어떤 곳은 평평했다가 어떤 곳은 깨어지고 함몰되기도 했고, 2층으로 나눠지기도 했다. 수중 구간에는 석회동굴의 흔적이 전혀 없는 용암동굴로서의 특징들만 갖고 있었다.
육상구간에서 발견되었던 토기들
수중구간 초입의 용암폭포 지역에는 육상구간에서 발견되었던 토기들이 많이 보였는데 통일신라시대 귀족들이 사용하던 것들이 제례의식을 통해 수장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토기들과 함께 나무들도 많이 보였는데 손으로 만져보니 나무의 딱딱한 성질을 가진 성분들이 모두 분해되어 겉모습만 나무 가지 모양으로 보이고 실상은 약간의 흐름만으로도 흐물흐물 그 형태가 흩어져 버렸다. 그곳에서 백업 라이트 하나를 떨어뜨렸는데 결국 찾을 수 없었다. 나무 줄기 형체들 사이로 가라앉아 버렸기 때문이었다.
동굴천정을 뚫고 내려온 나무뿌리가 종유로 코팅되어 있었다.2014년 동굴 탐사팀들
호소를 지난 육상 구간 탐사마지막 날은 오후에 전체 탐사 팀이 철수를 해야 했기 때문에 1조만이 입수하여 통발을 회수하기로 했다. 이들의 입수를 도와주고, 육상 촬영을 하면서 고무보트를 이용하여 수면이 공기 중으로 노출된 구간을 돌아보았다. 완전히 물로 채워지지 않은 구간의 길이만 해도 약 200m가 되었기 때문에 동굴 하류 쪽 탐사를 해야 할 경우에는 다이버들이 수면으로 최대한 이동한 다음에 수중동굴이 시작되는 곳에서 입수하기도 했다. 이들이 입수하는 곳까지 고무보트로 따라가서 촬영한 다음에 호소 옆의 육상구간을 잠깐 살펴보았다.
용천 동굴은 용암동굴답게 육상 구간에서는 가지 굴이 없지만 호수 구간에서 몇몇 가지굴들이 있다. 그곳에는 석회동굴의 특징을 보이는 조형물들이 더욱 많았는데 나무뿌리를 따라 흘러 들어온 지하수의 석회성분이 침전되어 나무뿌리를 코팅한 것, 하얀 빨대처럼 천정에 매달린 종류관, 바닥에서 자라고 있는 석순, 그리고 석주들, 용암동굴 위를 피복한 유석과 흘러내린 물이 만들어놓은 작은 물웅덩이들이 만든 휴석(rimstone) 그리고 침전물들이 아름다운 결정을 이루고 있는 석화(cave flower)들을 볼 수 있었다. 동굴진주(cave pearl)와 동굴산호(cave coral) 등도 볼 수 있다고는 했지만 미탐사 된 구간을 돌아볼 수는 없었기에 그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용천동굴 다이빙의 소감용암동굴과 석회동굴의 특징이 함께 있는 위석회 동굴로 매우 아름답다는 말과 국내 동굴들 중에서 시야가 가장 좋다는 등... 동굴 다이버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말이 많았기에 기회가 생겼을때 거절하지 않고 동참하기로 했다 그러나 육상구간의 이동거리가 길고 수중구간은 100%용암 동굴이라 기대 했던 만큼의 다이빙은 아니었다 하지만 국내에서 동굴 다이빙을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곳이기 때문에 다이빙을 해 봤다는데 큰 의미를 두어야겠다. 이번에 발표된 미기록종 동굴어류의 발견으로 인해 용천 동굴이 개방될 가능성은 더욱 없어졌고 학술조사 용역이 아닌 한 용천동굴에서 다이빙 할 수 있는 기회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국내에도 다이버들이 자유롭게 탐사 할 수 있는 동굴다이빙 사이트가 개방되기를 기대해 본다.
2012년 8월의 용천동굴 탐사팀
용암이 흐르면서 굳은 표면과 떨어져 나간 뒤에 산화된 붉은 벽
용천동굴 상류 구간의 위석회동굴 구간
용천동굴의 위석회동굴 구간에서 관찰할 수 있는 휴석소의 석화
글 ,사진 / 최 성순 스쿠버넷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