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色)’이야말로 사람들에게 다양한 감정과 인상, 생명력과 활기를 불어넣는 미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가 아닐까? 나는 항상 나의 눈에 들어오는 여러 가지 빛깔들로부터 작품의 원천이 되는 감정과 느낌들을 찾아낸다. 그 중에서도 특히 바다가 머금고 있는 여러 색깔과 빛깔들은 언제나 나를 더 강하고 자극적으로 압도한다. kankun underwatermuesum illustration project_
바다의 색에 처음 매료된 것은 2005년 가족여행 당시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던 에메랄드 빛의 하와이 해변을 처음 보았을 때이다. 하지만 스노클링을 안 했었더라면 수면의 에메랄드 빛 아래 숨겨진 바다의 숨겨진 보석들을 결코 못 발견했을 것이다. 보트에서 내려 마스크를 끼고 차가운 바다에 들어가는 순간 내 눈은 또 한 번 압도당하고 말았다. 땅 위에서는 볼 수 없는 지형들과 산호들이 다채로운 색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바닷물은 수영장만큼 투명해서 저 멀리 있는 연산호들의 파스텔 색감, 뇌산호의 붉은 색도 잘 보일 정도였다. 발이 바닥에 닿지 않는다는 공포감보다는 황홀감이 앞섰고 산호들과 물고기를 더 가까이 가서 감상하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 어렸던 나에게 다이빙은 아직 위험한 것이었기 때문에 바다를 더 가까이에서 감상하고 싶은 소망은 꽤 오랜 시간 동안 간직하고만 있어야 했다.
kankun underwatermuesum illustration project_
산호의 강한 색을 보여주는 사진
하와이 바다를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대학교 벽에 붙어있는 스쿠버다이빙 동아리 포스터를 봤을 때다. 하와의 청록색 바다, 산호들의 무지개 빛깔 등에 대한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 이후의 수중탐사대 동아리 활동은 내 대학교 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처음 스쿠버다이빙을 시작한 2년 동안 스쿠버다이빙은 내 작품 활동과 별개의 것이었다. 나는 물속에서 만끽할 수 있는 무중력과 자유로움만으로 충분히 행복했고, 수면 아래 세계를 그저 감상하는 데에만 만족하고 있었다. underwater fish coral human illustration kankun underwatermuesum illustration project
하지만 2014년 봄에 인터넷으로 접하게 된 멕시코 칸쿤 수중박물관의 산호로 뒤덮인 조각상들의 모습은 날 완전히 사로잡았고 이를 그려보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다. 나는 그림으로 수중조각상들의 다양한 색깔과 형상을 옮기는 과정에서 그 형태와 색감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전에 눈으로만 보면서 이해했다고 생각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anilao undewater landscape map
칸쿤 수중박물관 일러스트레이션 작업 이후 나는 바다에 대한 되새김의 작업에 계속 빠지게 되었다. 바다 속 생명들, 그 중에서도 특히 산호들을 그리는 과정에서 그 속에 내재된 아름다움과 기괴함을 발견하게 되었다. 산호는 인간이 생겨나기 이전부터 바다를 구성하던 생명체이어서 태초 생명의 형상들을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인간 또한 산호와 닮을 수밖에 없다.
anilao undewater landscape map
예들 들어, 뇌산호를 구성하는 쭈글쭈글한 선들을 보면 우리 뇌의 주름들과 유사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산호와 인간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기관들은 둘 다 큰 유기체의 일부분이자 그 자체도 유기체이며 살아 숨 쉰다. 또한, 태초의 생명에 가까운 산호는 그 색도 원색에 가까워서 매우 강렬한 에너지를 내뿜는다. 세상의 모든 색을 다 담아내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강렬하고 생명력이 넘치는 산호와 인간이 하나가 되는 그림은 아름다운 동시에 생명체의 날 것 그대로를 보여주기 때문에 괴기스럽기도 하다. 이 대상들을 작품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바다와 산호를 더 오랜 시간을 들여 관찰하여 종이에 옮기고 나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면서, 그들이 가지는 신비한 색감과 형태들의 본질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듯하다.
anilao underwater landscape color study
앞으로도 이런 작업을 계속하여 생명을 표현하고 싶다. 스쿠버넷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나의 작품들을 소개할 수 있게 되어 정말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