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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복의 수중세상 엿보기 - 주꾸미와 꼬마오징어의 산란

참복의 수중세상 엿보기
동해에서 볼 수 있는 5 월의 생명들 – 주꾸미와 꼬마오징어의 산란


동해안 수중생물들의 산란철은 예전에 언급한 바와 같이 대부분 매년 12 월 즈음에 시작하여 3 월이면 거의 마무리되는 생활사의 순환을 보여주고 있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수년간 관찰한 경험에 따르면 가장 늦은 산란기를 맞이하는 수중생물로는 단연 주꾸미 Amphioctopus fangsiao를 꼽을 수가 있겠다

매년 5 월이면 내항에 눈에 띄게 주꾸미들의 개체수가 증가한다. 이들은 상대를 만나서 짝짓기가 이루어지면 체내에서 일정기간 성장이 이루어진 알을 산란한다. 폐사한 조개 껍질 속이나 고둥의 패각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수중에 버려진 빈 병이라도 찾아 들어가 대략 500~600 개의 하얀 알들을 산란하는 것이다
이후 암컷은 잠시도 난괴(알 덩어리)의 곁을 떠나지 않으며 아울러 먹이활동 또한 할 수가 없는 상황이 지속된다. 빨판을 이용해 날아드는 모래먼지를 털어내고, 자신의 출수관을 이용해서 알들에게 신선한 산소를 공급하며 고단한 40여일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각종 포식자들과 함께 살아가는 환경인지라 잠시도 주변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는데 그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그 고단함이 충분히 느껴진다. 커다란 고둥 속에 알을 붙여놓은 상태라면 역시 폐사한 조개 껍질 한 개를 대문 삼아 견고하게 입구를 막아놓는다.
주꾸미의 산란에서 부화에 이르기까지는 약 40일에서 45일 정도가 걸리는데 이를 2~3일 간격으로 관찰해본 결과 대부분의 주꾸미들의 부화가 동시 다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각자 구해진 보금자리에서 알들이 부화될 때까지 최선과 정성을 다해 보살피는 주꾸미들의 모습에서 희생적인 자식사랑의 정이 듬뿍 느껴서 가슴이 뭉클해진다.

비슷한 시기에 산란의식을 치르는 또 하나의 귀한 생물체는 흔히 피그미오징어라고 하는 꼬마오징어 Idiosepius pygmaeus paradoxu들이다. 파도의 영향을 받지 않는 내만의 잘피군락에서 산란이 이루어지는데 본래 야행성인 탓에 주간에는 휴식을 취하거나 커다란 해조류 잎에 붙어 숨어 지내다가 밤이 되어서야 하나 둘씩 잘피 밭으로 모여드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이들이 잘피 주변을 맴돌며 먼저 하는 일은 먹이사냥이다. 그 동안 수중촬영을 해오면서도 체장 1cm 남짓한 이 작은 오징어의 야간사냥 장면을 담기가 어려웠다. 따라서 상식으로만 알아왔던 주먹이인 곤쟁이의 포식장면 또한 목격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 5월의 산란철에는 눈을 부릅뜨고지켜본 결과 대부분의 꼬마오징어들이 곤쟁이들을 낚아채서는 천천히 소화해가며 포식하는 장면을 만나볼 수 있었다. 먹이들 중에는 작은 새우도 있었는데 이 새우들 역시 잘피 줄기 주변에서 살아가기에 오징어들의 표적이 되고 있는 것이다.

배가 잔뜩 불러서 몸 안에 투명한 알덩이들이 보이던 꼬마오징어 암컷이 수컷과 짝짓기 행동들을 하다가 드디어 잘피에다 힘겨운 산란을 시작한다. 정확하게 잘피 잎 중앙을 기준으로 해서 2 열 또는 3 열로 마치 계란판에 가지런히 계란을 올려놓듯이 규칙적으로 하나하나 붙여 나가는 모습이 무척이나 힘겨워 보이면서도 신기함에 감탄하게 된다.
암컷이 산란할 때면 주변에 수컷으로 보이는 한두 마리가 마치 방정을 하려는 듯 배회하고 있었다. 산란과정은 약 3분여를 넘길 정도인데 이 작은 꼬마오징어에게는 힘겨운 듯한 과정을 쉼 없이 이어나가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끈끈한 점액질로 점착성을 띠는 난괴들은 잘피 잎에 단단히 붙어 있을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들의 부화과정을 반드시 모니터링 해보고 싶은데 워낙 작디작은 크기인지라 이미 노안이 깊어진 시력으로 찾아내기가 쉽지가 않을 듯하다. 가능하면 약 일주일 간격으로 방문하여 이 작디작은 알들의 성장과정을 지켜볼 예정이다

꼬마오징어들의 산란과정을 지켜보면서 또 하나 알 수 있었던 것은 산란후의 어미의 행방이었다. 온몸을 쥐어짜듯이 고단한 산란을 끝마친 어미는 난괴 옆에서 평소보다 커다란 몸놀림으로 가쁜 숨을 헐떡이듯 머리부분을 잘피에 붙인 채 점차 그 숨결이 잦아들어가고 있었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움직임은 없으나 점착성 물질로 인해 그저 몸만 잘피에 붙어 있을 뿐 그렇게 산란을 마치면서 마치 할 일을 다한 듯 서서히 눈을 감아버렸던 것이었다.
세상의 이치는 태어나고 또 사라지는 일이 무한히 반복되는 것이다. 생명 탄생의 신비로움이 희망과 환희를 보여주었다면 이 숭고한 마지막 희생은 내게 왠지 모를 먹먹함을 느끼게 한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제 소임을 해내고 힘들게 낳아놓은 2세들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삶을 마감하는 꼬마오징어들에게도 슬픔과 아쉬움이 있을지?

이렇게 주꾸미와 꼬마오징어들의 산란을 지켜보며 기쁨과 슬픔을 함께 느꼈던 5월이 지나갔다. 이제 내년 5월이 되어야 이들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겠지만 자연이 허락해준 인연으로 이들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 만남이 설레고 또 기다려진다.
다이빙을 하면서 무엇인가 발견하고, 멈추어서 관찰을 해본다면 해양생물들과 보다 깊이 있는 교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보여주는 감동과 환희의 순간들을 함께 느끼고 싶다면 이들의 산란시기에 맞춰서 그 모습을 지켜볼 일이다.
항상 안전하고 즐거운 다이빙 되십시오.

참복 박정권
수중사진가
자유기고가
신풍해장국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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