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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떠난 바다, 아닐라오

아이와 함께 떠난 바다,
아닐라오 ANILAO


임신, 출산, 육아는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특별한 일이다. 하지만 수시로 ‘물뽕’을 맞아야만 살 수 있는 다이버에게는 그야말로 생지옥. 적어도 5년간은 그냥 죽었다 생각하고 육아에만 몰두하라는 선배 다이버들의 말은 내가 임신을 주저한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임신을 망설인 많은 이유만큼이나 아이를 가져야겠다는 당위 또한 많았으니, 결국 결혼 만 3년 만에 나와 남편의 주니어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아닐라오의 석양은 들떳던 낮시간을 차분히 가라앉혀준다.

임신 기간 동안 나는 지독히 바다를 앓았다. 내셔널지오그랙픽의 해양 다큐멘터리나 유명 포토그래퍼들의 수중 사진을 보며 태교를 하다가, 남들이 줄지어 비행기 티켓 인증을 남기는 여름 휴가철에는 기어코 우울증에 빠져 창 밖을 바라보며 눈물을 줄줄 흘리는 상태가 되었다. 그렇게 어찌어찌 버텼다. 아이가 태어나고 석 달 정도는 바다를 떠올릴 여력이 없을 만큼 힘들고 바빴고, 뒤집고 걸음마를 하고 말이 트이는 과정을 거치며 아이는 자랐다. 그리고 “엄마”하고 부르며 나를 향해 웃어주는 아이는 어느 새 내게 가장 크고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아이는 예뻤다. 하지만 바다를 잊을 순 없었다. 잊혀지지 않았다. 바다에 중독된 사람은 그렇게 쉽게 바다를 잊고 살 수는 없더라. 지독히 바다가 고팠다. 그런 내게 구원의 손길을 내려준 건 인터넷 다이빙 동호회 ‘인투더블루’에서 친분을 쌓은 지란지교(조영철 강사)님이었다.


같이 투어 한 번 가지 않겠느냐고 툭 던진 말 한 마디. 목적지는 필리핀 아닐라오였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아니, 누군가 미끼만 던져주면 덥석 물 준비가 되어있는 나였다. 내가 얼마나 다이빙에 목말라있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남편은 고맙게도 선뜻 아이를 전담하겠다고 해주었다. 그렇다면 길은 두 가지다.

MOS의 숙소

셋 다 가느냐, 나만 가느냐? 딱 하루 고민 끝에 나는 아이를 데리고 가기로 했다. 아이 때문에 민폐가 될지 모르는데 일행인 지란지교님과 마녀키키(심미옥)님은 흔쾌히 받아주셨다. 먼지 쌓인 롤백을 꺼내고, 죽어있는 다이브컴퓨터 배터리도 갈고, 새로 슈트도 하나 질러주고, 오랜만에 수영장 연습도 하고, 태풍 소식에 마음은 또 얼마나 졸였는지. 모든 것이 처음처럼 설레었다.

MOS의 귀염둥이 마스코트 Max(도베르만 답지 않게 애교가 많았다.)

그리고 드디어 출발. 우여곡절 없는 여행이 어디 있으랴. 사실 아이는 며칠 전부터 장염 증상을 보여 당일에도 병원에 가 약을 처방 받았고, 마녀키키님은 직장일로 합류를 장담할 수 없는 상태에서 출발 두 시간 전에 겨우 강남에서 인천행 리무진을 타셨다. 그렇게 네 시간의 비행, 두 시간의 차량 이동 끝에 우리는 새벽 3시 반, 최종 목적지인 필리핀 아닐라오의 MOS리조트에 도착했다. 축축하고 짭조름한 공기, 빛도 없이 깜깜한 하늘에 총총히 박혀있는 별들, “엄마! 하늘에 별이 많이 있어!” 신나서 소리치던 아이의 음성까지도…. 그저 좋았다.
몇 시간 눈을 붙였다 떠보니 아침이다. 바다가 장판이다. 우리를 태우고 떠날 방카를 보니 이제 조금 실감이 난다. ‘나 다이빙하러 온 거야!’ 아이를 맡겨두고 떠나는 엄마는 분주하다. 이것저것 남편에게 설명해보지만 남편은 그다지 귀담아 듣는 것 같지 않다. 하긴, 자타공인 남편은 아이 잘 보는 아빠 상위 3%다. 게다가 MOS의 마스코트인 도베르만 ‘맥스’와 조그만 새끼 고양이 ‘막내’가 딸아이의 친구가 되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걱정은 이쯤에서 접어두자. 나는 방카에 올랐다.

Matu Point에서 만난 블레니 한 마리

체크 다이빙은 Eagle Point에서 가볍게 시작했다. 호흡기를 입에 물고 방카에 서니 살짝 떨린다. 입수! 몸이 물속에 살짝 가라앉았다가 떠올라 수면에서 하강 신호를 기다릴 때 나는 가장 설렌다. 이 아래에는 어떤 아름다움이 숨겨져 있을까? 긴장한 탓인지, 웨이트가 조금 부족했는지 처음 하강이 잘 되지 않았지만 이내 적응했고, 이퀄라이징에도 무리가 없었다. 수온 27℃, 기대보다는 차갑지만 걱정보다는 따뜻하다. 오랜만의 다이빙이니 뭘 보겠다는 욕심보다는 아닐라오의 분위기를 익히고 감을 살리는 데 주력했다. 태풍 하구핏의 영향으로 시야는 썩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건 크게 중요치 않았다.

 Cathedral Rock에서 만난 니모들은 뭔가 드라마틱한 느낌이다.

Arthur's Rock. 연보라색 연산호 군락이 인상적인 포인트였다. 예전에 해외에 사는 블로그 이웃의 포스팅에서 연보랏빛 자카랜다 나무를 보고 한참 동안 시선을 떼지 못한 적이 있었는데, 마치 그 나무를 바다 속에서 보는 것 같았다. 햇빛이 조금만 더 내리쬐고 시야가 조금만 더 좋았더라면 무척이나 아름다웠을 것이다. 마크로의 천국답게 여기저기 크고 작은 누디브렌치들이 널려있다. 제법 큰 거북이도 한 마리 나왔다.

 Merry Christmas _ Happy New Year

두 탱크를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숍으로 돌아왔더니 그 사이 아이와 남편은 떡 실신 상태로 침대에 너부러져 있다. 나중에 남편에게 들어보니 아이가 바다에 들어가서 어찌나 잘 노는지 도무지 나올 생각을 안 하더라고. 깜짝 놀랐다. 수영장처럼 고인 물에서는 놀아도 파도 있는 바다는 무섭다고, 지난 여름 제주도에서도 바다에 발 한 번 담그지 않는 아이였는데. 아이가 바다와 친해졌다는 것은 기대하지 않았던 대물과 조우한 것만큼이나 기쁜 소식이었다. 아이는 늘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빠르게 성장했다. 아기 고양이를 척척 잡아 안고 다니고, 제 몸집보다도 훨씬 큰 맥스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반나절 사이에 현지인의 풍모를 폴폴 풍기더라.

세 번째로 들어간 Matu는 요즘 뜨고 있는 포인트라고 한다. 주황색 입술이 매력적인 블레니 한 마리가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있는 모습에선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또 블루링 옥토퍼스와 고스트 파이프피시같이 피사체로 인기 있는 녀석들이 줄지어 등장했다. 고스트 파이프피시는 내가 좋아하는 녀석이라 가까이서 보고 싶었지만 먼저 와있던 중국인 다이버들이 사진을 찍느라 도통 자리를 내어주지 않아 한참을 기다리다 뒤에서만 보고 물러나왔다. 하지만 그게 아니어도 재미있는 포인트였다. 특히 반쯤 물에 잠긴 작은 동굴이 기억에 남는데, 물에 잠긴 부분이 깊지 않아서 몸을 곧게 펴고 조심조심 지나야 했다. 강사님 말씀이, 물이 더 빠지면 아예 낮은 포복으로 기어 나가야 한단다. 우리가 입수한 시간이 오후 5시가 넘은 시간이라 이미 물속은 어둑했다. 빛이 내리쬘 때 꼭 다시 와보고 싶은 곳이다.

심심함을 느끼지 못했던 안전정지 3분과 30여초 후에 만나는 수면의 조용한 흔들림

아침, 점심도 훌륭했지만 야외에 차려진 이 날의 저녁식사는 그야말로 성찬이었다. 짧은 시간에 많은 곳을 돌아보는 게 중요했던 20대의 나는 여행지에서의 식사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하는 입장이 된 지금, 음식이라는 것이 인상을 뒤바꾸어 놓을 수도 있는 중요한 요소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함께 음식을 나누는 사람들과의 교감이 그 추억의 바탕이 됨은 두말할 바가 없고 말이다. 잔잔한 파도 위에 익숙한 가요가 얹어지고, 다이빙 랜턴이 빛이 드문 아닐라오의 밤을 밝혀주었다. 새우와 게가 구워지는 특유의 고소하면서 짭조름한 냄새가 식욕을 자극했다. 알이 꽉 찬 크랩은 한국에서도 먹어보지 못한 맛이었다. 아이도 부드럽고 고소한 게살을 잘 받아먹었다. 마녀키키님은 이번 투어를 풍성하게 만들어주신 일등공신이셨다. 비행기를 놓칠지도 모르는 급박한 상황에서 갖가지 김치와 밑반찬, 막걸리까지 공수해오셨다. 3박 4일 투어에 음식물 수화물만 40킬로에 육박했다면 믿으시겠는가? 마누라한테 하루 한 끼 밥도 얻어먹기 힘든 내 남편으로서는 최고의 호사였으리라. 풍요롭고 향기로운 밤이었다.

이튿날은 세 번의 다이빙을 숙소로 돌아가지 않고 연속 진행했다. 다이빙을 하지 않는 남편과 아이를 위해 무인도에서의 휴식 시간도 갖기로 했다. 겁이 많은 딸아이가 방카 타기를 무서워하지는 않을까 염려했는데 오히려 신이 났다. 엄마가 바다에 뛰어드는데도 울기는커녕 자기도 물에 들어간다고 울었단다. 흠, 미래의 다이버가 될 자질이 충분하군. 

Coral Garden에서는 조금 당황스러운 일이 있었다. 어제 입었던 후드베스트를 벗고 대신 웨이트를 2파운드 덜었는데 입수가 전혀 안 되는 것이다. 수면에서 스태프에게 웨이트를 받아 포켓에 하나씩 더 넣고 다시 입수했는데도 부력이 맞는 느낌이 전혀 오질 않았다. 지란지교님이 손으로 잡아끌어 가라앉긴 했지만, 계속 몸이 떠오르는 걸 핀질로 억눌러야 했다. 내 상태가 뭔가 이상하다 생각했는지 김강사님이 돌멩이를 집어 포켓에 더 넣어주셨다. 그때서야 허리가 허전해 만져 보니 웨이트 벨트가 없더라. 입수하자마자 벨트를 떨군 모양이다. 이런, 낭패다. 하지만 이 상태로 내가 출수하면 일행에게 폐를 끼치게 된다는 생각에 일단 버텨보기로 했다. 조류가 약간 있긴 했지만 다행히 큰 무리는 없었다. 출수하자마자 김강사님께 웨이트 벨트를 떨어뜨린 것 같다고 말씀 드리니 강사님은 방카가 정박해있던 곳까지 역 조류를 타고 가셔서 기어코 벨트를 찾아내셨다! 그리고 분실된 물건이 있으면 즉시 리더에게 상황을 알리고 조언을 구하는 게 현명하다고 알려주셨다. 잘못을 통해 또 하나를 배웠다.

진지함과 성실함으로 무장한 김민욱 강사님

이후 무인도에 배를 대고 점심 식사를 했다. 스태프들이 닭고기 바비큐를 준비하는 동안 지란지교님과 마녀키키님은 산책을 나가시고, 딸아이는 모래놀이에, 나는 아이를 피사체로 하는 사진놀이에 빠져들었다. 혹시 있을지 모를 이런 순간을 위해 준비해간 물뿌리개와 삽, 그릇들이 요긴했다. 진지한 표정으로 모래를 파내며 몰두하는 모습, 해변가에 앉아 “물이 간지러워 간지러워!”하며 깔깔거리고 즐거워하는 모습의 아이를 보며 나는 여기 오길 참 잘했다 생각했다. 일정이 조금만 더 길었더라면, 하루쯤은 다이빙을 쉬고 이런 한적한 곳에서 우리끼리 시간을 보내면 좋겠다 싶었다. 다음 번에는 꼭 그러고 싶다.

Bethlehem. 큰 항아리 산호들이 많았다. 역 조류를 거슬러 올라가다가 귀여운 니모 가족을 발견했다. 동남아 바다에서는 그렇게 흔한 물고기인데도 아네모네 피시는 언제나 귀엽다. 손톱만큼 작은 새끼들까지도 제 집 지키겠다고 말미잘 위로 올라와 저보다 몇 백배는 큰 나를 위협하는 것이 또한 귀엽다. 조금 쉬었다가 바로 다음 포인트로 이동했다.

다음은 아닐라오 대표 포인트인 Cathedral Rock, 성당바위다. 두 개의 커다란 바위와 그 사이에 놓인 십자가상, 거기에 해가 없을 때만 피어난다는 노란 컵 코랄이 마치 진짜 국화꽃같이 만개하여 자못 신비하고 경건한 분위기까지 풍겨났다. 큰 해삼 속에 숨어있는 임페리얼 쉬림프와 한 무리의 레이저 피시까지 구경하고 올라오니 구름 속에 져가는 붉은 노을의 끝자락을 볼 수 있었다. 만족할 만한 다이빙 후 노을이 물든 바다 위에 떠 있을 때, 행복하지 않은 다이버가 있을까.
3일간의 짧은 다이빙 일정이었지만 나이트 다이빙을 포기할 순 없었다. 모두가 잠든 늦은 밤에 깨어있기를 좋아하는 올빼미 족이라 그런가, 나는 야간 다이빙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고요함을 사랑한다. 희망하는 인원끼리 리조트 앞 비치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이 앞에 별 게 있겠어’ 싶었는데 귀여운 공생새우와 게들이 연이어 나타나더니 나중에는 나의 머스트씨 중 하나인 할리퀸 스위트립피시까지 발견했다. 아, 사진에서 보던 것만큼이나 귀엽긴 한데 소문대로 어찌나 촐랑대던지, 가만히 좀 있으라고 잡아두고 싶더라. 수심도 얕고 리조트 앞이라 부담도 없어 오래오래 더 있고 싶었다.

Dive&Trek에서 만난 자이언트 트레발리 - 마치 잠수함이 지나가듯 웅장했다.

마녀키키님과 나, 두 여자의 강력 희망에 따라 다음 날 아침 여기서 모닝 다이빙도 예약! 지란지교님은 반강제로 합류!
아침에 보는 비치는 역시 또 다른 모습이었다. 물도 얕고 조류도 없어 편안한 데다 구름이 많았던 3일간의 일정 중 유일하게 빛이 내리쬔 시간이기도 했다. 지란지교님과 버디를 이루어 다니다 출수 후 좀 떨어진 곳에서 김강사님의 호출을 받고 재입수했다. 그곳에서 처음 보는 화려한 누디브렌치와 크기가 전부 다른 스쿼트 쉬림프 가족을 만났다. 특히 스쿼트 쉬림프는 내가 발견해서 더욱 특별했다. 처음에는 두 마리밖에 못 봤는데 지란지교님이 보시더니 다섯 마리라 하시더라. 과연 새끼 손톱만큼 작은 녀석들이 산호 밑에 더 숨어 있었다. 두 번의 다이빙을 실시한 MOS 앞 비치는 기대 이상이었다. 이름 없는 비치도 이 정도인데 아닐라오의 매력은 대체 어디까지인 걸까. 처음에는 마냥 바다에 온다는 사실만으로 흥분되고 좋아서 아닐라오 자체를 들여다 볼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떠날 시간이 가까워오니 이곳에 대한 이런저런 호기심과 미련이 생긴다. 대도시 마닐라 근처에 이렇게 가깝고 깨끗하고 흥미로운 바다가 있다니. 이건 자주자주 오라고 신이 주신 축복임이 틀림없다.

MOS DiveResort의 휴게공간 - 시야 한 가득 바다를 담을 수 있는 멋진 장소이다.

Ligpo 포인트도 산호가 아름다운 곳이었다. 아직까지 산호의 매력을 크게 느껴본 적이 없는데, 아닐라오에서 참 예쁜 산호들을 많이 보고 간다. 일행들은 과장 약간 보태서 잠수함만한 자이언트 트레발리 두 마리를 보았다는데, 그 때 대체 무얼 보고 있었는지 나만 못 보았다.

마지막 포인트는 Dive&Trek. 이곳도 성당바위처럼 인위적으로 넣어놓은 십자가상과 성모상으로 유명한 곳이다. 수심 25m 밑에서 십자가상을 본 후 감압을 고려해 얕은 곳으로 서서히 이동하는데, 위쪽으로 난 작은 수중동굴도 하나 통과한다. 이번 다이빙을 통해 내가 동굴이 있는 지형을 좋아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또한 이곳은 아닐라오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물고기 피딩이 허가된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스노클링 포인트로도 유명하다고. 알록달록 예쁜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다니는 모습에 흐뭇했다. 그래, 내가 스노클링하면서 이 모습에 반해 다이빙을 배우기로 결심했었지. 내 아이가 두어 살 더 먹으면 먼저 여기서 스노클링부터 시작해야겠다. 그리고 자격증을 딸 수 있는 나이가 되면 꼭 내가 보고 반한 바다의 아름다운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다.

아닐라오에 석양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결과적으로 나는 이번 다이빙 여행에 아이를 데려오길 정말 잘 했다고 생각한다. 나 하나 물에 들어가자고 아이는 아이대로 고생시키고, 남편은 그저 아이만 돌봐야하는 상황에서, 아까운 돈만 쓰는 게 아닌가 고민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여행은 정말 좋았다. 우리 모두에게 그러했다. 그토록 그립던 다이빙을 10회나 할 수 있었던 나는 말할 것도 없고, 아이도 3박 4일 동안 정말 즐겁게 지냈다. 아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바닷물에 들어갔고 방카 보트를 타봤다. 모래놀이의 즐거움도 알게 되었고, 어느 새 코감기와 장염까지 나아버렸다. 집에 돌아온 날 아침 맥스와 고양이부터 찾던 아이는 분명 아닐라오에서 즐거웠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렇다면 남편은? 애초에 남편은 이번 여행에 대한 별 기대가 없었다. 그저 평소 직장일로 아이와 소원해진 사이를 돈독하게 해보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을 뿐. 하지만 집에서보다 더 융숭한 식탁에 반하고, 아이의 밝은 웃음소리에 흐뭇했으며, 타인에게 좋은 남편좋은 아빠로 인정받음에 뿌듯했으리라. 즉, 남편도 즐거웠다. 나는 남편을 잘 안다.

걱정을 씻고 모두의 귀여움을 독차지해준 다인이와의 바다 여행은 엄마에게도 큰 선물을 안겨준듯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이번 여행의 결과가 좋았기 때문에 내린 개인적인 평가일 뿐, 어린 자녀를 둔 모든 다이버들에게 적극 추천 및 권유하는 것은 아니다. 어린 자식을 둔 엄마로서의 책임과, 바다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다이버로서의 욕심이 아직까지 상충되는 것이 사실이니까. 하지만 나는 도전해 볼만한 과제라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 혹자는 나를 이기적인 엄마, 혹은 아내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아이와 가족을 위해 나란 사람의 삶을 희생하고 포기하는 것만이 사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것을 위해 열정적으로 사는 나의 모습을 보고 나의 아이도 그런 사람, 그럼 엄마가 되기를 바란다.
지면이 넘쳐 글이 잘리지 않는다면, 이번 투어를 함께 해준 지인들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싶다. 투어를 계획하고 먼저 손 내밀어주신 지란지교님, 다음 투어 때도 잘 부탁드려요!소녀같이 맑으신 마녀키키님 고생해서 들고 와주신 음식들 덕분에 남편을 달랠 수 있었습니다. 다음에 뵐 때는 언니라고 해도 되죠? 다이버 세 명에 방 세 개 써야 하는 우리의 어정쩡한 상황에도 싫은 기색 전혀 없이 일정 내내 극진한 대접을 해주신 김민욱 강사님과 MOS 식구들도 빼놓을 수 없다. MOS 럭셔리가 개장하면 그 땐 꼭 MOS 특집 글을 써보고 싶다. 우리 왈가닥 딸과 놀아주느라 고생한 맥스랑 막내, 너희가 있어 힘을 많이 덜었어.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투어 내내 딸래미 전담 마크해 준 남편, 감사 백 번!
바다에 중독된 사람은 쉽게 바다를 잊고 살 수 없다. 물뽕 한 번 맞았으니 이제 육아에만 집중하겠노라는 믿지 못할 다짐은 안 하련다. 그저 이 즐거운 취함이 조금이라도 오래 지속되길 바랄 뿐.

물 속 여행을 함께 해 준 지란지교, 마녀키키, 김민욱강사님, 연꽃 그리고 싸이먼님 - 모두가 함께 했기에 이 소중한 추억의 한 페이지를 그릴 수 있었다.

tip) 낯을 별로 가리지 않는 돌 이전의 어린 아이거나 보호자 없이 혼자 놀 수 있는 다섯 살 이상의 어린이라면 필리핀의 보모 시스템을 활용해보는 것도 괜찮겠다. 필리핀 현지어로 보모는 야야라고 칭하는데 출산율이 높은 필리핀에서 야야는 상당히 보편화되어 있고, 하루 고용 시 300~500페소 정도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연꽃(강연주)
연못(이홍연)의 부인이자 3살 다인이의 엄마
국어교사로 현재 육아 휴직 중이며 오는 2월 복직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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