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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무서워 수영도 못했던 퐈야의 프리다이빙 도전기



물이 무서워 수영도 못했던 퐈야의 프리다이빙 도전기


PROLOGUE
그 동안에 무슨 일들이 나에게 일어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이제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으니까.
                                                                                                                                                                                -FWAYA2013-



[떠나다]

나는 늘 도피를 꿈꾸곤 했다. 정확히 무엇으로부터, 어디로 도망친다는 목적도 없이. 어쩌면 그런 도피는 내 삶의 습관 같은 것이었는지도 몰랐다. 겨울바람이 차가워지던 12월 어느 날, 나는 또 어디론가 도망쳐야만 했다. 필리핀으로 메일을 보냈고, 답장이 도착했다. 그렇게 질문과 답이 오고 가기를 수 차례, 마지막 메일을 읽고는 미리 싸 둔 짐을 들고 세부로 날아갔다. 그건 도망침이었을까, 맞서 싸우는 일이었을까?보홀에 들어가려면 세부 막탄 공항에서 부두까지 차를 타고 가서, 쾌속선으로 갈아 타야만 했다. 배 이름은 오션젯이었다. 조금 낡아 있었고, 선미에는 짐들이 아무렇게나 쌓여 올려져 있었다. 포구를 등진 채 나는 잠시 난간에 기대 바다 쪽을 바라보았다. 비릿한 바다냄새를 맡고서야 나는 아차 싶었다. 정말, 내가, 이곳에, 왔구나. 어쩌자고 난 여기에 와 있을까?사실 난 물에 대해 추억이랄 게 없었다. 초등학교 1, 2학년 때쯤 수영장에 가 보긴 했지만, 락스 냄새가 엄청 심했던 것과, 발이 닿지 않았던 것, 그리하여 벽에 붙어 꼼짝도 하지 못했던 것 따위가 어린 시절 기억의 전부였다. 남들처럼, 수영장에서의 첫 팔 놀림이나 발장구 차던 그림일기 같은 것을 그려보지 못했다. 당연히 포유동물이 물 속에 들어가며 느끼는 황홀감이나 자유로움 같은 것은 전혀 느낄 수도 없었고, 그러므로 기억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왜였을까, 처음 마주한 김동하 강사의 모습을 보고는, 어쩐지 설레었다. 호기심이 두려움을 넘어서고 있었다. 빡빡머리, 개구진 표정, 선한 눈. 크지 않은 키. 그의 옆으로는 수영장이 있었고, 등 뒤로는 바다가 차박차박 파도소리를 내고 있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동남아 열대바다 리조트의 한가운데 그가 서 있었다. 스포츠스타 같은 모습을 상상했었기 때문일까, 수수한 그의 모습이 어쩐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아니 그곳의 모든 것들이 몽롱해졌다. 수영장과 바다, 프리다이빙, 빡빡머리 소년 같은 강사, 그리고 물을 무서워하는 퐈야. 이건 어울리는 조합일까? 이상한 조합일까?초등학교 이후, 수영장과 전혀 인연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작년, 24살에는 처음으로 워터파크에 가 볼 기회가 있었다. 물론 일행의 손에 이끌려 미끄럼틀을 타러 갔다가 튜브가 뒤집혀 떨어져서는 잔뜩 물을 먹고서야 정신을 차렸던 것이 두 번째 인연이었다. 다시는 물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러고도 또 한 번 더 수영장에 간 적이 있었다. 보홀로 떠나오기 전, 방콕의 어느 호텔 수영장이었다. 7층 높이의 수영장 너머로는 방콕의 대중교통인 BTS, 버스와 택시, 수많은 빌딩들과 자오프라야 강이 내려다보였다. 나는 수영장 턱에 팔을 올려 그것들을 구경하고, 감상했다. 썬베드에 누워 칵테일이나 맥주를 마시며 도시와 수영장 그 자체를 그저 감상하며, 수영장과 인사했다. 그게 내 인생에서 경험한 수영장의 전부였다.
바다라고 다르지는 않았다. 여름이면 해운대로, 포항으로 친구들과 줄곧 찾아 다녔지만, 물놀이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바캉스VACANCE, 먼 나라의 낯선 언어가 주는 야릇하고 공허한 발음 때문이었을 것이었다. 해외여행 중에 접하게 된 동남아의 열대바다에서도 허리 이상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해변에 누워 있다가 뜨거운 햇빛을 피할 수 없을 때, 잠시 열을 식히고자 목욕하듯 들어갔던 게 전부였다. 그러므로 바다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것들은, 비치와 맥주 한 병, 음악이 전부였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수영장과 마찬가지로 바다 그 자체를 감상하는 일 정도.
내 삶에 ‘프리다이빙’이란 단어가 들어온 것은 겨우 3개월 전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물을 그토록 싫어하면서도 해양 다큐멘터리가 나오면 늘 어린아이처럼 폭 빠져 바라보곤 했다. 웹서핑을 하다가도 바다 이야기가 나오면 일을 접어두고 한참이나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다. 정작 물에 들어가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요가를 하며 호흡법을 배우는 퐈야

 
처음에는 스쿠버다이빙과 프리다이빙의 차이에 대해서도 구분하지 못했다. 공기통을 메고, 날숨으로 공기방울을 내뱉으며 유영하는 스쿠버다이버들은 종종 방송에서 접하곤 했지만, 프리다이빙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지한 상태였다. 어쩌면 그토록 미지의 영역 속에 있었기 때문에 프리다이빙이 다른 무엇보다도 훨씬 더 나를 빠르게 매료시켰는지도 모른다.
동하 강사가 임대해 쓰고 있는 숍은 알로나 비치에 있었다. [GO DIVE] 그래, 난 다이빙 갈 거야. 영어 간판을 일별하며 들어간 강의실에서 나는 레벨1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이론 설명을 듣고, 동영상을 보았다. 아름다웠다. 프리다이버들은, 그래, 아름다웠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왜 이곳에 와야했는지를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인어였고, 돌고래였다. 난 그들을 보기 위해, 아니 그들처럼 되기 위해 이곳에 와 있었던 거였다.
다이빙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이론교육은 매우 낯설고 생경했다. 반면 새로운 것을 배우는 재미도 있었다.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농도에 대해, 초과호흡에 대해, 이퀄라이징에 대해, 수많은 새로운 것들이 내 안으로 쏟아져 들어 왔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후에 의아하게 생각한 것처럼, 이론에서 가르치는 다이빙의 위험을 위험으로 인지하지는 못했다. 그야말로 무지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저 물 자체를 두려워해 가까이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이빙’이 두려울 수는 없었다. 나는 그저, 내가 돌고래가 되기를 기다리기만 했었다.
이론교육을 마치고 다음은 예고된 대로 수영장 교육을 받을 차례였다. 하지만 동하 강사님의 입에서 ‘자, 이제 수영장에 가 볼까요?’ 하는 말을 듣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24년을 물을 멀리하며 살았는데, 아무리 결심이 굳센들 하루 아침에 수영장이 애인처럼 사랑스럽고 가깝게 느껴질 리는 없었다. 수영장에 도착해 나는 떨리는 걸음으로 몇 걸음을 걸었다. 물기 어린 타일을 밟고 있으면서도, 발바닥에 식은 땀이 느겨졌다. 온몸은 긴장으로 굳어졌다. 그러나 난 휴가를 즐기러 온 것도 아니었고, 물놀이를 위해 놀러 온 것도 아니었다. 더더군다나, 수영장을 ‘감상’하러 온 것도 아니었다.
‘들어가자.’ 그러나 마음만으로는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물에 들어가려면 몸과 마음에 구체적인 준비가 꽤 필요했다. 이를테면 누군가 등 뒤에서 갑자기 나를 떠미는 일 같은 것 말이다. 한참을 망설인 끝에 간신히 입수를 했다. 물 속에서는 어쩐지 나 스스로가 뭔가 다른 존재가 된, 낯선 느낌이 들었다. 그런 나에게 동하 강사는, 마스크를 씌우고 스노클을 물렸다. 빡빡머리 귀여운 소년이 도깨비 비스무레하게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자, 괜찮아요 편안하게 하세요, 말은 참 쉽게 했지만, 얼굴을 물에 담근 채 스노클을 입에 물고 숨을 쉬라고 요구하는 저 존재가, 아까 그 빡빡머리 소년일 수는 없었다. 숨 쉬는 것조차 버거운데 그 숨구멍으로 들어온 물을 빼라니! 스노클에 물은 왜 들어오는 것이며, 그 숨을 뱉을 힘은 또 어디 있는 것인지! 그리고 뱉는다고 뱉은 물은 왜 그대로 스노클 안에 남아있는 것인지! 모를 것이다. 김동하는 모를 것이다!(잠시 존칭 생략) 그러길 잠시, 좀 더 깊은 곳으로, 정확히는 발이 닿지 않는 곳으로 가서 입영이란 걸 해 보잖다. 팔과 다리로 동글동글 물살을 저으며, 떠 보란다. 뭐라고요? 김동하 강사님, 꼴깍꼴깍 지금 내가 이 수영장 물을 다 먹고 있는데, 쌤은 거기 걸터 앉아서 나보고 물을 저으라고요? 팔과 다리에 온 힘을 다 주고, 물을 젓다 보니, 그래, 당장 죽을 것만 같은데, 갑자기 한국 드라마 생각이 났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며, 사람들이 ‘사람살려!’라고 소리치는 장면이 떠올랐다. 거짓말이다. 정말 물을 꼴깍거리며 허우적대고 있을 땐 사람 살려 따위의 말은 나오지 않는다. 정확히는 윽, 욱, 억, 우왁, 헉 정도만 소리낼 수 있을 뿐이다.
지옥 같은 시간이 지나갔다. 물에서 숨 쉬기, 떠있기, 벽 잡고 발차기 하기, 다시 물 먹기, 물에서 숨 쉬기, 떠 있기가 계속됐다. 지금껏 살면서 물 속에서 그렇게 오래 있었던 것도 처음이고, 물에서 그토록 힘을 들인 것도 처음이었다. 별이 팽글팽글 돌았고, 멋진 프리다이빙 강사, 전 종목 한국기록 보유자, 순진한 빡빡머리 소년 김동하는 사라지고, 완벽하게 뿔이 솟은 빡빡머리 도깨비가 늘 웃으며 옆에 서 있을 뿐이었다. 자, 자, 몸이 저절로 시킬 때까지, 천천히 하세요. 얄밉게도 이런 소리나 하면서.
얼마나 힘을 주며 물과 친해졌는지, 늘 근육통이 날 따라다녔다. 대구에 두고 온 친구들은 머릿속에서 모두 사라지고, 근육통과 ‘베프’를 먹은 느낌이었다. 친구는 오로지 근육통뿐이었다. 그러며 나는 팔 젓기와 발차기, 음파음파 숨쉬기, 동동 발차기, 움직움직 물에 뜨기를 배워갔다. 오로지 연습과 연습뿐이었다. 그렇게 2주일이 지났다. 가끔 휘청거리고 종종 꼬르륵거렸지만, 25m 풀, 50m 풀의 개념조차 없던 내가 그 수영장을 몇 번이고 왕복하고, 1주일 쯤이 더 지났을 때에는 몸풀기 수영으로 200m를 움직일 수 있었다. 마치 이곳에 온 목적을 다 이룬 것만 같았다. 아직 바다엔 들어가보지도 못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며칠을 만들어 흐르던 어느 날, 동하 강사님은 바다에 가자고 말했다. 네? 동하 강사님은 바다에 가자고 말했다. 그래, 동하 강사님은 바다에 가자고 말했다.

수면에서 호흡을 가다듬는 퐈야


[바다]

심장이 뛰었다. 걱정은 걱정대로 설렘은 설렘 대로, 이론에서 배운 것과 연습하던 것들은 어디로 갔는지, 내 의지와는 달리 온 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오랜 심호흡 끝에 나는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리고는 내 몸의 모든 감각의 촉수들을 불러일으켜보려 애썼다. 그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처음 배운 건 FIM이었다. 프리어머젼, 줄을 잡고 내려가는 종목이다. 지상에서처럼 천천히 복식호흡을 하다가, 최종호흡을 한 후, 스노클을 입에서 제거하고, 이퀄라이징을 한 후, 손을 뻗어 줄을 잡고 머리를 아래로 향해 내려간다. 내려간다. 내려간다. 그런데 난 어째서 올라가고 있을까? 이퀄라이징은 둘째 치고, 앞에 있어야 할 줄이 뒤에 드리워져 있었고, 내가 숨을 참았는지 어쨌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내 키만큼은 내려간 걸까, 10초쯤은 있었을까, 아니면 20초쯤, 그 어떤 것도 제대로 깨닫지 못한 채 나는 수면 위로 떠올라왔다. 그리고 회복호흡. 사실 회복호흡을 할 필요조차 없었다. 몸 안의 산소를 제대로 쓰지도 못했으니까. 처음이니까, 무서워서, 맞아 늘 그렇게 도망쳤었지. 그런 핑계를 대며 도망쳤었지. 아쉬움과 후회가 꿀렁, 파도가 되어 밀려왔다. 그렇게 내 정신을, 마음을 전혀 컨트롤하지 못한 채 첫 바다 경험이 끝이 났다.

펀다이빙을 하는 퐈야

이후로 며칠간은 수영 연습에 열중했다. 일주일을 수영장, 수영장, 수영장, 수영장, 바다쯤으로 보냈을까, 그렇게 조금씩 내가 바다에 더 익숙해지자, 동하 강사님은 전보다 자주 날 알로나 비치로 이끌었다. 이후에는 매일 바다에 나가 트레이닝을 했다. 한 번 바다에 나가 훈련하는 단위를 ‘세션session’이라고 한다. 열 세션이 넘어갈 때쯤이었을까? 그쯤에선 덜 긴장될 법도 한데, 늘 배에 오르면 다시금 몽롱해지고 걱정이 앞섰다. 트레이닝은 늘 개인당 2~3번의 워밍업으로 시작했다. 워밍업이 끝나면 줄을 잡고 내려 가는 FIM 종목 혹은 오리발을 차고 내려 가는 CWT 종목 위주로 연습을 했다. 처음, 입수하자마자 바로 출수한 부끄러운 기억을 곱씹으며, 다음 번 다시 찾은 바다에서 나는 굳게 마음 먹었었다. 물 속으로 내려가 있는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뭐든 해보자. 그럼 뭐라도 되겠지. 수영장에서 한 숨참기 종목에서 난 3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버틸 수 있었으니,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물속에서 별일이야 있겠냐, 하는 심정으로 내려가자. 한 팔을 길게 뻗어 줄을 쭈~욱 당겨 내려가고 다른 한 팔은 코를 잡고 이퀄라이징을 한다. 자신을 믿자. 귀에서 뿌직 소리가 나고, 다시 한번 다른 팔로 줄을 쭈~ 욱 당기고, 이퀄라이징을 하고, 그렇게 머리가 아래로 향한 채 내가 물 아래로 숨을 참고 내려가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무서워하는 물속 인데 말이다. 순간, 나는 스스로가 대견하게 느껴졌다. 벅찼다. 환희가 몸을 휘감았다. 그리고 어느 샌가 내려와 함께 상승한 동하 강사가 수면에서 회복호흡을 하는 내게 물었다. 왜 올라왔는가, 숨이 찼는가, 불편한 점은, 뭘 느꼈는가. 등등이었다. 그러나 내가 무슨 대답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 환희를, 가슴 벅참을, 놀라움을, 나는 그때 인간의 언어로 그 감정을 설명할 수 없었다.

• 그냥, 올라왔어요.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짧았다. 그리고 다시 입수를 했다. 그 동안 오랫동안 연습한 이퀄라이징에 신경을 쓰며, 시선과 줄의 위치를 가늠하며, 몸에 힘이 들어간 곳은 없는지, 다리가 벌어지지 않았는지 살피며 나는 차츰 내가 물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있음을 발견했다.
신기함이 대견함으로 바뀌고, 대견함이 편안함으로 바뀔 때쯤이었다. 나는 덕다이빙(허리를 꺾어 오리처럼 입수하는 기본적인 입수방법)에서 또 막히고 만다. 고난의 시간이었고, 고난의 종목이었다. 후에 들었지만, 한 번 만에 해 내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라고 하는, 그 간단한 입수방법이 내게는 어렵기만 했다.

하강하는 퐈야

하나씩은 꼭 삐그덕 거리는군, 그래도 트레이닝을 나갈 때마다 새로운 무언가를 터득하고 느끼고 알게 되는 일들은, 조금씩 욕심을 내며 그 욕심을 채워가는 날들은 기쁨으로 채워져 있다고 말해도 옳으리라. 그렇게 트레이닝을 이어가며, 나는 덕다이빙의 신이, 오리궁뎅이를 하고 있는 그분이 내게 오시기를 기도했다. 열심히 하고 있으니 빨리 좀 와 주셨으면 좋았겠지만, 조급함은 없었다. 옆엔 빡빡머리 동하 강사님이 있었으니까. 그의 조언대로, 하라는 대로, 나는 어느새 그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었다. 처음 왔을 때처럼, 15m로 줄을 내리고 연습할 때도, 20m로 수심이 깊어질 때도, 그저 언젠간 잘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동하 강사의 조언과 내 내면의 움직임에 귀를 기울일 뿐이었다.

수면으로 상승하는 퐈야

조금씩 조금씩 내가 수심을 늘려가던 중이었다. FIM을 하기로 한 날이었고, 이런 저런 이유로 며칠 만에 나간 바다였다. 바텀라인을 찍고 싶었던 욕심 때문이었는지, 내내 숨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역시나 계획수심을 내려가지 못하고 올라온다. 계속해서 얼리 턴을 반복하기만 했다. 자, 오늘은 여기서 접지요. 동하 강사님이 마지막 다이빙 고지를 한다. 그래, 오늘 다이빙은 이게 마지막이지. 그래 편히 가자. 천천히 정신을 놓고, 저 멀리 누군가에게 마음을 맡겨놓고 다시 내려간다. 언제나처럼 허리와 무릎, 다리에도 신경을 보내준다. 좋은 자세로 편히 내려간다. 전보다 빠르게 하강한 느낌이다. 어디쯤일까, 이퀄라이징이 막히나 싶을 때쯤, 한두 번 손을 더 길게 뻗어준다. 그때였다. 줄 대신 동글동글한 것이 손에 잡혀진다. 작은 테니스 공. 그러나 환희의 시간은 멀었다. 올라오는 시간은 내려갈 때보다 힘이 들었다. 시야가 밝아지고, 머리 위에서 빛이 쏟아질 때쯤, 동하 강사의 얼굴이 이미 내려와 있었다. 숨을 조금 쉬고 싶었다. 참자. 프리다이버는, 물 속에서 숨쉬지 않는다. 배운 대로, 수면을 올려다보아서도 안 된다. 팔을 길게 뻗어, 몸을 끌어 올린다. 그리고 수면 밖으로 내 몸이 솟아 올랐다.
세 번의 회복호흡을 했다. 나보다 동하 강사님이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수심의 환희! 나에겐 수심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조금을 내려가더라도 제대로 똑바로 내려가자고 생각했는데, 마음 한 구석에서는 그렇게 욕심이 자라고 있었나 보았다. 어찌되었든, 기쁜 건 기쁜 것이었다. 그러므로 오늘 트레이닝 끝! 나 혼자 선언을 했다. 빡빡머리 동하 강사님은, 흐흐흐 하며 웃기만 했다.
*
다이빙에 관해서는 그렇게 무지하던 내가, 수영장을 ‘감상품’으로 알던 내가, 보홀의 작은 동굴에 놀러 갔을 때, 고작 수심3m쯤 되는 곳에서 발을 떼기까지 10분은 족히 걸리던 내가, 이제는 프리다이빙의 이퀄라이징(대체로 프렌젤과 발살바 법이 있으나, 프리다이빙에선 프렌젤이 주로 쓰인다) 기법에 대해 논하고 있고, 호흡법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니. 25m를 내려가다니. 여전히 나는 꼬물 꼬물 올챙이 프리다이버지만 (동하쌤 이제 저 좀 당당하게 프리다이버라고 해도 되겠죠? ) 그래, 스스로가 자랑스럽다.
짧다면 너무나 짧았고 길다면 꽤 길었던 두 달 이라는 시간 동안 보홀에 있으면서 제일 많이 들은 질문이 있다.

‘물을 그렇게 무서워하면서 어떻게 다이빙을 배울 생각을 했어요? 그것도 프리다이빙을?’

그 질문에 난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재미있잖아요, 수영도 못하고 물도 무서워하는 애가 프리다이버가 되어 바다를 사랑하게 되고 수중에서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면 너무 신날 것 같지 않아요?’

수면으로 상승해서 OK 사인을 보내는 퐈야

하지만 지금은 거기 하나쯤 답을 더하고 싶어진다. 한국의 겨울이 추워지면서 그저 날씨 때문에 무작정 따뜻한 곳을 찾았던 건지도 몰랐다. 아니 어쩌면 도망치는 것은 내 습관이었는지도 몰랐다. 날 마주하기가 두려웠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바닷속에서 만난 건, 나를 빤히 바라보는 내 모습이었다. 내가 그 안에 있었다. 그러므로 난 질문과 다르게 이런 답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수영이나 다이빙을 못하는 내가, 그 벽이, 영영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어릴 때, 물이 더 무서워지기 전에 떠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해요. 그런데 가 보니 난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려고 간 거였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거기서 난 나를 만나버린 거예요. 그토록 집요하게 피하고 싶었던, 진짜 내 모습이 줄 너머에 있었어요.
이제 와서는 내 FIM 기록이 얼마인지 중요하지 않다. 사실 기록을 운운하기 민망한 수준이지만, 물에 들어가기를 그토록 두려워하던 내게는 한편 얼마나 대견한 기록인가. 고백하자면 가끔 거울을 보며 우쭐해 하기도 한다. 중요한 건 물을 무척이나 좋아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물에 대한 두려움을 완전히 떨쳐버렸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자신하는 건, 이제 물이 보이는 곳, 물이 있는 곳에 가면 물에 들어가고 싶어졌다는 사실이다.

보이지 않은 벽이 참 많이 있었다. 그 벽은 한국을 출발하기 전부터 내 앞에 세워져 있었다. 하고 싶다. 해 보고 싶다. 어쩌면 그런 마음들이 내 두려움을 벽돌 삼아 내가 스스로 세워 올린 벽을 하나씩 하나씩 무너뜨려왔는지도 모른다.
프리다이빙을 해 보고자 하는 사람들 중에 나와 같은 경우의 사람은 흔치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처럼 물을 아주 무서워하던 사람들 중에도 나처럼 바다와 친해지고 싶어하고, 다이빙이란 걸 배우고, 즐기고 싶어하는 사람이 꽤 있을 지도 모른다. 그분들에게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이야기해주고 싶다.

수면에서 안전다이버가 지켜 보는 가운데 상승하는 다이버

"할 수 있어요".

대단히 큰 용기도, 엄청난 결심도 필요 없다. 그저 한 번 해 보고 싶다는 마음, 물과 한 번 친해져 볼까 하는 마음, 나도 다이버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면 충분하다. 아니 중요한 것 하나를 빠뜨렸다. 물을 사랑하고, 물에서 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열정적인 강사가 필요하다. 그게 참으로 중요하다.

야간 수영장에서

김동하 강사님, 당신은 최고였어요. 가르치는 대로 쏙쏙 받아들이는 교육생도 있었겠지요. 겁에 질린 채 도착해서 내내 두려움과 싸워야 했던 나를 이렇게까지 만들어 주신 걸 보면, 당신은, 최고예요. 대단해요
.
김 동하 강사님과  함께

어쩌면 제 변화보다도 당신의 열정이 더 대단했는지도 몰라요. 가끔 저 때문에 속으로 당황도 하셨을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참으로 뿌듯하지요? 숙소 바깥에서부터 제 이름을 부르던 쌤의 목소리에 잔뜩 긴장해 아침을 맞았던 게 두어 달 전이네요. 그리고 겨울나라에 잠시 봄이 놀러 온, 아직은 추운 한국에서 이 글을 쓰고 있지만, 전 지금 이 순간에도 보홀의 아름다운 알로나 비치가, 약간 우유 빛을 내던 수영장이, 당신의 빡빡머리가, 그곳에서 만난 많은 인연들이, 무엇보다도, 바닷속의 그 고요함이 그립습니다.

다른교육생들과 함께 프리다이빙 인증서를 받고 기념샷~

EPILOGUE
눈을 감으면 바다가 물려온다. FWAYA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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